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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몹시 춥다.
가만히 <인명>치홍(致弘)인명>놈을 생각하니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세 아들은 어느 곳에 머무는지 모르지만 졸지에 출발하여 반드시 고생이 많을 것이다. 또한 날씨가 연이어 혹독하여 서쪽으로 가는 반 천 리 길이 극도로 염려스럽다. 저녁에 류 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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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일
| 哲宗 11
| 庚申
| 저녁에 비오다.
아침부터 두통이 있었는데 가장(家狀)을 수정하는 일로 종일토록 틈이 없었다. <인명>강면규(姜冕奎)인명> 영감과 <인명>이휘승(李彙承)인명> 영감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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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9일
| 哲宗 11
| 庚申
아침에 <인명>원방(元方)인명>이 보러왔다. <인명>이상성(李相聖)인명> 형이 또 찾아왔다. 그 편에 차아(次兒)의 편지를 얻어 보았다. 손아(孫兒)의 병이 극도로 걱정되었다. 어제 저녁에 <지명>인동(仁同)지명> <지명>신남(新南)지명>의 장씨 문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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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7일
| 哲宗 11
| 庚申
아침 뒤에 또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갔다. 다만 돌아가는 훈장(訓將)을 만났다. 시사(諡事), 녹사(錄事),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재석사(齋席事)를 부탁했다. 허락을 받고 돌아왔다. 사은숙배하러 오는 아장(亞掌) <인명>신철구(申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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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5일
| 哲宗 11
| 庚申
| 또 바람이 차다.
낮에 <지명>초실점(草室店)지명>에서 쉬고 장차 떠나려고 할 때 달성리(達城吏)로서 도서원(都書員)이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절했다. 성명을 물으니 <인명>김문(金文)인명>이라고 했다. 저녁에 <지명>문경(聞慶)지명> <지명>주교점(舟郊店)지명>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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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0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들으니 오늘 차대(次對)를 행했다고 한다. 저녁에 영합(領閤)이 아뢸 거조(擧措)에 대한 소식을 얻어 보니 <인명>잠암공(潛庵公)[김의정(金義貞)]인명>의 관함(官啣)이 적막한지 삼백년 만에 궁궐에 다시 오르게 되었으니, 자손 된 자로서 감격스럽고 슬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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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6일
| 哲宗10
| 己未
| 눈이 조금 내리다.
조반 후에 겸직(兼職)하는 일로 또 모처(某處)에 가려고 <지명>양동(良洞)지명> 이 주서(李注書)에게 노새를 빌려 잠깐 나갔는데, 자리가 소란해서 입을 열지 못하고 소찰(小札)을 써서 김 감목(金監牧)을 시켜 오늘 저녁에 통지하기를 기약했다. 김포 족숙(金浦族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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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4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장차 내일 작은 연회를 열기 위해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고향 집에 보냈으니, 절로 바쁜 일이 많았다. 이른 아침에 이조(吏曹)의 방직(房直)이 와서 교지(敎旨)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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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 아침에 바람 불고 춥다.
<인명>원방(元方)인명>이 의릉(懿陵)에서 해를 넘기고 오늘 우소(寓所)로 돌아가는 길에 들렸다. 또 <인명>류도민(柳道敏)인명>이 찾아왔다. 또 <지명>안기(安奇)지명>에 사는 <인명>명대(命大)인명> 놈이 독우(督郵)를 새로 맞아오는 하인으로 올라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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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8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비올 기운이 있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행차가 극도로 염려되었다. 감목관(監牧官)이 있는 곳에 사람을 보냈으나 또 답을 받지 못했다. 마음에 몹시 조급하고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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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6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또 눈이 오다. 눈이 개자 큰 바람이 불다.
아침 후에 병판(兵判)에게 편지를 올렸다. 『잠암집(潛庵集)』 2책을 보내서 대내(大內)에 들어가도록 했다. 답을 받지는 못했다. 밤에 방이 차기가 철(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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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4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내가 지난밤에 사지가 당겨 잠을 자지 못했다. 매우 기운이 평온하지 못했다. 남촌(南村)에서 청한 지문(誌文)은 부득이 삼아(三兒)를 시켜 대신가게 했는데 저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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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2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구름 끼고 춥다. 대개 을풍(乙風)이 또 어제와 같았다.
낮에 <지명>금령(金嶺)지명>에 쉬고 저녁에 <지명>진촌점(眞村店)지명>에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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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족숙(族叔) <인명>종렴(宗廉)인명> 씨(氏)가 감영에 올릴 글을 받기를 청하여 친족의 정의로써 힘써 시행하고, 이어서 <지명>남촌(南村)지명>을 향해 떠났다. 어제 훈장(訓將)의 집에 가가(架家)를 널리 세운 것을 보고 물어보니, 훈장의 생일이 이달 22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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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5일
| 哲宗10
| 己未
이른 아침에 작은 연회를 열었는데, 음식이 변변찮아서 부끄러웠다. 경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와서 참석했다. 승지(承旨) <인명>강면규(姜冕奎)인명>, 주서(注書) <인명>경규(景奎)인명>, 교리(校理) <인명>진규(晉奎)인명>,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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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3일
| 哲宗 11
| 庚申
| 맑고 추위가 혹독하다.
한천 령(寒泉令)이 찾아왔다. 오후에 <지명>반촌(泮村)지명>의 노성인(老成人) <인명>강주옥(姜周玉)인명>을 찾아갔지만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인명>권평중(權平仲)인명>과 <인명>조국(趙國)인명>만 만났다. 또 정언(正言) <인명>손상일(孫相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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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6일
| 哲宗10
| 己未
| 밤에 눈이 내리다.
<인명>이경천(李敬天)인명>, 강 교리(姜校理), 좌랑(佐郞)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 배 지평(裴持平)이 찾아왔다. 나도 오후에 승지(承旨) <인명>이만운(李晩運)인명>의 병을 가서 살펴보고, 그다음 이 좌랑(李佐郞)의 반사(泮舍)에 갔다. 이어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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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2일
| 哲宗 11
| 庚申
| 추위가 조금 풀리다.
가만히 <인명>치홍(致弘)인명>놈을 생각하니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세 아들은 어느 곳에 머무는지 모르지만 졸지에 출발하여 반드시 고생이 많을 것이다. 또한 날씨가 연이어 혹독하여 서쪽으로 가는 반 천 리 길이 극도로 염려스럽다. 저녁에 류 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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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30일
| 哲宗 11
| 庚申
새벽에 <인명>금우(金牛)인명>를 <지명>양동(良洞)지명> 이 주서(李注書) 사관(舍館)에 보내어 말을 빌려 먹여서 끌고 오게 하여 바로 <지명>도화동(桃花洞)지명>으로 가서 들으니 어제 저녁에 이미 내려갔다고 했다. 길을 돌아 다시 <지명>사동(寺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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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8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바람이 조금 그쳤다.
<인명>용성(容成)인명>의 돈을 찾는 일은 경하인(京下人) <인명>안동(眼同)인명>이 나가므로 그 편에 편지를 의릉(懿陵)에 부쳤다. 또 우천(愚川) 류 영감(柳令)의 답서를 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