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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22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열명(說命)」에서 「미자(微子)」까지 읽었다. <지명>해저(海底)지명> 하인이 사주단자를 가지고 갔다. <지명>예천(醴泉)지명>의 어떤 사람이 스스로 풍산류씨(豐山柳氏)라 칭하며 단자를 써 와서 대부(大父)를 뵙고 말하기를, "저희들은 본래 족보에서 누락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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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요전(堯典)」, 「순전(舜典)」을 읽었다. <인명>수길(壽吉)인명>이 응강(應講)에서 불통을 받았다. 성주 숙부(星州叔父)가 부위(副位)가 되어 하인이 가기를 청하자, 와서 대부(大父)에게 아뢰기를,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니, 대부가 말하기를 "우선 병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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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9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진사 대부(進士大父)를 가서 뵙고, 그가 <인명>김해교(金海敎)인명>를 위해 지은 뇌문(誄文)을 보니 큰 뜻은 ‘석가(夕可)’의 의미를 위주로 삼았다. 「생민지십(生民之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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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7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남해(南陔)」에서 「단궁(彤弓)」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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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25일
| 純祖2
| 壬戌
| 맑다.
「패풍(邶風)」, 「용풍(鄘風)」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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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24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대부(大父)를 대신하여 <지명>영양(英陽)지명> 조 상사(趙上舍)에게 보내는 답장을 써서 보냈다. <지명>성주(星州)지명> 주서(注書) <인명>이재호(李在嵩)인명>가 찾아왔다. 낮에 <지명>지곡(枝谷)지명> 권 장(權丈) 몇 사람과 <지명>구담(九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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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3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주송(周頌)」을 읽었다. <인명>류협(柳陜)인명> 씨(氏)가 왔다. 변 주서(邉注書)가 처음으로 와서 대부(大父)를 뵈었다. 계부(季父)가 <지명>의곡(蟻谷)지명>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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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1일
| 純祖2
| 壬戌
| 아침에 흐리고 낮에 개다. 밤에 바람과 눈이 크게 일어나서 천지가 칠흑 같이 어둡다.
「북산지십(北山之什)」을 읽었다. 내가 시 외기를 마치고 나서 문을 열어 조망하니, 달빛이 아름답고 눈빛이 깨끗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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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9일
| 純祖2
| 壬戌
| 식후에 조금 흐리다가 오전에 맑다. 오후에 구름 끼고 흐리다가 가랑비가 내리다.
「진풍(陳風)」, 「회풍(檜風)」, 「조풍(曺風)」 세 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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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27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종조부(從祖父)의 기제사에 참석하였다. 도정 대부(都正大父)가 와서 놀았다. 「주남(周南)」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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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3월 6일
| 純祖2
| 壬戌
| 구름 끼고 흐리다. 비가 밤까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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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3월 15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마을의 집안어른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지명>해저(海底)지명>를 향해 출발하셨다. 대부(大夫)께서는 뒤에서 따르셨고 계부(季父)께서 수행하셨다. <지명>신양(新陽)지명>의 길을 지나다 물 긷는 여인을 만나 대부께서는 이 원장(李院長)의 안부를 물으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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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21일
| 純祖1
| 辛酉
| 맑다가 흐리다.
새벽에 6대 조비(祖妣) 숙인 박씨(淑人朴氏)의 제사를 지냈다. <지명>가야(佳野)지명>의 족숙 2명이 문안을 왔다. 저녁에 대부(大父)가 와서 집에 머물렀다.【겸(謙)이 책을 끼고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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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29일
| 純祖1
| 辛酉
| 맑다. 구름 끼고 흐리다. 밤에 비가 내리다.
『시경(詩經)』 「조풍(曺風)」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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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0일
| 純祖2
| 壬戌
| 조금 맑다. 오후에 구름 끼고 흐리다.
대부(大父)가 <인명>김해교(金海敎)인명>의 만사를 지어 나에게 써 보내라고 명하였다. 낮에 대부가 바깥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도정 숙(都正叔)이 나에게 ‘팽아(彭兒)는 어찌 만사를 짓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 네가 일찍이 <인명>김해교인명>와 더불어 교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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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8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시를 외고 닭이 울고 나서 취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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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26일
| 純祖2
| 壬戌
| 조금 맑다.
「위풍(衛風)」을 읽었다. 계부(季父)가 와서 미수(眉叟) <인명>허목(許穆)인명>을 도연서원(道淵書院)에서 출향(出享)하자는 논의가 또 나왔다고 전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번 <지명>영남지명>에서 과거에 응시한 자가 다만 백 명뿐이었다. 대신(大臣)이 아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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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3월 5일
| 純祖2
| 壬戌
| (초3일, 초4일, 초5일) 모두 맑다.
도정 대부(都正大父)가 와서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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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3월 14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밤에 후곡 숙(後谷叔), 갈전 숙(葛田叔), 성곡 서대부(省谷庶大父)께서 모두 달 아래 오시어, 초행(醮行)과 (예물을)꾸려 보내는 일을 상의하여 처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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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20일
| 純祖1
| 辛酉
| 맑다. 밤에 가랑비가 조금 내리다.
계부(季父)를 모시고 <지명>건지동(乾池洞)지명>에서 술을 올리고 전(奠)을 드렸다. 분영(墳塋)을 쳐다보았는데, 좌우가 무너졌으니 정리(情理)를 이루 말할 수 없다. 계부(季父)가 여러 번 탄식하며, "금년에는 산운(山運)이 없으니, 내년에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