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에 대한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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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7월 10일 | 哲宗10 | 己未 | 날이 매우 덥다.
세 아들이 광흥사(廣興寺) <지명>난곡(蘭谷)지명>에서 내려 왔다. 햇볕이 매우 강해 탈날 걱정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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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8월 5일 | 哲宗10 | 己未 | 전날 밤부터 온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다.
전날 밤부터 온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으니 바라고 바라던 뒤 끝에 사뭇 농가의 희망에 위로가 되었으나, 이처럼 이삭이 날 때를 만나 오래 비가 내리니 염려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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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 <지명>산양 시(山陽市)지명>에서 묵었다. 오랫동안 출입을 전폐한 뒤 끝이라 온 몸이 아팠다. 밤에 편히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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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21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저녁에 약한 비가 내리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새 며느리가 돌아왔다. 세 아들의 양식이 떨어져 여러 날이 되어도 아직 소식이 없어 참으로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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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물을 길을 정도의 희우(喜雨)가 내리다. 저녁에 <지명>한양지명>소식을 들으니 금년 경과(慶科) 출신의 사람들이 주상을 대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정리가 혹 그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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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지낸 뒤에 서화첩을 배접했다. 이는 수년간 마음을 쓴 정성이 깃든 것이라 아이들과 종일토록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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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7월 15일 | 哲宗10 | 己未 | 오후에 폭우가 내리다.
계아(季兒)는 부(府)에서 돌아오다 <지명>풍역(豊驛)지명>에 연이은 비 소식을 들어 흠뻑 젖는 것은 면했지만 몇 시간 뒤에 개울물이 불어 건널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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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민정(黽亭)지명> 작은 주인 <인명>김휘태(金輝泰)인명>가 그들을 내방하였는데 <지명>상선(商善)지명>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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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8월 10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차아(次兒)가 <지명>한양지명>으로 간 지 이미 21일째인데도 아직 소식이 없으니 매우 괴의하다. 염려가 날마다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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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병곡(屛谷)지명>에 분황(焚黃)하는 일 때문에 온 면(面)사람들이 노동서당(魯東書堂)에 모였지만 나는 여름 감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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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7월 29일 | 哲宗10 | 己未 | 종일토록 한증막이라 결국 세상에 살 경황이 없다.
소일할 계획을 세워 작은 마루에 자리를 옮기고 누워 『수호지(水滸志)』를 보니 어두침침 잠이 와 몇 장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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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8월 8일 | 哲宗10 | 己未 | 흐리다가 볕이 나다가 하다. 찌는 듯한 더위가 7월 그믐 무렵과 다를 바 없으니 늦더위가 매우 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