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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따뜻하다.
<지명>회평(會坪)지명> 감찰(監察) <인명>김병욱(金炳昱)인명>이 내방하였는데 호원(湖院)의 입향참례(入享參禮) 행사 때문이었다. 삽시간 수작하고 내일 저녁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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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9일
| 哲宗 11
| 庚申
| 겨울이 따뜻하여 봄과 같다.
소회(小晦)이다. 길한 조짐인지 모르겠으나 호환(虎患)이 없는 곳이 없으며 돌림병과 잡다한 병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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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8일
| 哲宗 11
| 庚申
아침에 <지명>위라(位羅)지명> <인명>몽일(夢日)인명> 놈이 비로소 <지명>한양지명>에서 돌아와 <인명>우흠(宇欽)인명>의 편지를 전해왔는데 날짜를 계산해보니 24일이었다. 그 늦는 이유를 물으니 면화(棉花)가 값이 좋지 않아 편지를 보여드리게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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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4일
| 哲宗4
| 癸丑
| 맑다.
여러 사람들이 무슨 일 없이 날을 보내는 것을 매우 힘들게 여겨서 적적함을 풀기 위해 <지명>삼청동(三淸洞)지명>에 놀러 갔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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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12일
| 哲宗4
| 癸丑
| 흐리다.
복합(伏閤)한지 3일이 되었다. 정원에서 원예(院隸)를 보내 들어오기를 독촉하자, <인명>유치임(柳致任)인명>, <인명>이재숙(李在䎘)인명>이 소수(疏首)를 따라 함께 정원으로 들어갔다. 소(疏)의 격식이 표준과 거리가 멀다는 것으로 여러 가지 허물을 집어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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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20일
| 哲宗4
| 癸丑
| 흐리다.
오늘 행대(行對)가 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에 지정된 기일이 없고, 갇혀 무료하니 고향생각과 객지의 시름을 풀길 없어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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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1월 1일
| 哲宗8
| 丁巳
| 아침에 사방 하늘에 구름이 없었으나 북쪽에 약간 거무스름한 기운이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저녁 백기(白氣)가 남쪽으로부터 북상하여 마치 하늘이 열리는 모양처럼 한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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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5월 26일
| 哲宗8
| 丁巳
청홍(靑紅)의 기운이 무지개처럼 해를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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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11월 12일
| 哲宗8
| 丁巳
| 아침에 처음 눈이 내리다.
동파(東坡) <인명>이원숙(李元叔)인명> 형이 <지명>한양지명>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러서 많은 <지명>한양지명>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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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4일
| 哲宗 11
| 庚申
듣건대, <지명>간산(艮山)지명> 정 정랑(鄭正郞)의 집에서 <지명>한양지명>에 하인을 보내기에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에게 편지를 부치고 아울러 문중의 돈 11민(緡)을 부쳐서 시장(諡狀)을 걸 때에 쓰게 했다. 진장(鎭將) <인명>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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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2일
| 哲宗 11
| 庚申
종손(從孫) <인명>낙주(洛周)인명>가 초택(草擇)에서 낙방하고 돌아왔다. <지명>매원(梅院)지명> 소종손(小宗孫)이 시(詩)로 참방하여 왔는데, 그 방성(榜聲)을 듣고서 놀람을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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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0일
| 哲宗 11
| 庚申
| 따뜻하다.
이른 아침 세 심부름꾼과 말 두필을 <지명>망천(忘川)지명> 신행(新行)에 보내는 데 혹 어둡기 전에 이르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어찌 없겠는가? 하물며 가마와 여러 도구들 대부분이 본가(本家)로 들어가기를 꼭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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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3일
| 哲宗4
| 癸丑
| 맑다.
복합(伏閤)이 미루어짐에 따라 비용이 소진되었으나 돈을 빌릴 길이 없었다. 향팽(鄕伻)을 밤낮으로 고대하며 기다렸으나 막연히 소식이 없어 매우 답답하고 고민스러웠다. 반궁의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문안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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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11일
| 哲宗4
| 癸丑
| 맑다.
묘시(卯時)를 알리자 다시 함(函)을 받들고, 일제히 엎드려 정원에 대개(大槩)를 보냈으나 정원에서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향팽(鄕伻)이 다섯 필의 말을 가지고 왔다. 집에 있던 사람들이 여러 소원(疏員)들이 돌아오는 것을 두루 배려한 일이라 감동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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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19일
| 哲宗4
| 癸丑
| 조반(朝飯) 후에 거센 바람이 크게 불었고 저녁에는 괴우(乖雨)까지 더해졌다.
상사(上舍) <인명>김정수(金正銖)인명>가 출발하자마자 날씨가 이와 같아서 아마도 강을 건널 가망이 없을 것 같으니, 길가는 일 때문에 걱정을 그칠 수 없었다. 재중(齋中)의 유생들과 반중의 진신(縉紳)들이 모이니, 온 종일 여관에 잠겨 무료한 마음에 조금 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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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27일
| 哲宗4
| 癸丑
| 아침에 안개가 사방에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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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5월 10일
| 哲宗8
| 丁巳
계부(季婦)가 딸을 낳았는데 술시(戌時)였다. 【사성(四星)은 정사(丁巳), 병오(丙午), 경인(庚寅), 술(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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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11월 10일
| 哲宗8
| 丁巳
처음으로 귤피지황탕(橘皮地黃湯)을 복용했는데, 바로 <지명>금수(琴水)지명> 의원 <인명>응회(應晦)인명>의 처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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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3일
| 哲宗 11
| 庚申
낮에 집하인 <인명>영직(英直)인명>이 <지명>망천(忘川)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왔다. 장차 모레에도 <지명>영서(嶺西)지명> 길을 떠날 것이니, 대개 가을에 그의 숙부를 매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여러 날 길을 떠나니 이것이 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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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1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어제부터 초택(草擇)을 행했지만 비 기운이 이와 같으니, 시험장의 상황이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다. 각처의 제종(諸宗)들이 <지명>대지(大枝)지명>로부터 와서 돌아가기를 고했다. 사급 족질(泗汲族姪)이 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