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년 8월 13일 | 光海3 | 辛亥 | 저녁에 비가 조금 내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산으로 갔다. 매정(梅亭)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명>이지화(李之華)인명>가 왔다.
1611년 10월 2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1611년 12월 26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심경(心經)』을 읽었다.
1612년 2월 16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기제사를 거행했다.【고비(先妣)이다.】 뜰의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1612년 3월 6일 | 光海4 | 壬子 | 바람이 불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선묘(先墓)에 상순제(上旬祭)를 거행했다. 종숙 형제와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모두 참배했다. 저녁에 듣건대 찰방(察訪)이 성상(聖上)께 사직서를 올려 파직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부란(賦亂)을 당하여 임무를 있는 자가
1606년 4월 14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소학(小學)』을 읽었다.
1606년 7월 21일 | 宣祖39 | 丙午 | 소나기가 내리다.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1606년 9월 24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인명>최경헌(崔景憲)인명>이 보러 왔다.
1612년 11월 10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이른 아침을 먹은 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와 <지명>영양(永陽)[영천(永川)]지명>으로 갔다. 관서정(觀逝亭) 앞강에서 말을 먹이는데, <인명>채명보(蔡明甫)인명>가 뜻하지 않게 지나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1611년 10월 28일 | 光海3 | 辛亥
이른 아침에 고조고(高祖考) 묘를 배알했다. 흙을 더하고 사초를 입혔으며 나무와 풀을 베고 나서 여덟 구(句)의 글로 제(祭)를 지냈다. 잔약(孱弱)한 자손이 비록 불초(不肖)하고 마관(馬官)이 비록 한미한 관직이기는 하지만, 공력(公力)을 빌려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지
1611년 8월 7일 | 光海3 | 辛亥 | 비가 내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향교 사람이 와서 제사음식을 올렸다. 오늘 오현(五賢)을 봉안(奉安)했다. 이것은 실로 세상에 드문 일이다. 비록 <인명>정인홍(鄭仁弘)인명>의 은총과 간교함으로도 그치게 할 수 없었으니, 이는 곧 공도(公道)가 전적으로 없어
1611년 9월 26일 | 光海3 | 辛亥
산에 있었다. <인명>언화(彦化)인명>가 일을 마쳤다.
1611년 10월 4일 | 光海3 | 辛亥
산에 있었다. 공사가 있었다.
1611년 12월 28일 | 光海3 | 辛亥
1612년 2월 18일 | 光海4 | 壬子 | 춥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옛날부터 매번 출사하는 사람은 뒤쫓아도 미치지 못한다.【7일에 주호(主戶)가 나왔다.】 치재를 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도 함께 재계(齋戒)했다. 못의 물고기 사십 마리만 잡았으니, 매우 유감스러울 만하다. <인명>전
1606년 4월 11일 | 宣祖39 | 丙午
1606년 7월 18일 | 宣祖39 | 丙午
당으로 돌아왔다.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1606년 9월 21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기제사를 행했다.
1606년 9월 29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이날 도동서원(道東書院)에 가기 위해 아침에 일찍 밥을 먹고 사람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읍내에 이르자 비로소 사람들이 모였다. 비를 무릅쓰고 <지명>기사곡(奇斜谷)지명> <지명>상면촌(上面村)지명> 산랑에 어렵게 도착했다. 주인이
1612년 11월 15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망참례(望參禮)를 지냈다. 당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