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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며 바람이 불다.
<인명>의가(儀可)인명> 형이 <지명>학산(鶴山)지명> 유람에 가자고 왔으나 나는 다리가 쑤셔 함께할 수 없었다. 스스로 쇠약한 몸을 한탄하며 타인의 좋은 마음을 저버렸다. 세 아들이 암자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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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1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식후에 들으니 재종질(再從姪) <인명>용흠(龍欽)인명>이 우연히 광흥사(廣興寺)로 갔다가 아이들의 편안한 소식을 전해 와 위로가 되었으나 목 아(木兒)는 학업을 희롱하여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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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20일
| 哲宗10
| 己未
<지명>오천(浯川)지명>에 사는 성(姓)이 한씨(漢氏) 감관(監官)이 저포(紵布) 한 필을 가지고 왔는데, 그 값이 10민(緡)이라고 한다. 내게는 하복(夏服)이 없어 애써 받아 두긴 했으나 요즘 집안 형편이 간두(竿頭)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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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29일
| 哲宗10
| 己未
소회(小晦)이다. <지명>산양(山陽)지명> <인명>채우(蔡禹)인명> 형이 <지명>금계(金溪)지명>로부터 돌아와 문안을 왔다. 덕요 령(德鎐令)의 말에 따르면, <인명>계한(啓翰)인명>의 가서(家書)에 황태자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이 있었다고 하나 한동안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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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8일
| 哲宗10
| 己未
| 추운 날씨가 조금 풀리고 미풍이 불다.
촌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화족자(畵簇子) 세 폭을 배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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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16일
| 哲宗10
| 己未
| 약한 비가 내려 먼지를 적시다.
여종들이 연씨와 고초(古椒) 종자를 옮겨 심었다. 고갈(枯渴)의 걱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미 홍화(紅花)를 딸 수 있으니 곧 이앙할 때인데 또한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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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4일
| 哲宗10
| 己未
| 비오다.
땔나무가 계수나무처럼 비싸니 고민이다. 가내의 비복(婢僕)들로 하여금 개맥(開陌)하게 하고 작은 집 동전(東田)에 이앙하도록 하였는데, 과연 계획대로 될 수 있을까? 함 군(咸君)이 오전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감영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제수되어 도목정사에 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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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3월 22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지명>반포(反浦)지명> 족군(族君) <인명>중위(重緯)인명>가 찾아왔기에 나는 천운정(天雲亭) 주인에게 편지를 부쳤다. 일찍이 박 가(朴哥)가 작변하였을 때 다툼을 식히는 일을 담당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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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3월 30일
| 哲宗10
| 己未
| 종일토록 바람이 불다.
<지명>마동(馬洞)지명> 족질(族姪)을 그저께 <지명>예천(醴泉)지명>으로 보내 <지명>위라(位羅)지명> 서원(書員)을 뵙게 했다. 오늘 아침 들으니 안 갔다고 하니 믿을 수 없는 그 사람됨에 크게 탄식했다. <지명>사촌(沙村)지명> 김 형(金兄)이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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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8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도림회(道林會)에 참석했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밤에 비가 왔다. <지명>계상(溪上)지명> 하인이 왔다. 양식이 떨어져 굶주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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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16일
| 哲宗10
| 己未
다리 쑤시는 증상 때문에 오래 문밖을 나가지 못했다. 오늘 날씨가 조금 온화하여 지팡이를 짚고 동구 밖을 나갔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함이었다. 촌 젊은 사람으로 하여금 우립(雨笠)을 만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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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25일
| 哲宗10
| 己未
봉정사(鳳停寺) 승려 <인명>묘인(竗仁)인명>이 와서 환지(還紙)와 휴지를 청하여 5근(斤)을 주었다. 5월 20일 후에 승려 편에 세 아들과 목 아(木兒)의 소식을 듣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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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4일
| 哲宗10
| 己未
한발의 기운이 너무 심하다. <지명>하상(河上)지명>의 두 척손(戚孫)이 내방했다. 들으니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사람들은 혹자는 산 유람을 핑계로, 혹자는 적막함을 달랜다며 나란히 지팡이를 짚고 사방으로 나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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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12일
| 哲宗10
| 己未
<지명>법전(法田)지명> <인명>강진규(姜晉奎)인명>【규(圭)】가 접위관(接倭官)으로 찾아와 전하기를 작년 겨울 동지사(同知事) <인명>이근우(李根友)인명>가 견문록을 올렸고, <지명>한양지명>에 북소(北騷)가 크게 일어나 변괴가 점차 생겨났으며, 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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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0일
| 哲宗10
| 己未
| 아침부터 비가 쏟아 붓듯 내리다. 오후에 조금 개고 밤에 다시 쏟아지다.
차아(次兒)가 <지명>우안(愚安)지명>, <지명>춘평(春坪)지명>에 갔다가 돌아갔다. 최 선달(崔先達)이 찾아왔는데, 계아(季兒)에게 활쏘기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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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6일
| 哲宗10
| 己未
| 종일 동풍이 불다.
<지명>하상(河上)지명> 표질(表姪) <인명>류진황(柳進璜)인명>이 찾아왔다. 나는 복통이 조금 있어 오는 사람들을 접대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중아(仲兒)가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처가에서 『수호지(水滸志)』를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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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14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목 아(木兒)가 그의 숙(叔)을 따라 절로 올라갔다. 이번 11일 책읽기를 싫어하는 병증을 누그러뜨리지 않으려 해서 집에서 하게하면 책에 마음을 두지 않을까 염려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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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22일
| 哲宗10
| 己未
큰 한발의 조짐이 있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패지(牌旨)가 왔는데, <인명>류겸(柳謙)인명> 늙은이가 이름을 지우고 분탕질하니 매우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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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일
| 哲宗10
| 己未
사종(四從) <인명>치홍(致洪)인명> 군(君)이 <지명>소산(素山)지명>으로부터 <지명>한양지명> 소식을 전해왔다. 역시 이 진사(李進士)와 채 석사(蔡碩士)의 말대로 왕세자가 지난 달 23일 인시(寅時)에 갑자기 죽었다고 했다. 온 나라 신민들이 우러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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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10일
| 哲宗10
| 己未
| 바람이 불다.
가을보리가 장에 나왔다고 하나 가격은 높아 정(正) 3두(斗)에 1냥이고, 맥(麥) 1두는 7전이라고 한다. 연해의 읍(邑)에서 실어 올 수가 없어 연경에서 들와서 그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