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6년 9월 20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06년 9월 28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1612년 11월 14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몸이 좋지 않다. 당에 있었다. 듣기에 정 우상(鄭右相)이 고향집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평생 하고자 했던 것을 능히 다 했었는데, 스스로 그만두었다면 매우 마음에 시원한 일이다. 군자로 말미암아 그것을 보면 전날 의(義)를 좋아하던 마음이 도리
1612년 2월 13일 | 光海4 | 壬子 | 종일 비가 내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근사록(近思錄)』을 읽었다. 파승(巴僧)이 일 때문에 왔다.
1611년 8월 11일 | 光海3 | 辛亥
아침에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도 왔다. 이날은 찰방 숙(察訪叔)이 백숙(伯叔)을 위해서 생신 술을 베풀었다. 이날은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일이 많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저녁에 당으로 돌아왔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1611년 9월 30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남은 고기를 봉했다.【상순 묘사(上旬墓祀)에 쓸 것이다.】 사유(四喩)가 다시 수학했다.【십여 일을 거역했다.】
1611년 12월 23일 | 光海3 | 辛亥 | 매우 맑다.
산에 있었다. 『심경(心經)』을 읽었다.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와 동원(洞員) 서너 명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건대 <인명>송학무(宋學懋)[송원기(宋遠器)]인명>와 영상대감 <인명>이원익(李元翼)인명>이 등대(登對 , 어전에 나아
1606년 4월 16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1606년 7월 23일 | 宣祖39 | 丙午
<인명>숙정(叔精)인명>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떠났다. <인명>무부(茂夫)[이무부(李茂夫)]인명>의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정숙 대인(精叔大人)께 인사를 했다. <인명>이백(李伯)인명>은 더위를 무릅쓰고 <지명>팔거(八莒)지명>로 가서 고모
1606년 9월 26일 | 宣祖39 | 丙午
산에 있었다. 감을 땄다.
1612년 11월 12일 | 光海4 | 壬子
<지명>영양(永陽)[영천(永川)]지명>에 머물렀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는 먼저 돌아갔다.【4일 외가의 기일 때문이다.】
1611년 11월 1일 | 光海3 | 辛亥
<인명>설(渫)[손설(孫渫)]인명>에게 편지를 부쳤다. <인명>복남(福男)인명>이 돌아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시내를 따라 <지명>운문(雲門)지명>에 들어갔는데, 이곳이 처음으로 길에 올라 출발한 곳이다. 박연정(博淵亭)을 지나다가 암 자(岩字) 운의 근체
1611년 8월 9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인명>우달하(禹達河)인명>가 귀근(歸覲)했다.
1611년 9월 28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치재를 했다. 집의 소록(小鹿)을 잡았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잘되지 않았으니, 성실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의 예이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는 왔고, <인명>사유(士綏)[이응기(李應祺)]인명
1611년 10월 6일 | 光海3 | 辛亥
당에 돌아왔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길에서 <인명>전숙근(全叔勤)[전경보(全敬甫)]인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명>강성(江城)지명>의 만황(晩黃) 한 떨기를 빌렸는데 높이가 거의 한 길이다.
1606년 7월 19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06년 9월 22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예사(禰祀)를 행했다.
1606년 10월 1일 | 宣祖39 | 丙午
날이 밝았을 때 길에 올라 아침을 먹기 전에 서원에 들어가서 선생을 배알했다. <인명>서행보(徐行甫)[서사원(徐思遠)]인명>, <인명>장덕회(張德晦)[장현광(張顯光)]인명>, <인명>박군신(朴君信)[박정번(朴廷璠)]인명> 등은 모두 이미 어제 도착하였었다.
1612년 11월 16일 | 光海4 | 壬子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인명>민정로(閔廷老)인명>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기에 성주(城主)가 고을 유생들이 상소하지 못한 것을 낙 형(樂兄)과 이 늙은 몸에 죄를 돌렸다하니 매우 두려울만하다. 술 5순배를 마시고 갔다. 서원 사람이 저녁에 와
1611년 8월 5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 은어가 깊은 연못에 많이 있다고 들었다. 사물의 이치는 따지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7월에 강에 다 내려온 것인데 어찌 8월에 있겠는가? 밤에 40마리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