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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10일
| 哲宗10
| 己未
| 햇빛이 매우 성하여 혹한 열기를 견디기 힘들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지명>예천(醴泉)지명> <지명>사곡리(沙谷里)지명>에서 소가 괴물을 낳았는데, 허리 위는 사람 같고 허리 아래는 소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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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3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고 춥다.
오늘은 바로 죽은 누이의 제삿날이다. 부득이 하인을 보내 제사를 돕게 했으나 종일토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명>원당(圓塘)지명>의 안씨(安氏) 친구 두 사람이 내방했는데, 명첩(名帖)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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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매우 춥다.
들으니 관에서 재 징수하는 장색(將色)을 다시 내보냈다고 한다. 개세(慨世)의 탄식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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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6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어떤 사람이 <지명>한양지명>에서 와서 전하기를, 두 세가(勢家) 모두 문 밖에서 들어왔는데 서 상서(徐尙書)가 경평군(慶平君)을 논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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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4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큰 눈이 내리다.
겨울 들어 첫 눈이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지명>양곡(良谷)지명> 며느리가 전일(前日) 한기와 싸우며 고통스러워했는데 혹 돌림감기의 조짐은 아닌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어제 저녁에 들으니 본관(本官)에서 낙동강 이남을 조사하고 또 별장(別將)과 용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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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눈이 내리다.
부리(府吏) <인명>권도하(權度夏)인명>가 돌아갔다. 그 길에 <지명>상리(上里)지명> 김씨의 일을 들었는데 <인명>김문거(金文擧)인명>와 불화가 생기고 돌아간 뒤였다. 그 마을 <인명>순옥(順玉)인명>놈은 <인명>이철(履轍)인명>집의 여종 남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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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0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매우 춥고 눈이 내리다.
몇 십일 땔나무가 계수나무처럼 비싸게 올랐다. <인명>중갑(重甲)인명>이 <지명>한양지명>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척질(戚姪) <인명>김원방(金元方)인명>이 <지명>평성(坪城)지명> 고장(古庄)에서 내방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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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8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누우면 숨이 가쁘고 앉으면 기가 모자라니 매우 고민되는 일이다. 이날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이 의(李医)가 와 증세를 살피고 투약하고 그로 하여금 풀게 하고 땀을 뺏으나 효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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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6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조금 풀리다.
아침에 한양 가는 인편에 편지를 부쳐 <인명>우흠(宇欽)인명>에게 <지명>한양지명>의 소식을 탐문하게 하였으나 회복(回復)이 매우 어려우니 어찌 얻을 수 있을까? 부주(府主) <인명>순철(順哲)인명>이 와서 전하기를 부(府)가 북소(北騷)로 시끌시끌하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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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11일
| 哲宗 11
| 庚申
| 눈 위에 서리가 두껍게 내리고, 또 안개 기운이 사방에 가득하다.
또 안개 기운이 사방에 가득하니, 돌림병의 조짐인가? 어제 고향 편지를 보니 이미 곳곳에 돌림병이 있다고 하니, 미리 걱정스럽다. 주서(注書) <인명>이재규(李在奎)인명>가 찾아왔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이 찾아와서 전하기를, 그의 맏형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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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큰 비가 내리다가 오후에 개다.
시장에서 보리가 출하되어도 값이 더욱 폭등했다고 한다. 시장에서 1승(升)의 쌀 값이 2전(錢) 7엽(葉)이라고 하니 또한 괴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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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9일
| 哲宗10
| 己未
| 밤에 비가 내리다가 아침이 되자 쏟듯이 내리다. 또 장맛비를 이루는 듯 했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지명>합천(陜川)지명>에 <인명>주목(朱木)인명>이 있는데 환술(幻術)이 있어 족히 사람을 부를 만하고 그의 스승은 중국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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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8일
| 哲宗10
| 己未
수상한 배가 혹자는 30척이라 하고 혹자는 1척이라 했는데 그 높이와 폭이 산 같았으며, 그 징색(徵索)하는 것은 소 천 두(頭), 쌀 3백 석(石), 녹용(鹿茸), 인삼(人蔘) 등의 물건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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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1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또 구름 기운이 있다. 늦은 아침부터 날씨는 붉은 화로 같았다. 오후에 광풍과 소나기가 잠시 지나갔지만 비가 겨우 먼지 적실 정도밖에 되지 않다.
듣자니 모레 <인명>낙규(洛圭)인명>를 매장한다고 했다. 만여와 장강을 대지에서 빌렸는데, 비록 전례는 없으나 죽은 이를 위해 그의 청을 따른 것이니, 이후의 폐단이 되는 일이 없을까? 날이 가물기가 이와 같기에 민심의 태반이 선한 성품을 잃어버렸다. 약간의 반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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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9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차아(次兒)가 <지명>봉암(鳳岩)지명> 모임에서 돌아왔다. 전하기를 수령의 내행(內行)이 오늘 <지명>풍현(豊縣)지명>을 지난다고 했다. 준사(俊師)에게 편지가 와서 답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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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7일
| 哲宗 11
| 庚申
<지명>두곡(杜谷)지명> <인명>홍애(洪哀)인명> 형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해 그와 이야기 했다. 계아(季兒)는 <지명>신지동(新池洞)지명>에 문상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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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5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점차 혹독해 지다.
촌(村)의 젊은이들이 <지명>역양원(驛陽院)지명>에서 와 전하기를, 면내(面內)의 사람들이 약속대로 움직여 한번 만난 다음에 내일 부(府)에 들어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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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3일
| 哲宗 11
| 庚申
| 조반 이후로 바람이 불다.
함 군(咸君)에게 답장을 써서 부(府)로 들어가는 사람 편에 부쳤다. <지명>용궁(龍宮)지명> <지명>삼진(三津)지명> 묘지기 <인명>이기준(李奇俊)인명>이 서간(西磵) 사당의 부유사(副有司)를 잡아간 일로 와서 간청하여 <지명>한양지명>에 편지로 부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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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6일
| 哲宗10
| 己未
| 밤에 한 쟁기의 비가 내리다.
들으니 동지 사행(使行)이 돌아와 『북경견문록(北京聞見錄)』이 있으니 영외(嶺外)로 파전한다고 하여 편지를 써서 촌한(村漢)들로 하여금 <지명>하상(河上)지명> 류 척질(柳戚姪) 부쳐 구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부내(府內)의 <인명>전재춘(全在春)인명>이 상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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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14일
| 哲宗10
| 己未
<지명>법흥(法興)지명> <인명>이관수(李觀秀)인명> 형이 내방하여 유숙했는데 그의 말에는 적막함을 달래 것들이 많았다. <지명>표곡(瓢谷)지명> <인명>류안변(柳安邊)인명>이 주면(主面)을 다시 새겼는데 또한 시변(時變)과 연관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