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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 전에 갤 조짐이 있는 듯하다.
<지명>천전(川前)지명> 김 형(金兄)이 식후에 돌아갔다. 조금 뒤 <인명>영직(英直)인명>이 <지명>한양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왔고, 그 편에 우 아(宇兒)의 편지를 받아서 병 없이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소식이 막힌 뒤 끝에 위로됨을 헤아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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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4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큰 바람과 추위는 없을 듯하다.
이른 아침 경팽(京伻)을 보냈다. 그믐 초에 반촌(泮村)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릉사(◯陵寺)에 나가 머물 듯하여 왕복하는 폐가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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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3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매우 온화하다.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종증손부(從曾孫婦)의 신례(新禮)가 길일에 행해졌다. 새사람 역시 기대한 만큼 위로가 되었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척손(戚孫) <인명>이만청(李晩淸)인명>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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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1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가동(家僮) <인명>원금(遠金)인명>이 <지명>군위(軍威)지명>에서 돌아왔다. 길에 <지명>소산(素山)지명> <인명>김보균(金普均)인명> 장(丈)이 돌아오는 길에 만났다고 했다. 영문(營門)에 불미스러운 전언(傳言)이 있었는데, 바로 장초(狀草) 일 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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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7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가 오다.
채 아(蔡兒)의 병이 드러눕는 지경에 이르렀고, 묽은 설사가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알지 못할 지경이니 차라리 보고 싶지 않다. 대지 지기[大枝直] 놈 <인명>운이(雲伊)인명>가 일 때문에 상경하는 편으로 또 편지를 부쳤다. 대개 그 놈이 말한 것은 그의 사돈에게 빌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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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가 오다.
아침부터 비가 오니 목 아(木兒)는 아마도 출발하기 어려울 것 같고, 계아(季兒)의 나무 베는 일 또한 비가 장난질하기에, 집에 있으면서 염려됨이 실로 깊다. 저녁에 계아(季兒)가 산에서부터 비를 무릅쓰고 돌아왔는데, 판목(板木)이 척(尺) 수가 차지 않아 낭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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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밤새도록 비가 내리다.
<지명>우안(愚安)지명>의 재사(齋舍) 뒤편 간좌(艮坐) 곤향(坤向)의 언덕[原]으로 산을 정했으니 이는 일찍이 앞서 염두에 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기에 차아(次兒)가 온 몸이 젖은 채로 저물녘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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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1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종일 오다.
<지명>천전(川前)지명> <인명>김창식(金昌植)인명> 형이 찾아와서 유숙했다. <지명>한양지명>으로 간 하인이 오늘도 오지 않았으니 어떤 사고로 그런지 알 수 없다. 족질(族姪) <인명>경흠(璟欽)인명>이 <지명>청풍(淸風)지명> 유 선전(兪宣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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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9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가 구름 끼고 흐리다.
<지명>역촌(驛村)지명> 척(戚) <인명>이성유(李聖由)인명> 씨가 찾아왔다. 듣기에 괴질(恠疾)이 곳곳에 번성하고 있다고 한다. 출소주(秫燒酒)를 만들기 위해 내간(內間)에 술을 빚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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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4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오다.
이른 아침에 위 아(渭兒)를 <지명>하상(河上)지명>에 보냈는데, 길을 헤아려보니 7리(里)가 안 되었지만 하늘에서 또 비가 내리니 젖지나 않을까? <지명>천안(天安)지명> 김 의원(金醫員)이 또 올라왔다. 북쪽의 시끄러운 소문은 망연히 매우 위태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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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2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다가 비 오다가 하다.
허탈하게 빈 마루에 앉아 있자니 온갖 마음이 모두 잿더미처럼 타들어갔다. 마침 위로 해 주러 온 마을 사람이 있어서 그와 고사(古事)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잠시 우울함을 벗어났다. 밤에 심기가 편치 못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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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0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비가 오다가 저녁 이후에 개다.
<지명>우천(愚川)지명> <인명>류여목(柳畬睦)인명>이 조문 왔다. <지명>전고(前臯)지명>와 <지명>망천(忘川)지명>으로 갔던 부고 사신[訃使]이 저물녘에 모두 돌아왔다. 외관(外棺)을 만드는 일 때문에 또 <지명>위라(位羅)지명>에서 벌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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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8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 전에 비가 오고, 낮 상간에 또 비가 오다. 동남풍이 종일 크게 불다.
어떤 사람이 <지명>한강지명> 물이 넘쳤는데 예전에도 없었을 정도였기에 선박을 운행하지 못한지 거의 8~9일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으니 또한 이상한 일이다. 부주인(府主人) <인명>순철(順哲)인명>이 이달 1일 상경했을 적에 20일 상간에 돌아올 것이라고 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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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6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오다.
가을의 서늘함이 든 지 이미 여러 날인데도 밤마다 모기와 벼룩 때문에 피곤하여 편히 잘 수 없다. 또 시름겹고 괴로움이 많아서 낮에는 책을 베끼는 것으로 업을 삼고 있는데, 눈이 침침하고 손이 떨리니 이것이 고민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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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14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바람 불고 추운 것이 여전하다. 식후에 폭우가 내리다가 그치다.
부주인(府主人) <인명>순철(順哲)인명>이 드디어 <지명>한양지명>에서 돌아왔다. 그 편에 우 아(宇兒)의 편지 및 척종질(戚從姪) <인명>순형(舜亨)인명>의 위장(慰狀)을 받아 근래의 상황은 아무 탈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늦은 아침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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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2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도 분간 못하다가 사시(巳時)에 이르러 해가 나다.
아침부터 안개에 덥혀 지척도 분간 못하다가 사시(巳時)에 이르러 해가 났고, 낮과 밤 내내 비가 오지 않으니 이제야 비로소 장마가 걷힐 징조인가? 듣기에 <지명>하상(河上)지명> 류 금산(柳金山) 또한 괴질(恠疾)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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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 밤에 비가 내리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돌아와서 들으니, 면회(面會)에는 사람이 매우 적었으며, 도원장(道院長)에는 <지명>예안(禮安)지명>의 홍주(洪州) <인명>이휘재(李彙載)인명>가 나왔고 제임(齊任)에는 면내의 몇 사람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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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낮에 비가 오다.
아침에 성복(成服)했다. 차아(次兒)를 <지명>갈전(葛田)지명>에 보내어 권 생(權生)을 만나기를 요청했는데, 조만간 엄토(掩土)하고자 할 계획 때문이다. 저녁에 <지명>소산(素山)지명> 김 우(金友)가 <지명>경성(京城)지명>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러 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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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9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 동남풍이 종일 불고 크게 서늘한 기운이 돌다.
동남풍이 또 종일 불고 크게 서늘한 기운이 도니 곡식에 피해가 없을까? <지명>신지동(新池洞)지명> 상사(上舍) <인명>이규응(李奎應)인명>이 그의 손자를 시켜 위장(慰狀)을 가지고 위문 왔다. 위장의 말미에 <지명>동파(東坡)지명> <인명>이상성(李相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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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7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오다.
아이들을 시켜서 지난 가을 도감소(都監所)에서 얻은 옥책문(玉冊文)을 배접하게 하였으니, 나중에 집안 대대로 전할 보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운 손(橒孫)이 세상에 있지 않으니, 공경히 지키는 것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편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