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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안개가 끼다. 또 구름이 껴서 흐리고 바람이 불다.
경천 령(敬天令)이 찾아왔는데 『여지(廬誌)』를 인쇄하는 것을 홀로 기쁘게 여기니, 바야흐로 병유혈당(屛儒血黨)이라 이를 만하다. 어제 낮에 상사(上舍) <인명>홍인섭(洪寅變)인명>의 집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다만 동재(東齋)에서 상사(上舍) <인명>권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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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8일
| 哲宗10
| 己未
| 새벽에 바람이 많이 불고, 아침에 매우 춥다.
적막함을 깨뜨릴 길이 없어서 문을 닫고 『남정록(南征錄)』을 베꼈다. 본촌(本村) 수령곡(水令谷) 놈이 솜을 지고 찾아왔는데, 가서(家書)는 받지 못했다. 지평(持平) <인명>배상련(裴相璉)인명>이 또 찾아왔다. 저녁에 상사(上舍) <인명>권재형(權載衡)인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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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6일
| 哲宗10
| 己未
| 춥다.
<인명>최성장(崔聖章)인명> 형이 찾아왔으니, 대개 나그네 신세로서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 감목(監牧) 집의 인편으로 가서(家書)를 부쳤는데 혹 전해지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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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4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매우 춥지는 않다.
이른 아침에 <인명>원방(元方)인명>이 들어와서 내일은 영은(永恩)의 생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편지를 써서 하인을 보냈다. <인명>최성장(崔聖章)인명>과 참봉(參奉) <인명>김희영(金熙永)인명>이 찾아왔다. 대개 내가 <지명>반촌(泮村)지명>에 들어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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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신임 성주(城主)를 전송하려고 권 주서(權注書)에게 노새를 빌렸지만 또 과행하지 못했다. <지명>양동(良洞)지명> 주서(注書) <인명>이재규(李在奎)인명>가 찾아왔다. 듣건대, <지명>표곡(瓢谷)지명> 감역(監役) <인명>류치윤(柳致潤)인명>이 오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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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0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고 춥다.
오늘 대신(大臣)들의 차대(次對)가 있었다고 하는데, 궁벽한 곳에 칩거하고 있어서 적막하게 그것을 듣지 못했으니 답답하다. 이른 아침에 노주(老主)와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보냈는데, 이리청(吏吏廳)에 가서 <지명>이경민(李慶敏)지명>을 찾아가 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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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6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바람 불고 춥다.
신평빈(新坪賓)과 <인명>만옥(萬玉)인명> <인명>금우(金牛)인명>를 종가전(鍾街廛)에 보내 다시 혼구(婚具)를 사오도록 했다. 저녁에 주서(注書) <인명>홍영조(洪永祚)인명> 자(字) 치석(穉錫)이 찾아왔다. 양동(良洞) 석사(碩士) <인명>이재함(李在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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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부터 구름 끼고 흐리다.
집에 편지를 썼다. 면상(綿商)등이 종일토록 소식이 없다. 가격이 떨어져 팔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이랑(吏郞)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 주서(注書) <인명>이유로(李有魯)인명>가 내방했다. 밤에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彙升)인명>이 놀러 왔다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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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두터운 서리가 내리고 흐리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인명>이태(李台)인명>의 전별자리에 가려고 족제(族弟) <인명>중륜(重崙)인명>과 <인명>영직(英直)인명>놈으로 하여금 점포에 나가 물고기와 과일을 사오게 했는데 늦은 아침 뒤에 들어왔다. 많은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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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5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서리가 날리고 눈이 두껍게 쌓였고, 식후에는 날씨가 따뜻한 것 같다.
