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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7월 7일
| 宣祖34
| 辛丑
산에 있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흥시(感興詩)」를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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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7월 15일
| 宣祖34
| 辛丑
| 비가 조금 내리고 낮에 개다.
『주역(周易)』「건괘(乾卦)」를 읽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와서 함께 절사(節祀)를 올렸다. <인명>이가화(李可和)[이경배(李景培)]인명>의 편지를 보았다. ‘선도십매(仙桃十枚)’에 운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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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1월 14일
| 宣祖34
| 辛丑
| 낮에 비가 내리다.
아침을 먹은 뒤에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떠났다. <인명>최청숙(崔淸叔)[최명경(崔明鏡)]인명>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술 몇 잔 마신 후 함께 동을 나갔다. 청숙은 <지명>지내(池內)지명>로 갔고, 나는 <지명>수성(壽城)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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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1월 18일
| 宣祖34
| 辛丑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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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1월 26일
| 宣祖34
| 辛丑
| 흐리다가 저녁에 비가 내리다.
산에 있었다. <인명>전숙근(全叔勤)[전흥업(全興業)]인명>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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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7월 30일
| 宣祖34
| 辛丑
향교에 있었다. 누워서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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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3월 22일
| 宣祖37
| 甲辰
| 사시(巳時)에 개다.
물을 건너는 것이 여의치 않아, 고개를 넘어 가서 전 공(全公)의 장지(葬地)에 조문하고, <지명>사신암(捨身嵓)지명>을 거쳐 동(洞)으로 돌아왔다. <인명>신여린(愼汝隣)[신국필(愼國弼)]인명>이 <지명>이천(伊川)지명>에서 옷이 젖은 채로 왔다.【물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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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3월 21일
| 宣祖37
| 甲辰
| 종일 내리던 비가 밤까지 이어지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저녁에 전우후(全虞侯)의 모부인(母夫人) 상차(喪次)에 치전(致奠)했다. 내일 장차 발인 할 것이다. 만시인 율시 한 수를 지었다. <지명>남산지명>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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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8월 1일
| 宣祖34
| 辛丑
| 흐리다.
향교에 있었다. 감기로 누워서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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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5월 16일
| 正祖23
| 己未
| (15일, 16일) 연이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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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5월 24일
| 正祖23
| 己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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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6월 2일
| 正祖23
| 己未
| 조금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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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6월 10일
| 正祖23
| 己未
| 밤새도록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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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8월 10일
| 正祖23
| 己未
| 맑다.
대인(大人)이 또 다른 증세가 더해졌다. 둔종(臀瘇), 비통(臂痛), 복통(腹痛)이 끼어들어 발생해서 대인(大人)이 매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부(大父)가 향임(鄕任)이 되어 돌아왔는데 대인(大人)이 손을 잡고 울면서 말하기를 "아버지 생전에 소자의 목숨이 만약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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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8월 28일
| 正祖23
| 己未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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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9월 7일
| 正祖23
| 己未
| 맑다.
주서 숙(注書叔)이 조용히 와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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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9월 15일
| 正祖23
| 己未
| 맑다.
<지명>안악(安岳)지명>에서 보낸 담배, 신어(申魚) 등의 물건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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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9월 23일
| 正祖23
| 己未
| 맑다.
율곡(栗谷) <인명>홍맹겸(洪孟謙)인명> 장(丈)이 와서 이야기 하였다. 나는 어떠한 일 때문에 <지명>건지동(乾池洞)지명>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 왔다. 주서 숙(注書叔)이 임금의 명을 받아 출발할 때에 대인(大人)을 보러 왔다. 대인(大人)께서 말하기를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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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10월 1일
| 正祖23
| 己未
| 맑다.
대인(大人)께서 목이 막히고 기침하고 숨차 헐떡이는 등 여러 가지 증상이 있으니 근심됨을 다 말할 수 없다. 오늘 저녁은 바로 조비(祖妣)의 기일이어서 계부(季父)가 어제 밤에 왔다. 나와 어머니는 서재(西齋)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묵었는데 밤새도록 뒤척이는데 나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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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5월 20일
| 正祖23
| 己未
| (18일, 19일, 20일) 모두 맑다.
우리 집에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