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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5월 15일
| 光海3
| 辛亥
<인명>이방숙(李方叔)인명> 삼형제가 보러왔다. <인명>정여섭(鄭汝燮)인명> 또한 왔다. 낮에 회소(會所)에 들어가 소두(疏頭)를 <인명>김봉조(金奉祖)인명>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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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6월 29일
| 光海3
| 辛亥
산에 들어갔다. 누이의 병이 날마다 위중해져 덜해지지 않으니 근심되고 고민됨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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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9월 8일
| 光海3
| 辛亥
| 비가 흩뿌리다.
낮에 서로 이별했다. <인명>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인명>는 먼저 <지명>산격(山隔)지명>으로 갔다. <인명>익보(益甫)[곽재겸(郭再謙)]인명>와 함께 강가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익보가 말하기를, "어젯밤에 행보에게 몇 마디 이야기했더니 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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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9월 11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마을 사람 서너 무리가 술을 들고 술을 따랐다. 서재(書齋)에 있던 승려 경선(敬先)이 보러왔다. 곧 <인명>사유(四喩)인명>가 거역하며 책을 읽지 않는 일을 말하기를, "우리 승려들은 어린 나이에 산중에 들어가 잠시 경어(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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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6월 28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터로 내려갔다. 오매정(五梅亭)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를 쳐서 병든 누이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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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9월 6일
| 光海3
| 辛亥
저물녘에 당으로 돌아왔다. <인명>박경보(朴敬甫)[박유헌(朴惟憲)]인명>가 왔다. 대정(大亭)에서 초청하여 보았다. 이때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와 <인명>비경(斐卿)인명> 모두 있었다. 박경보가 밤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답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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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7월 11일
| 光海3
| 辛亥
| 간혹 비가 내리다.
터에 있었다. 종기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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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7월 15일
| 光海3
| 辛亥
| 간혹 비가 내리다.
터에 있었다. 종기 난 곳에 아직 살이 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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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9월 4일
| 光海5
| 癸丑
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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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11월 7일
| 光海5
| 癸丑
| 바람이 세게 불고 춥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堂)에 있었다. 서원의 사람이 왔으나, 바람 쐴 수 없었다. 『춘추』를 읽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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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10월 16일
| 宣祖34
| 辛丑
산에 있었다. 일장(日章)의 집에서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와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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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2월 3일
| 宣祖35
| 壬寅
| 맑다.
향교에 있었다. 판관(判官) 성주(城主)가 입재(入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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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11월 5일
| 宣祖35
| 壬寅
| 바람이 세게 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인명>이가화(李可和)[이경배(李景培)]인명>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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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5월 16일
| 光海3
| 辛亥
아침에 <인명>김행초(金行初)인명>, <인명>장사거(張斯擧)인명>가 보러왔다. 회소(會所)에 들어가니, <인명>최동률(崔東嵂)인명>의 체출(遆出)을 알렸다. 제생(諸生)들이 앉는 것이 일정하지 않았고 기율이 매우 없어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이날 밤에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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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7월 1일
| 光海3
| 辛亥
산에 있었다. <인명>최식(崔寔)인명>, <인명>이탁(李濯)인명>이 와서 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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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9월 9일
| 光海3
| 辛亥
| 흐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참례(參禮)를 지냈다. 낮에 산으로 갔다. 제원들이 시냇가에 모두 모이기로 약속했다. 박로(朴老)도 만나러 와서 응했다. 종일 좋은 말을 나누고 좋은 얼굴빛으로 있다가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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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1월 27일
| 光海4
| 壬子
| 춥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고례(告禮)를 거행했다. 조카 <인명>설(渫)[손설(孫渫)]인명>이 9일[29일]에 관례를 치른다. <인명>사유(士綏)[이응기(李應祺)]인명>를 보내 편지를 써서 <인명>곽익보(郭益甫)[곽재겸(郭再謙)]인명>에게 빈객(賓客)이 되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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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7월 17일
| 光海3
| 辛亥
| 혹은 비가 내리다가 하다.
터에 있었다. 종기가 난 부분에 아직 살이 차지 않았다. 병든 몸을 이끌고 당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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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11월 1일
| 光海5
| 癸丑
한질(寒疾)이 낫지 않았다. 채(蔡) 부원장이 왔다. 서원에 봉안하는 일의 여러 가지를 의논했는데, 향교, 향소(鄕所), 선사재(仙査齋)에서 각기 술, 동이, 고기, 베와 같은 물품 부담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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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10월 7일
| 宣祖34
| 辛丑
|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리다.
산에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