<지명>차동(車洞)지명> 홍 태(洪台)를 조문하고 신임 성주(城主) <인명>엄돈영(嚴敦永)인명>을 한번 만나고자 했지만 탈 것이 없는 것에 구애되어 이른 아침에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에게 하인을 보냈지만 출직(出直)하지 않아서 과행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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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편지를 써서 <지명>의릉(懿陵)지명>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보내어 다시 노새를 부탁했다. 만조(晩朝) 후에 과연 끌고 왔기에 노새를 타고 모처(某處)로 향 다행히 만날 수 있었다. 『잠암집(潛庵集)』을 다 보았다고 말했지만 <지명>회동(會洞)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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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1일
| 哲宗10
| 己未
| 새벽에 눈이 내리고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
반장(泮長) <인명>조병학(趙秉學)인명>이 졸지에 체직되어 <인명>김병주(金炳㴤)인명>가 반장을 맡았다고 한다. 고향소식을 들어보니, 『병려지(屛廬誌)』를 간행하기로 약속하여 이달 초2일에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시역(試役)했는데 <지명>하상(河上)지명>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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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9일
| 哲宗10
| 己未
양복일(陽復日)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바라보니 <지명>남산(南山)지명>에 안개가 자욱하고, <지명>북악(北岳)지명>에 흑기(黑氣)가 있으니 매우 괴이할만하다. <인명>원방(元方)인명> 척(戚)이 아침에 방문했는데, 대개 객지에서 머무는 회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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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8일
| 哲宗10
| 己未
| 조금 온화하다.
아침에 <지명>사동(寺洞)지명>의 편지를 써서 집 하인을 기다렸지만 저녁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밤에 <인명>이경천(李敬天)인명> 령(令), <인명>강면규(姜冕奎)인명> 령(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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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부터 눈이 많이 내리다.
모처(某處)로 떠나기 위해 권 주서(權注書)에게 노새를 빌렸는데, 아침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길 떠나는 것을 멈추었으니, 말 없는 사람의 행차가 매우 군색하다. 세의(歲儀)를 찾아오는 일을 강 교리(姜校理)에게 편지로 부탁했다. 그저께 <인명>위라(位羅)인명>와 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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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4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추운 것은 조금 풀렸지만 구름 끼고 흐리다.
진사(進士) <인명>이응규(李應奎)인명>의 아들이 삼년상을 마친 후에 <지명>포천(抱川)지명> 고장(古庄)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승보시(陞補試)로 인해 <지명>반촌지명>에 들어와서 찾아왔다. 그 사정이 가여워서 영합(領閤) <인명>김좌근(金左根)인명>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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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부터 날씨가 조금 풀렸지만 안개 같지만 안개가 아닌 기운이 성내에 가득하다.
<지명>북악(北嶽)지명>이 항상 흑기(黑氣)로 덮여있으니, 봄 사이에 돌림병이 돌 조짐이 아니겠는가. 매우 이것이 염려스럽다. <인명>류지영(柳芝榮)인명>에게 가서 재종질(再從姪) <인명>명흠(明欽)인명>의 편지를 받았는데, <인명>홍두곡(洪杜谷)인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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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7일
| 哲宗10
| 己未
| 역시 따뜻하다.
원당 족숙(元塘族叔)이 돌아간다고 하여 아침에 가서(家書) 세 장을 써서 부쳤고, <인명>경회(景會)인명>도 문안 편지를 보냈지만 바빠서 답장을 하지 못했다. 집 소식이 평안하니 다행스럽지만 어린 아들 <인명>정길(丁吉)인명>이 설사증세가 오래도록 낫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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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5일
| 哲宗10
| 己未
| 추위가 조금 풀리다.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김 감목(金監牧)에게 보내 초7일에 보낸 편지를 바치지 않은 연유를 문책하니 답장을 써서 일에 어두운 사람인 양 자처하니 매우 가증스럽다. <지명>영해(寧海)지명> <인명>남벽양(南璧陽)인명> 형이 지금 하재(下齋)에 거처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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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3일
| 哲宗10
| 己未
| 조반 후에 날씨가 조금 온화해지다.
승지(承旨) <인명>이만운(李晩雲)인명>, 승지(承旨) <인명>강면규(姜冕奎)인명>,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이 찾아왔다. 내일 한 곳의 인사를 닦으려고 권 주서(權注書)에게 노새를 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