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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조복(朝服)과 여러 물건들을 <지명>장동(長洞)지명>에 보냈고, 답장을 보았다. 오늘 오시(午時)는 곧 부묘(祔廟)를 진하(進賀)하는 날이다. 나는 비록 실직(實職)은 없으나 오로지 부묘를 위해 올라 와서 50일 동안 두루 갖추느라 무한히 고생했으니 나아가 참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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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음응(陰凝)하다.
날씨가 음침하게 응결하여 안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낀지 이미 한 달이 되었으니 하늘에서 내린 액운이 장차 백성들을 죽이려는 것일까? 이른 아침 입직(入直)했다. 새로 큰 병을 겪은 뒤 끝이라 기식(氣息)이 침침하고, 홀로 빈 청사(廳舍)에 앉아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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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음려(陰沴)하여 항상 개지 않다.
이른 아침 상사(上舍) <인명>김여용(金汝用)인명>이 또 찾아왔는데, 객지에서 만난 동향 사람이기에 그 의분(誼分)을 사랑할 만하다. <지명>현애(玄厓)지명> <인명>김백첨(金伯瞻)인명>의 상(喪)에 관해 전해주었는데, 여러 차례 급작스러운 설사를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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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7일
| 哲宗 11
| 庚申
채 아(蔡兒)의 설사 증세가 어제와 같다. 하루에 7, 8차인데 대나무 통에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온 집안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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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 을풍(乙風)이 어제와 같이 불다.
채 아(蔡兒)가 방의 한기를 입고 또 아침 전에 묽은 설사를 하였고 얼마 있다가 또 활변(活便)을 보았다. 입에 맞는 음식이 없었다. 새로 딴 외를 사서 밥을 약간 먹었다. 외(苽)가 설사에 이로운 것은 아니지만 위(胃)를 연다면 다행일 것이다. 오늘 아침 <인명>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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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가 내리다.
차아(次兒)가 오늘 마땅히 집에 돌아올 것인데 바라는 대로 비를 맞지 않고 올 수 있을까. 만약 <지명>의인(宜仁)지명>에 머무른다면 내일의 일을 또한 알 수 없다. 고민스럽고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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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9일
| 哲宗10
| 己未
| 음려(陰沴)한 날씨가 조금 풀리다.
음려(陰沴)한 날씨가 조금 풀렸으나 해가 날 때 멀리 <지명>남산(南山)지명>을 바라보니 여전히 안개 기운이 있었다. 한 번 괴질(恠疾)이 성 안으로 들어온 뒤로 34일 내에 음악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는데, 어제 밤에 비로소 젓대소리가 들렸으니 앞으로 태평하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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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3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종일 우레가 치고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춥다.
듣기에 정부(政府)에서 백관(百官)들의 이의(肄儀)가 있다고 한다. 직장(直長) <인명>김형집(金亨集)인명>이 하인을 보내 참석 할 지를 물어주었기에, 그 사람의 나를 위한 정성에 매우 탄복했다. 또 듣기에 임금이 장차 내년 봄에 신문(新門) 안 대궐로 이어(移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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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6일
| 哲宗10
| 己未
| 저녁에 구름 끼고 흐리다가 비가 내리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앉아 세수하고 머리를 빗어 정돈했다.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시켜 말을 먹이라고 했는데 말이 말죽을 먹지 않고 또 복통을 일으키니 일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인 격인지라 어찌 급작스러운 상황에 변통 할 수 있겠는가? 병든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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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9월 28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장시간동안 마치 안개가 뒤덮인 것 같아 해가 나와도 빛이 없다.
