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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12일
| 哲宗 11
| 庚申
계아(季兒)를 학암(鶴庵)에 보내어 두더지를 파서 구하게 했다. 채 아(蔡兒)의 병에 대해 들으니 마땅히 약으로 써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졸지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마음에 몹시 애타고 고민스러웠다. 운암(雲庵)의 소곤(小髡) <인명>서영(瑞英)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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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0일
| 哲宗 11
| 庚申
| 가뭄이 점점 심하다.
밭의 채소가 모두 말랐다. 사방의 농부들이 말하기를 이앙(移秧)이 점점 늦어져서 걱정된다고 했다. 재종질(再從姪) <인명>계성(季誠)인명>이 낙연서원(洛淵書院)의 가역소(家役所)에 있으면서 8전(錢)으로 뱀장어 14미(尾), 쏘가리 4미(尾), 민어(黽魚) 6미(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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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8일
| 哲宗 11
| 庚申
종질(從姪) <인명>공일(恭一)인명>이 백록사(栢麓祠)의 창설재(蒼雪齋)와 눌은(訥隱)의 입향제(入享祭)에 참석했다가 돌아왔다. 이번에 들은 것은, <지명>오계(梧溪)지명> 두 파의 일 처리가 몹시 좋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화계 족조(花溪族祖)가 니산 동주(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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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6일
| 哲宗 11
| 庚申
채 아(蔡兒)가 오늘 아침 엽충환(獵蟲丸) 5분(分)을 복용했다. 거듭 심한 설사를 하며 위급하게 넘겼다. 대개 엄 의(嚴医)가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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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4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다가 햇살이 나다가 하다.
오늘 비로소 이앙(移秧)을 마쳤다. 대개 수개월 동안 근심의 바다에 있었던 집안에 또 농우(農牛)가 없었던 까닭이다. 을풍(乙風)이 종일토록 크게 불었다. 이앙(移秧)하는 비복(婢僕)들이 춥다고 함이 서린 내린 추위와 다름없었다. 김 의(金医)가 오천(浯川)에서 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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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2일
| 哲宗 11
| 庚申
| 어제부터 날씨가 매우 뜨겁다.
채 아(蔡兒)가 또 배가 불러옴이 있었다. 육군자탕(六君子湯)을 복용했다. 차아(次兒)가 오늘 반드시, <지명>주촌(走村)지명>과 <지명>상계(上溪)지명>를 방문하였다가 둘러서 <지명>의인(宜仁)지명>에 도착하여 문상하고 유숙하였다면 내일 돌아올 것인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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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9월 24일
| 哲宗10
| 己未
| 어두운 안개 기운이 조금 개다.
오늘 아침 습의(習儀)에 참여하는 일 때문에 어제 밤부터 새벽까지 잠을 못 잤으니 이는 매우 심란했기 때문이다. 일찍 도감소(都監所)에 가서 여러 당상관(堂上官), 낭관(郎官)들과 함께 의정부(議政府) 습의(習儀)에 나아가 참여하고 머물던 숙소로 돌아오니 해가 이미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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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30일
| 哲宗 11
| 庚申
엄 의(嚴医)를 보냈다.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채 아(蔡兒)의 복통이 줄어든듯했다. 그러나 입맛이 점차 크게 변했다. 이것이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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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8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계아(季兒)가 <지명>망천(忘川)지명>에서 돌아왔다. 어제 낮에 부(府)에 들어갔다가 비를 만나 머물렀고 석류 5개와 배 3개를 얻어 가지고 왔다. 채 아(蔡兒)의 병든 입과 위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갔을 때 또 거위 알 3개를 얻어 가지고 왔고 또 삽살개 2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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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16일
| 哲宗 11
| 庚申
<지명>망천(忘川)지명>에서 혼인을 위해 온 사람이 돌아갔다. 엄 의(嚴医)가 와서 말하기를, "부중(府中)의 떠드는 말에 올해 크게 가물며 5월 20일 전에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라고 하니 그 말이 몹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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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4일
| 哲宗 11
| 庚申
채 아(蔡兒)의 설사 증세가 또 백리(白痢)가 되었고 입맛이 크게 변했다. 진기가 점차 무너지는 것은 고사하고 이것이 고민스럽다. 작은 못의 연잎이 거의 못을 채울 정도였다. 충분히 눈요기가 될 만했다. 재종손 <인명>조갑(祖甲)인명>이 <지명>인동(仁同)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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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3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다가 비가 내리다가 하다.
