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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인명>김원방(金元方)인명> 척질(戚姪)이 와서 전송했다. 요청하여 아침 후에 그의 여사(旅舍) 앞을 지나가며 서로 보려고 했는데 가마꾼 무리들이 수구문(水口門)으로 길을 잡는 바람에 작별하지 못해서 한스러웠다. 대개 7개월 동안 반촌(泮村)에 와 있으면서 거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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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30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인명>임몽일(林夢日)인명>, <인명>운옥(雲玉)인명> 등이 내려가는 편에 가서(家書)를 부쳤다. 어제 저녁에 <인명>권평중(權平仲)인명>을 방문했다. 입재(入齋)하여 도식당(度食堂)에서 반장(泮長)을 만났고, 승보(陞補)와 통독(通讀)을 일시에 함께 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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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8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매우 춥다.
<인명>영직(英直)인명>을 <지명>사동(寺洞)지명>에 보냈더니 저녁에 돌아왔는데 또 답장을 받지 못했다. 이른 새벽에 <지명>오치(梧峙)지명> 산직(山直) 놈들이 솜을 팔고 돌아간다고 고하기에, 가서(家書)를 부치고 아울러 세의(歲儀)로 말린 민어(民魚)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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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4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또 눈 올 기미가 있다.
지난밤에 『성심록(醒心錄)』 4책(冊)을 빌려왔었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 형과 또 그 백씨(伯氏) 형에게 감사의 편지를 부쳤다. 또 찰방(察訪) <인명>박리붕(朴履鵬)인명>에게 편지를 써서 류 침랑(柳寢郞)에게 부쳤다. 주서(注書)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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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비가 개다.
식후에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반촌으로 들어왔다. 대개 6일에 오기로 했었는데 한강 나루가 얼어 건너기 몹시 위험했다. 동작나루로 가서 배로 건너왔다고 한다. 매우 다행이다. 가서(家書)를 얻어 보았다. 석사(碩士) 이휘필(李彙弼)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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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0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가는 비가 오다.
지평(持平) <인명>배상련(裴相璉)인명>이 순귀(順歸)에 말을 얻어 돌아감을 알렸다. 나 또한 돌아갈 마음이 물 같았으나 선조의 글로 인해 좌우로 잡혀 조용한 날이 없었다. 마음이 몹시 타고 답답했다. 또한 <인명>문형(文衡)인명>의 집안사람 일행이 있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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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8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에 또 잔설(殘雪)이 내리다.
낮에 <지명>영해(寧海)지명> 노유(老儒) <인명>남벽양(南璧陽)인명>이 도기장(到記場)에서 돌아와서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동하재(東下齋)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기별을 전했다. <인명>경천(擎天)인명> 천령(天令)과 석사(碩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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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3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어제 <인명>원방(元方)인명>을 만난 자리에서 <인명>류도민(柳道敏)인명>을 만나 전 영장(前營將) <인명>류상신(柳尙兟)인명>의 안부를 물어보니, 그의 집이 <지명>공주(公州)지명>에 있고 지금 상중에 있다고 말하기에 위문편지를 부쳤다. <지명>남촌(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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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4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조금 따뜻하다.
식후에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를 <지명>사동(寺洞)지명> <인명>문형(文衡)인명>의 집에 보내 가장(家狀)과 폐의(幣儀)를 부치도록 했는데 저녁에 보지 못하고 헛되이 돌아왔다. 주서(注書) <인명>강경규(姜景奎)인명>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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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2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조금 온화하다.
삼아(三兒)를 <인명>문형(文衡)인명> 집에 보내 선집(先集)을 찾도록 했는데 만나지 못하고 헛되이 돌아왔다. <지명>회동(會洞)지명>에서 요청한 묘지명을 곧 보내야할 때인데, 원집(原集)을 못 찾았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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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0일
| 哲宗 11
| 庚申
아사(雅士) <인명>이휘필(李彙弼)인명>이 돌아가기를 고했다. 강 영감(姜令) 및 <인명>류순형(柳舜亨)인명>이 찾아왔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는 식후에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갔고, 나는 반촌(泮村)에 인사를 다니며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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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5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항상 안개 기운이 있다.
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이리(吏吏)의 집으로 보냈으니, 직첩(職帖)을 상의하는 일 때문이다. 직 놈이 그 집에서 이리를 만나지 못하고 편지만 부치고 왔다. 저녁에 또 보냈더니 이리청(吏吏廳)에서 만나 바쁜 일을 제쳐두고 등서(謄書)하여 보냈다. 문신(文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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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눈이 내리다.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참봉(參奉) <인명>김병황(金炳昱)인명>의 사관(舍館)에 보내 훈장(訓將)의 답서를 받기를 구했다. 김 참봉(金參奉)이 훈장의 뜻으로 써서 보여주기를, 이미 전장(銓長)이 이판 겸 대제학(吏判兼大提學)으로 증첩(贈帖)을 썼다고 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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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안개 끼고 흐리다.
임금께서 경모궁(景慕宮)에 거둥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주서(注書) <인명>이재규(李在奎)인명>,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 주서(注書) <인명>홍영조(洪永祚)인명>, 지평(持平) <인명>배상련(裴相璉)인명>, 교리(校理) <인명>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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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1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가는 비가 내리다.
<인명>강진오(姜晉吾)인명>가 와서 전하기를, "함풍제(咸豊帝)는 30세를 축하할 일이라고 하였으므로 일전(日前)에 차대(次對)할 때에 조정(朝廷)에서 상사(上使)로 <인명>임백경(任百慶)인명>을, 부사(副使)로 <인명>박제인(朴齊寅)인명>을, 서장(書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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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9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가는 비가 내리고 저녁까지 개지 않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아침부터 동하재(東下齋)에 들어가 먹었다. 신평빈(新坪賓)을 시켜 벽문(璧門) 안에 가서 가마꾼 3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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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바람이 없고 춥다.
좨주(祭酒)를 겸직하는 일로 <지명>사동(寺洞)지명>에 편지를 올리고, 또 이리(吏吏)에게 편지를 쓰고 증첩지(贈牒紙) 두 장과 필채(筆債)를 보냈다. 어젯밤 꿈에 내가 아무 시[寺]의 실직(實職)을 맡아 관황(官況)이 매달 4냥이었으며, 오늘밤 꿈에는 내가 과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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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2일
| 哲宗10
| 己未
| 또 검은 안개가 끼다.
이른 아침에 강 령(姜令)을 찾아가서 <지명>회동(會洞)지명>에 가서 이야기할 일에 대해 의논했다. 참봉(參奉) <인명>김병욱(金炳昱)인명>이 찾아왔으니, 대개 며칠 후 고향을 찾아가고자 해서이다. 좌랑(佐郞)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가 문안을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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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30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 녹은 물이 뜰에 가득하니, 길이 진창이 된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이 만약 어제 재를 넘지 못했다면 오늘 저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니, 멀리서 몹시 우려된다. <인명>원방(元方)인명>이 어제 낮에 편지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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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눈이 내리다.
<인명>이경천(李敬天)인명>이 배하인(陪下人)을 보내 장인을 부르는 결가(結價)에 대한 말을 전했다. 목궤(木几)이기 때문에 먼저 가물(價物) 2냥 7전을 주고, 붉은색으로 장식하는 값은 다시 주기로 약속했다. 가질(家姪)의 편지를 대신 써서 훈장(訓將)의 집에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