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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부터 주먹만 한 눈이 내리다가 오후에 비로소 개다.
며칠 밤부터 편안하게 잤다. 또 화남 공(華南公)을 꿈에서 모시었으니, 선사(先事)가 어쩌면 조만간 이루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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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9일
| 哲宗10
| 己未
| 솜이 부러질 정도로 날씨가 춥다.
종일 이조(吏曹) 서리(胥吏) <인명>경민(慶敏)인명>을 매우 기다렸지만 오지 않으니, 이 좌랑(李佐郞)의 분부가 부실해서인가, <인명>경민인명>이 혹 연고가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근심이 자못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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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5일
| 哲宗 11
| 庚申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에게 말을 빌려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갔으나 보지 못했다. 곧바로 <지명>삼청동(三淸洞)지명>으로 가서 판서(判書) <인명>홍재철(洪在喆)인명>을 찾아보고 가질(家姪)의 장통(掌通)에 관한 일을 부탁했다.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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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들으니 임금이 오늘 경모궁(景慕宮) 춘향(春享)을 거행한다고 한다. 종일토록 또 가장초(家狀草)를 다듬었다. 진사(進士) <인명>권재형(權載衡)인명>이 찾아왔다. 주서(注書) <인명>이재규(李在奎)인명>와 석사(碩士) <인명>이휘필(李彙弼)인명>이 또 찾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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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5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대저 운음(雲陰)의 기운이 매일 아침 산과 골목을 가렸고 늦은 아침 뒤에 조금 갰지만 저녁에도 여전했다. 그 기운은 무려(霧沴)같아 시절의 운행을 알지 못했다. 또한 어떤 질병이 있었지만 아침에 <지명>반촌(泮村)지명>에 인사를 닦았다. 들으니 판서(判書)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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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지명>반촌(泮村)지명>의 인사를 닦았다. 식후에 <지명>황교(黃橋)지명> 주부(主簿) <인명>임승수(林勝洙)인명>를 찾아가서 함께 고생하는 정의(情誼)를 풀었다. 그 정의로써 그의 형 참판(參判) <인명>긍수(肯洙)인명>를 만나보기를 청했다. 그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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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문밖에 눈이 쌓이다. 밤에 바람소리가 크게 나다.
가마를 타고 가는 것을 중지했다. 또 류 침랑(柳寢郞)의 노새는 약속을 어기고 오지 않아서 종일 근심하며 보냈다. 지평(持平) <인명>배상련(裴相璉)인명>이 한참동안 와서 놀다가 돌아갔다. 구들이 쇠처럼 차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스스로 돌아보건대 일흔 살의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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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0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인명>영직(英直)인명>과 집 하인을 시켜 모처(某處)에 폐물(幣物)을 보냈는데, 주태(主台)가 대내(大內) 시관(試官)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답장을 받지 못했다. 가서(家書)를 써서 두 하인에게 부치고 그 편에 또 <지명>오촌(吾村)지명>과 <지명>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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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8일
| 哲宗10
| 己未
솜 장수 등이 내일 떠날 것이기에 종일 문을 닫고 가서(家書)를 썼다. 경천 령(擎天令)이 찾아왔다. <지명>산곡(山谷)지명>의 두 놈이 어제 저녁에 또 가서(家書)를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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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몹시 추워서 얼음이 보이다.
어젯밤에 성내(城內)에 안개가 자욱하고 날씨가 또 추웠는데, 승보(陞補) 유생들이 곧 한밤중에 시권(試券)을 제출했는데 그 방법이 괴이함에도, 사초(四抄)를 행했다고 한다. 진사(進士) <인명>권재형(權載衡)인명>과 상사(上舍) <인명>홍인섭(洪寅燮)인명>이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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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彙承)인명>이 추위를 무릅쓰고 올라와서 반나절동안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 말하기를 아침에 모처(某處)에 갔다가 훈장(訓將)이 지금 도화동정(桃花洞亭)에 거처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내일 아침에 가마를 타고 길을 돌아 북영(北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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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9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춥다.
저녁에 <지명>대지(大枝)지명> 문중 하인 세 명이 와서 비로소 가서(家書)를 받아보니 모두 아무 탈이 없었다. 또 여러 종형제들의 편지가 있었는데, 선조의 일로 자못 성의가 있으니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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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7일
| 哲宗10
| 己未
| 이른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를 무릅쓰고 가마를 타고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가서 반나절을 몹시 기다리다가 저녁 후에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일과를 마치자마자 즉시 대신(大臣)에게 차대(箚對)에 대해 물어보니 말하기를, "내가 이미 언급했지만 대신들도 회공(恢公) 후에 연달(筵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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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5일
| 哲宗10
| 己未
| 바람이 약하게 불고 춥다.
연일 밤 꿈에서 화 조(華祖)와 돌아가신 여러 부형(父兄)을 보았고, 또 종가(宗家)에 큰 일이 있어서 빈객들이 분주했으니, 선사(先事)에 관한 예시인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앉으니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이 일이 성사된다면 내가 자손 된 책무를 이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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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몹시 춥다.
이른 아침에 편지를 써서 <지명>사동(寺洞)지명>으로 올라갔다. 몇 가지 과물(果物)을 부조했다. 낮에 <인명>강면규(姜冕奎)인명> 영감과 상사(上舍) 오 모(吳某)가 찾아왔다. 오랫 동안 술을 함께 수작하며 파적(破寂)했다. 강(姜) 영감이 말하기를,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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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또 눈이 내리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에게 노새를 빌려 곧바로 <지명>정동(貞洞)지명>에 가서 신임 성주(城主) <인명>엄돈영(嚴敦永)인명>을 전별하고, 또 그의 부친 <지명>석정(錫鼎)지명>을 만났다. 그다음 <지명>장동(長洞)지명>에 가서 이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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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1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고, 흑기(黑氣)가 있다. 만조(晩朝) 후에 날씨가 봄 같다.
<지명>대지(大枝)지명> 산직(山直) <인명>익형(益亨)인명>이 와서 묵었다. 편지를 가지고 체함(髢函)을 짊어지고 왔는데, 그 함(函)안에는 좌견비(左牽轡)가 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에 내려갔다. 한 곳에 가려고 류 침랑(柳寢郞)에게 노새를 빌렸는데, 그 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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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7일
| 哲宗 11
| 庚申
아침에 <지명>소산(素山)지명>의 족군(族君)이 <인명>만옥(萬玉)인명>과 함께 내려와 보러왔다. <지명>인동(仁同)지명> <지명>성곡(城谷)지명>의 맹문(孟文) <인명>장신오(張愼五)인명> 등이 동락서원(東洛書院)의 일로 보러 왔다. 주서(注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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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5일
| 哲宗 11
| 庚申
다시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를 시켜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가도록 했다. 저녁에 돌아왔는데 들으니 병판(兵判)을 보고 가장(家狀)을 부쳤고 또 훈장(訓將)과 <인명>김응균(金應均)인명> 대감을 보았다고 했다. 병판(兵判)의 답서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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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3일
| 哲宗 11
| 庚申
비가 온 나머지 진흙탕이 바다 같았는데 선집(先集)을 찾는 일로 또 삼가(三哥)를 모처(某處)에 보냈다. 또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고민스러움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경주(慶州) 손 진사(孫進士)와 이 정언(李正言)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