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년 9월 10일 | 宣祖38 | 乙巳 | 비가 흩뿌렸다.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향교가 성묘(聖廟) 대들보 일 때문에 먼저 사유(事由)를 고해야 하는데 통판(通判)이 학질을 앓았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여 대신 행했다.
1605년 12월 20일 | 宣祖38 | 乙巳
조금 차도가 있다.
1605년 12월 28일 | 宣祖38 | 乙巳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계몽(啓蒙)』을 읽었다.
1606년 4월 10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인명>이탁(李濯)인명>이 처음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니 한탄스러웠다.
1607년 12월 1일 | 宣祖40 | 丁未 | 춥다.
산에 있었다.
1607년 4월 5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퇴계집(退溪集)』을 읽었다.
1607년 4월 13일 | 宣祖40 | 丁未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 <인명>숙근(叔勤)[전경보(全敬甫)]인명>과 함께 동을 나와 <지명>이천(伊川)지명>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인명>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인명>가 이미 <지명>연경(硏經)지명>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듣
1607년 5월 28일 | 宣祖40 | 丁未 | 매우 가물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1607년 6월 14일 | 宣祖40 | 丁未
1607년 6월 22일 | 宣祖40 | 丁未
1607년 10월 4일 | 宣祖40 | 丁未
쑤시는 고통이 있었다.
1606년 6월 2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1607년 2월 15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치제(致齊)했다. 저녁에 오매정(五梅亭)에서 묵었다.
1605년 9월 12일 | 宣祖38 | 乙巳
1605년 12월 22일 | 宣祖38 | 乙巳 | 많이 춥다.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여전히 몸이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교역(校役)을 감독하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날 추위를 무릅쓰고 향교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당으로 돌아왔다. 몸이 매우 편하지 않았다.
1606년 1월 1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차신세운(次新歲韻)」을 지었다.
1606년 4월 12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소학(小學)』을 읽었다. 학문을 하는데 끊어짐이 없는 것이 귀한데 빠트리는 날이 많으니 이 몸이 하류로 돌아가는 것을 면하기 어렵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80~90세에 과오를 깨달으면 현재에 의거하여 공부해야한다."고 했다.
1607년 12월 5일 | 宣祖40 | 丁未 | 몹시 춥다.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심경(心經)』을 읽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왔다.
1607년 4월 9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퇴계집(退溪集)』을 읽었다. 아침에 <인명>양가보(楊嘉甫)[양우형(楊遇亨)]인명>와 <인명>도해보(都諧甫)[도응유(都應兪)]인명>가 보러왔고, 저녁에 <인명>신여린(愼汝隣)[신국필(愼國弼)]인명>이 보러왔다.
1607년 5월 24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의 집에서 회를 쳤다. 저녁에 <지명>조족산(鳥足山)지명> 기우제의 헌관(獻官)이 되었음을 듣고 밤에 제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