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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월 22일
| 光海3
| 辛亥
머물렀다. 그 때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는 선사재(仙査齋)로 갔다. 사유(士綏)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더불어 할 말이 없으니 한스러웠다. 유백(裕伯)을 잠시 만났으니, 일로 포산(苞山)에 나가는 것 때문이다. 정보(正甫)와 득생(得生)이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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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11월 1일
| 光海2
| 庚戌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아내의 병 때문에 참례(參禮)를 치르지 못했다. 일꾼 10명이 돌을 지고 <인명>첨(添)인명>이 어미의 장지(葬地)로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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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1월 6일
| 光海3
| 辛亥
종숙씨(從叔氏)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별했다. 길에서 <인명>도정언(都廷彦)인명>을 만나 <인명>낙형(樂兄)[서사원(徐思遠)]인명>의 안부를 물었다. 별 뜬 저녁에 집에 도착하여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아내의 병이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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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2월 4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증왕모(曾王母) 기제사를 거행했다. <인명>사지(四知)[양사지(楊四知)]인명>가 사유(四喩)를 잡아왔는데, 거역한 사실이 이미 드러났기 때문에 곧바로 그 집에 보냈다. 『심경(心經)』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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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1월 16일
| 光海4
| 壬子
마을 사람이 술을 가지고 왔으니, 병든 나를 위로한 것이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유숙했고, <인명>산부(山夫)[최산보(崔山甫)]인명>도 부(府)에서 저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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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6월 21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일기를 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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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3월 15일
| 光海4
| 壬子
| 흐리다.
저녁에 지진이 일어나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삭참(朔參)을 거행했다. 비로소 사당(祠堂)의 크고 작은 일과 유사(有司)에 대한 의론을 정했다. 아내가 고질병을 앓아 일을 주관할 수 없으니 유감스러웠다. 복사꽃이 피기 시작했다. <지명>마연(馬淵)지명>에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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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1월 24일
| 光海4
| 壬子
| 춥고 맑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 무리가 와서 아침을 먹고 늦은 아침에 탁영서원(濯纓書院)으로 향했다. 장계(長溪)의 위, 수죽(脩竹)의 아래에 우뚝하게 솟은 사당은 사람들이 경탄을 일으킬 만하고, 일무(一畝)의 네모진 못과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더욱 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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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월 24일
| 光海3
| 辛亥
| 맑고 종일 바람 불다.
당(堂)으로 돌아왔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을 읽었다. 득생(得生)과 <인명>첨아(添兒)[손첨(孫添)]인명>가 수학(受學)했다. 정보(正甫)가 엊그제 아뢰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오생(午生)이 붙잡아 서재로 돌아오겠다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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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11월 3일
| 光海2
| 庚戌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지명>남촌(南村)지명>의 군정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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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12월 16일
| 光海2
| 庚戌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외관(外棺)을 내렸다. <인명>양원지(楊元之)인명>, <인명>도해보(都諧甫)[도응유(都應兪)]인명>, <인명>나군선(羅君善)인명>, <인명>손흥언(孫興彦)[손기업(孫起業)]인명>, <인명>박경보(朴敬甫)[박유헌(朴惟憲)]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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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2월 6일
| 光海3
| 辛亥
| 흐리다.
저작랑(著作郞) 숙씨(叔氏)에게 편지를 보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와 정응(靜應)의 편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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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1월 5일
| 光海3
| 辛亥
일찍 길을 떠나 길에서 김 장(金丈)의 내부인(內夫人)을 뵈었으니, 우리 선조의 내재종매(內再從妹)이다. 술 한 사발을 재촉하여 마시고 <지명>매전(買田)지명>에서 아침을 먹었다. 저물녘에 <인명>조성린(趙成麟)인명> 공(公) 경서(景瑞)의 집에 들어갔으니,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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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2월 3일
| 光海3
| 辛亥
| 춥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치재했다. 아침에 <인명>사지(四知)[양사지(楊四知)]인명>와 <인명>경천(敬天)인명>【재승(齋僧)】이 환성사(環城寺)에서 사유(四喩)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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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1월 15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의례대로 참례(參禮)를 거행했다. 낮에 비로소 산으로 향하는 길에 <인명>가화(可和)[이경배(李景培)]인명>를 방문했는데 주인의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여 매우 취해서 나왔다. 잠깐 백종숙(伯從叔)을 뵙고, 저물녘에 <인명>박경부(朴敬夫)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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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6월 20일
| 光海4
| 壬子
| 맑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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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3월 14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몸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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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1월 23일
| 光海4
| 壬子
| 비가 뿌리더니 저녁에 개다.
비로소 마을을 나왔다. 첨지(僉知) <인명>정 노(鄭老)[정비(鄭霏)]인명>【비(霏)】의 초청을 받아 시냇가의 송정(松亭)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른 봄이라서 바람 불고 추워서 병든 늙은이가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 어려웠다. 또 <인명>박경화(朴景華)인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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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월 23일
| 光海3
| 辛亥
| 종일 비가 내려 물이 불다.
<인명>정춘민(鄭春民)인명>이 들렸는데, 조정의 명을 받아 주성별감원(鑄成別監員)이 되어 인끈을 차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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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11월 2일
| 光海2
| 庚戌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지명>남촌(南村)지명>의 향약군정 20명이 흙을 지고 날랐다. 아내의 병이 인사를 살피지 못할 지경이니 고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