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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8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그침이 없다.
땔나무가 필요한 집에서는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는 때에 매우 견디기 어려웠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중국에는 또 두 천자(天子) 대덕(大德)과 대법(大法)이 있는데, 대덕(大德)은 바로 명나라를 회복한 나라이고 대법(大法)은 서양 나라로, 모두 우리나라에 패문(牌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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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6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가는 비가 혹 뿌리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종일토록 고적(孤寂)했다. 반인(泮人) <인명>장연(長淵)인명>이 와서 말하기를 마침 나갔다가 중원(中原)의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주(冀州)를 이미 다 잃었는데 조선(朝鮮) 사행(使行)을 따라가는 상인들이 모두 물건을 교역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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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어제 오후 신나게 일이 이루어져, <인명>원방(元方)인명>이 있는 곳에 편지를 부쳐 답서를 보았다. 무릇 선대의 일을 부탁한 것이 이미 10여일이 되어도 여전히 흑백이 없었다. 자손(子孫)의 성의로 노심초사하였고, 오히려 자기 신상의 일까지 더해졌었다. 원래 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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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9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눈 같은 두터운 서리를 보다.
소회(小晦)이다. <인명>영직(英直)인명>놈을 <인명>원방(元方)인명>이 사는 곳으로 보내 그로 하여금 귤피지황탕(橘皮地黃湯)을 제조해 보내게 했으나 우선 값 8냥을 내야 해서 짓지 못하고 왔다. 대저 직접 약국에 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조반 뒤에 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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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9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다.
<지명>의인(宜仁)지명> 이 랑(李郞) 집의 하인과 <지명>망천(輞川)지명> 하예(下隷)가 모두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 편에 상중에 있는 이 랑(李郞)의 사촌에게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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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7일
| 哲宗 11
| 庚申
| 풍한(風寒)이 또 일다.
가질(家姪)과 계아(季兒)가 촌내(村內) 서너 명과 함께 부(府)로 출발하여 <지명>풍현점(豊縣店)지명>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일로 부(府)에 들어 갈 것 같아 그 편에 제철 농사지을 단자와 귤피지황탕(橘皮地黃湯), 화제(和劑) 그리고 칠선주(七仙酒) 재료를 부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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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병에 차도가 없다. 원기가 적패(積敗)하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눈도 깜박이지 못하니 매우 견기기 어려다. 매일 아침 문병 오는 사람들이 오갔으나 한기가 들까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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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이 불다.
나의 병세는 점차 덜해지는 기미가 보인다. 그러나 기침과 가래를 사그라뜨릴 길이 없다. 등에 오한증이 밤낮으로 몇 번이나 있으니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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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9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춥고 바람 불다.
새벽에 <인명>치홍(致弘)인명> 놈을 보냈다. 4일 안에 바로 전달하도록 신신부탁했는데 아직 남은 추위가 이렇게 심한 때에 서쪽으로 가는 길이 극도로 걱정되었다. 나의 모휘항(毛揮項)과 유삼(油衫)을 보냈다. 그믐까지 들어가도록 기약했다. 마침 무료하여 혼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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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안개 끼다.
오늘은 입춘인데 이른 아침의 날씨가 또 안개로 음산하니 고민스럽다. 아침에 <인명>금우(金牛)인명>를 감목관(監牧官)이 있는 곳에 보내 어제 편지의 회답과 책자를 알아보았다. 나옴에 과연 책자와 행장초(行狀抄)가 왔다. 감목관(監牧官)의 답서에, "훈장(訓將)이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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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0일
| 哲宗 11
| 庚申
| 추위가 점점 심해지다.
조금 경영했던 일은 모두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밤에는 기침을 해서 새벽을 몹시 기다렸다. 객지에서의 고생이 도리어 견딜 수 없는 데에 이르렀다. 낮에 <인명>금우(金牛)인명>가 올라왔는데, 한 마을의 노소가 모두 선사(先事)가 뜻대로 추증도니 일로 축하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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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종일토록 구름 끼고 흐리다.
오늘은 답교(踏橋)하는 가절(佳節)이다. 장안의 사녀(士女)가 옷을 갖추어 입고 단장하여 거리를 두루 매웠는데 홀로 여관을 지키고 있으려니 쓸쓸했다. 또한 절혜(節惠) 한 조목으로 모처(某處)에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밤새도록 객(客)으로 소란하여 하지 못했다. 승지(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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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가 해가 나자 조금 개다.
오늘 한 곳에 인사를 닦아야 했으나 탈 것이 없어 행하지 못해 답답했다. 승보시 삼초(三抄)를 행한다고 했다. 저녁에 <지명>위라(位羅)지명> 면상(綿商) 등이 5명이 솜을 팔고 돌아감에 더러운 의복 7건, 대련복안(大練卜鞍), 모삼정(毛參丁), 북두마륵(北斗馬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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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8일
| 哲宗10
| 己未
| 아침부터 비가 오다.
<지명>회곡(檜谷)지명> 면상(綿商) <인명>김학이(金學伊)인명>가 비를 무릅쓰고 돌아감을 아뢰어 30민(緡)에 환치(換置)하고 가서(家書)를 부탁했다. 편지 속에는 손부(孫婦)가 복용할 가미불수산(加味佛手散) 15첩, 신혼(新婚) 모시치마 20척(尺) 저협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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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4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함 군(咸君)이 부회(府會)에서 돌아왔다. <지명>하상(河上)지명> 척질(戚姪) <인명>류수(柳袖)인명>가 연명의 편지를 부탁해 왔다. 내가 나아가 일을 감독하려 했으나 병세가 위와 같아 다만 인사를 닦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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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2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이 불다.
우리나라 근경(近境)에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조정에 대사(大事)가 있으니 잘 처리해야할 단초인데 누가 능히 요리하고 조치한들 궁색하고 전도되는 우환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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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30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오고 흐리다.
태양을 한 열흘간 보지 못했고 또 비가 연 사흘이고 눈까지 보태지니 1월을 걱정하는 집에서는 궁색함이 비할 데 없다. 내 병은 수일 전부터 줄어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원기를 더 보충하면 담(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밤에 기침과 가래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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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2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 불고 찬 날씨가 조금 풀렸지만 또 안개 기운이 있다.
오늘 몇 곳의 인사를 하려고 <지명>양동(良洞)지명> 이 주서(李注書)에게 말을 빌렸다. 문득 주망(注望)이 나왔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야흐로 애타고 고민스런 때에 류 침랑(柳寢郞)이 직소(直所)에서 들어왔다. 말을 빌려 타고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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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0일
| 哲宗10
| 己未
| 새벽부터 비오다.
<지명>위라(位羅)지명> 면상(綿商) 등이 모두 솜을 지고 닭이 울자마자 다른 가게로 나갔다. 과연 비에 젖지 않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바로 죽은 형의 첫 수일(晬日)이다. 궐에 들어온 후 여러 차례 꿈에서 보았는데 항시 살아계시는 것처럼 별다른 가르침의 말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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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큰 바람이 불고 춥다.
촌사람들이 모두 오랑캐 기병들이 움직일 조짐을 말했다. 병자년을 경험했기 때문이 이니 은우(隱憂)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