저녁에 초례(醮禮)를 간 일행이 모두 돌아왔다. 차아(次兒)도 돌아왔다. 전하기를, 새사람이 숙성하고 완실(完實)하다고 하니 이것이 다행이다. 들으니, "돌아오는 길에 부(府)에 들어가 장차 향인(鄕人)이 갇힌 것을 물으니 어제 낮에 출송되었다고 하는데 보지 못하고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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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1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다가 비가 오다 하다.
<지명>현촌(縣村)지명>의 채주 (蔡周 ) 형이 찾아오다. 대개 그 매씨(妹氏) 재종수(再從嫂)의 회갑이 오늘이다. <지명>법전(法田)지명> 강 랑(姜郞)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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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9일
| 哲宗 11
| 庚申
목 아(木兒)를 짐을 꾸려 <지명>망천(忘川)지명>에 보냈다. 강 랑(姜郞)이 돌아간다고 했다. 그 마을의 『황극신편(皇極新篇)』을 보기를 요청했다. <지명>저동(楮洞)지명>의 빈(賓)이 부중(府中)에서 돌아왔다. <지명>의성(義城)지명> 이노(吏奴)의 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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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7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다가 맑다.
채 아(蔡兒)가 오늘 저녁에 병 조리하며 지내던 곳으로 올라갔다. 차아(次兒)가 또 종일토록 고대하였는데 오지 않았다. <인명>류진우(柳進瑀)인명> 척질(戚姪)이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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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6일
| 哲宗 11
| 庚申
오후에 집에서 보낸 사람이 부중(府中)에서 돌아왔다. 소충전(掃蟲煎) 3첩과 온장탕(溫臟湯) 3첩을 지어왔다. 엄 의(嚴医)의 답서도 왔다. <인명>응칠(應七)인명>의 편지를 보았다. "동남의 모든 면(面)에서, 향유(鄕儒)가 형을 받고 갇혔다는 말을 들은 진신장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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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5일
| 哲宗 11
| 庚申
| 오후에 또 비오다.
상답(床答)으로 얼마를 준비해 보냈다. 번뇌가 많은데 오후에 또 비가 왔다. 일행이 길에서 젖지는 않았을까. 또한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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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3일
| 哲宗 11
| 庚申
집 사람을 부중(府中)의 약국에 보내 육군자탕(六君子湯)과 우슬모과전(牛膝木瓜煎), 모두 5첩을 지어왔다. 채 아(蔡兒)의 설사 증세가 오늘 저녁부터 비로소 감소되는 기운이 있으니 다행스러움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김 의(金医)를 우선 만류하여 잡아두고 병의 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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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가물 기미가 또 심하다.
이앙(移秧)한 논이 태반이 거북 껍질처럼 갈라졌다. 내일은 곧 <지명>계상(溪上)지명> 빙옹(聘翁)의 면례(緬禮)를 하는 날이다. 차아(次兒)로 대신하여 영궤(靈几)에 전(奠)을 올리도록 했다. 가서 각처에 부고를 써서 부쳤다. 돌아오는 길에 시켜서 연곡(淵谷)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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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9일
| 哲宗 11
| 庚申
| 식후에 또 큰 비가 내리다.
채 아(蔡兒)가 전날 밤부터 복통이 더욱 심했다. 오늘 아침 비로소 이신환(二神丸)을 복용했다. 차아(次兒)가 돌아오는 길에 <지명>연곡(淵谷)지명> 권 의(權医)를 보고 약을 묻고는 화제(和劑) 3장을 얻어왔다. 종손(從孫)이 부(府)에 들어가는 편에 <인명>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