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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6일
| 哲宗 11
| 庚申
<지명>회동(會洞)지명>에 가서 돌아가는 정 영부(鄭領府)를 만났다. 묘지(墓誌)를 봄 안에 지어 보내 줄 것을 신신부탁했다. 돌아오는 길에 <지명>사동(寺洞)지명>에 들어갔으나 모두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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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4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또 바람이 차다.
<지명>조원(棗院)지명>을 지나 족숙(族叔) <인명>여진(汝鎭)인명>씨를 방문했다. 그 형제의 병상(病狀)이 보기에 몹시 측은했다. <인명>경헌(景憲)인명> 족숙(族叔)이 보러왔다. 잠조(潛祖)의 초증(超贈)에 대해 말했는데 연이어 말하며 그치지 않았다.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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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9일
| 哲宗10
| 己未
| 바람 불고 추운 것이 매우 심하다.
아침에 또 좨주(祭酒)를 겸직(兼職)하는 일로 편지를 써서 <지명>사동(寺洞)지명>에 부쳤으니, 내일 차대(次對)를 하기 때문이다. 교리(校理) <인명>강진오(姜晉吾)인명>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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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5일
| 哲宗10
| 己未
| 맑고 춥다.
아침에 주서(注書) <인명>강경규(姜景圭)인명>가 내방했다. 자는 순가(舜歌)인데 그 사람은 매우 자상하고 친애할 만 사람이었다. 어떤 곳에 가서 그를 만났을 때 질아(姪兒)의 도당록(都堂錄)을 부탁하자 허락해 주었고, 선대(先代)의 일을 부탁하자 자상하게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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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4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춥다. 밤에 바람 불고 비가 오다.
식후에 모처(某處)로 가 김 감목(金監牧)을 만나지 못했으나 한참 동안 수초(酬酢)하다가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정 정랑(鄭正郞)을 찾아갔으나 역시 만나지 못했다. 이조(吏曹) 관리 <인명>김상식(金相植)인명>이 와서 부사과(副司果)의 교지(敎旨)를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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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9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또 구름 끼고 흐리나 추위가 조금 풀리다.
<지명>상리(上里)지명>의 서족제(庶族弟)가 들어왔다. 가서(家書)를 얻어 보았다. 마을에 돌림감기가 있었고 온역(瘟疫)이 있었는데 사망자가 적지 않았으니 또한 시운(時運)에 관련된 것이었다. 앉아서 걱정됨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다만 다행스럽기는 이 군(君)이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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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7일
| 哲宗 11
| 庚申
| 종일토록 큰 바람이 불다.
또 <인명>금우(金牛)인명>를 <지명>사동(寺洞)지명>에 보냈는데 답서를 받지 못했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 지평(持平) <인명>배상련(裴相璉)인명>, 진사(進士) <인명>권재형(權載衡)인명>이 찾아왔다. 배 지평(裴持平)이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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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인명>장규목(張奎睦)인명>, <인명>강주옥(姜周玉)인명>이 찾아왔다. 아침 후에 <지명>성곡(城谷)지명>을 찾아 갔다. <지명>사동(寺洞)지명> 김 직각(金直閣)의 문 밖 <인명>김완보(金完甫)인명> 집에 숙박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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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바람이 차다.
낮에 곤주와(困酒窩)에서 쉬고 저녁에 <지명>모두원(毛豆院)지명> 아래 주막에서 잤다. 진흙 때문에 역참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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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8일
| 哲宗10
| 己未
| 날이 매우 춥다.
류 침랑(柳寢郞)이 종묘(宗廟) 앞 여관으로 우소(寓所)를 옮긴다고 하기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보내 옮기는 것을 도왔다. 밤에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彙承)인명>이 와서 놀다가 돌아갔다. 꿈에 내가 <지명>회동(會洞)지명> 정 합(鄭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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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6일
| 哲宗10
| 己未
| 저녁 후에 눈이 많이 내리다.
아침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에게 교지함을 지고 제석(除夕)에 맞춰 내려가게 했다. 생각건대 촌내의 여러 종형과 여러 족종들이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고서 분명히 기쁘게 경하하고 손뼉을 칠 것이니, 자못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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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검은 안개가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증첩(贈帖)에 관한 일로 이리(吏吏)에게 다녀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편지를 써서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보냈다. 내가 또 한천 령(寒泉令)의 집에 직접 가서 장차 나를 대신하여 모처(某處)에 내보내려고 했지만, 이 영감이 눈병이 있어서 나갈 수 없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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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9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싸라기눈이 내리다가 이윽고 큰 눈이 내리다.
하루 동안 한 곳이라도 가려고 탈 것을 빌렸지만 빌리지 못했다. 밤에 방이 쇠처럼 차가우니, 대개 서북(西北)방의 미풍(微風)과 구들에 불을 넣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전반측(輾轉反側)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간혹 일어나 앉거나 누워서 기침을 하니 무료함을 견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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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3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바람이 불다. 늦은 아침 뒤에 조금 풀렸다.
들으니 조 내인(趙內人)이 왕자를 순산했다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신민(臣民)의 행복 중에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척종질(戚從姪) 원방(元方)이 또 내방했다. 저녁에 금일 정사(政事)를 보니 감조관(監造官) 실직(實職)이 단지 장악주부(掌樂主簿)만 하는 줄 알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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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8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지명>회동(會洞)지명> 정 합(鄭閤)의 집에서 빌려온 연주초(筵奏草)를 직접 전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묘지(墓誌)를 세밑에 청할 일이 있으니 정리 상 빠뜨릴 수 없다. 이에 저녁에 류 침랑(柳寢郞)의 노새를 빌려 문안을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진사(進士)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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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6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조금 풀리다.
가마꾼을 빌려 <인명>북촌(北村)인명>으로 갔지만 모두 만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전장(銓長) <인명>홍재철(洪在喆)인명>과 만나고, 또 참판(參判) 김응균(金應均)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또 동복(同福) <인명>임승수(林勝洙)인명>와 그의 맏형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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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4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추운 것이 도리어 심해지다.
몇 군데 정초 인사는 추위를 겁내 닦지 못했으니 이것이 근심스럽다. 가만히 생각건대, 집 하인이 혹 오늘 재를 넘었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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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검은 안개가 사방에 가득하다.
어제 저녁에 감역(監役) <인명>류치윤(柳致潤)인명>이 공적인 이유로 하인을 빌리기를 청했지만 내려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저녁에 류 감역(柳監役)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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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5일
| 哲宗 11
| 庚申
| 추위가 혹독하다.
정언(正言) <인명>손상일(孫相馹)인명>과 노우(老友) <인명>남벽양(南璧陽)인명>이 찾아왔다. 오늘 비로소 도목정사 단자를 받아보니 <지명>예천(醴泉)지명> 신임 수령은 <인명>유건환(兪建煥)인명>인데 서인(西人)이며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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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11월 29일
| 宣祖40
| 丁未
| 춥다.
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