아침에 도감 서리(都監書吏)가 내일 습의(習儀) 이후 의물(儀物)을 받들어 입궐하는 것 때문에 와서 고목(告目)을 올렸다. 그래서 병든 상황이 이와 같아 나아가 참여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도감소(都監所)에 편지로 통보했다. 아침 늦게 비로소 좁쌀미음 반 그릇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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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3일
| 哲宗 11
| 庚申
가뭄의 난리가 날로 심해졌다. 앞들에 나가 보니 비록 혹 지금까지 이앙(移秧)한 곳이 있더라도 날이 뜨겁기가 이와 같으니 3, 4일을 보전하기가 어려우니 심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기에 몹시 고민스럽고 고민스럽다. 가동(家僮)이 부중(府中)에서 돌아왔다. 용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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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일
| 哲宗 11
| 庚申
<지명>의인(宜仁)지명> 이 대감(李台)이 세상을 등졌다. 오늘은 곧 목 아(木兒)의 혼인날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우선 비는 오지 않았으나 생각건대 납채(納綵)가 이미 거행되었을 것이다. 얼마 있다가 비가 또 시작되었다. 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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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0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가 종일토록 내리다.
앞들의 높은 논에 모두 물이 찼다. 삼농(三農)의 바람에 크게 위로가 되었다. 김 의(金医)가 오늘 다시 오기로 약속했는데 비를 만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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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8일
| 哲宗 11
| 庚申
| 을풍이 또 종일토록 불다.
<지명>망천(忘川)지명>에서 재요례(再邀禮)를 하여 사람과 말이 저녁에 왔다. 이른 아침에 부중(府中)에 사람을 보내 귤계음(橘桂飮)을 지어 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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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6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가 흐리다. 매우 뜨겁다.
채 아(蔡兒)가 반년 병에 묶여 있던 나머지 답답함이 쌓여 지팡이를 짚고 내려왔다. 내가 지내는 청방(廳房)에 묵으며 함께 누웠다. 호흡을 보니 평온히 자는 때 같았는데 다만 설사 증세가 가시지 않고 위경(胃經)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가장 고민스럽다. 차아(次兒)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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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2일
| 哲宗10
| 己未
| 조금 쌀쌀하다.
<지명>장동(長洞)지명> <인명>이태(李台)인명>가 말을 빌리자는 요청에 매우 난처해했다. 식후에 <인명>영직(英直)인명>으로 하여금 그의 집으로 끌어가게 했다. 그 등에 난 창(瘡)을 보니 현황(玄黃)의 모습이었다. 답서(答書)에 장난삼아 "먹이고 단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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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9월 27일
| 哲宗10
| 己未
| 음무(陰霧)의 기운이 나날이 심해져서 아침 내내 햇빛을 볼 수 없다.
이른 아침에 한 차례 설사를 겪고 나니 입맛이 변하고 근력이 시들해져 매우 견디기 힘들었다. 오늘은 봉록(捧祿)을 받는 날이다. 하인과 말을 <지명>광창(廣倉)지명>에 보내버려서 수하에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위장(胃腸)을 평안하게 할 약을 지어오고자 했으나 속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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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0일
| 哲宗10
| 己未
해가 뜰 때 안개 같으면서 악기(惡氣)같은 기운이 성내(城內)에 가득했다. 어찌 때 아닌 기운들이 멋대로 행해짐이 심해지는가? 내일은 또 존숭(尊崇)하고 진하(陳賀)하는 날이다. 문 열기를 기다려 입궐할 텐데, 미리 경과에 대한 마음 씀이 절실하다. 주서(注書)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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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4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조금 맑다.
책보(冊寶)를 들이는 것과 존숭(尊崇) 습의(習儀)에 참여하는 것 때문에 서리(書吏)의 고목(告目)에 의하여 동 틀 새벽에 일어났다. 촛불을 밝히고 세수 하고 머리를 빗고는 세 푼의 장반(醬飯)으로 요기한 후 율관청(律官廳)에 갔다. 여러 동료들이 늦은 이후 모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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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9월 26일
| 哲宗10
| 己未
이른 아침 이불을 가지고 입직(入直)하였는데, 음무(陰霧)의 기운이 침범하여 매우 힘들었으나 당번에게 있어서 어찌하겠는가? 공조청(工曹廳)에 들어가 동료 <인명>이원성(李源星)인명>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묘(祔廟)의 의물(儀物)들을 봉심(奉審)한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