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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1일
| 哲宗4
| 癸丑
| 흐리다가 볕이 나다하다.
진흙길이 더욱 심하여 다니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 열원(列院)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신원(新院)에서 묵었다. 이날은 구십 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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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2월 28일
| 哲宗4
| 癸丑
| 날씨가 무덥다.
다른 지역의 지구(知舊)들을 대강 찾아보니, 여론이 모두 이번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실은 사문(斯文)의 궐전(闕典)이요 사림의 수치니, 장차 같은 목소리로 공생하자는 도리를 운운했다. 상규(常規)의 같음에는 <지명>한양지명>과 지방의 차이가 없으니 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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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7일
| 哲宗4
| 癸丑
| 차가운 비가 내려 어둡다. 종일토록 쉼 없이 내렸다.
도중에 있는 소행(疏行)이 지금 어느 곳에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결국 노인의 행사에 다니기가 어려운 것 같아 매우 염려된다. 비 내리는 형세가 이와 같은 데 여러 원(員)들이 모임에 나와 객지의 시름을 각별히 위로하고 날이 저물어 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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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8일
| 哲宗4
| 癸丑
| 맑다.
근실(謹悉)을 청하는 통문의 초고 얽어내어 과거가 끝나기를 기다려 재중(齋中)에 알렸다. ○ 깊은 곳의 여론을 들어보니 한결같이 회공(恢公)하자는 뜻이 있었다. 그러나 사안이 은전(恩典)에 관계되어 늦어짐을 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여고(旅苦)의 어려움이 가엽고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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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26일
| 哲宗4
| 癸丑
| 맑다.
통문(通文)을 고쳐 작성하여 재중(齋中)에 유(諭)를 보내 동의를 청했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삼가 아룁니다. 첨존(僉尊)들께서는 사방을 수조(秀造)하는 현자들로 한 나라의 수도에 살면서 인재 배양의 기강이 되고 사림 논의에 저울입니다. 무릇 이 글에 연관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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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9일
| 哲宗4
| 癸丑
| 쾌청하다.
사람을 보내 남북 촌(村)의 여론을 탐문하니 모두 대산(大山)의 입사(立祀) 반액(頒額)이 모두 아직 행해지지 않은 의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금령(禁令)이 지엄하여 가벼이 논의하기 어려움이 있고 관작과 시호를 내리는 한 건은 역시 차례대로 추숭하고 받드는 도리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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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20일
| 哲宗4
| 癸丑
| 맑다.
마침 정회(庭會)에 모이니 분란함이 더욱 심하여 본사(本事)가 방해되는 일이 없지 않아 유난히 고민스러웠다. 저녁에 <인명>강세규(姜世奎)인명>가 득참(得參)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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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28일
| 哲宗4
| 癸丑
| 흐리다.
4월 초2일로 복합(伏閤)하는 날짜를 골라 정하고 글을 지어 경중(京中) 친구들과 각 처에 알렸다. 그 글은 대략 이러하다. "유생들이 선사(先師) 대산 이선생의 시호를 청하는 일로 태학(太學) 재중(齋中)에 통고하여 이미 허락을 받고 동의하였으니 오는 초2일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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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6일
| 哲宗4
| 癸丑
| 늦게 개다.
소본(疏本)을 다 필사했다. ○ <인명>한계원(韓啓源)인명>이 작은 간통(簡通)으로 여론과 회공(恢公)의 뜻을 보여주고 또 본가사람들을 불러 함께 복합(伏閤)을 논의했다. ○ 기다리던 향팽(鄕伻)이 결국 이르지 못해 고민스러움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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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14일
| 哲宗4
| 癸丑
소두(疏頭) 장(丈)과 진사 <인명>김정서(金庭瑞)인명>, <인명>김진석(金鎭氵+奭)인명>, <인명>이재숙(李在䎘)인명>이 일제히 출발했다. 이번 행사에 올라온 제원(諸員)들은 족히 열 대여섯은 되었으나 모두 무사하게 왕래했다. 게다가 소두(疏頭) 장(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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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22일
| 哲宗4
| 癸丑
한 령(韓令)을 만나보니, 저편의 야유하는 무리들이 일마다 방해하고 경향(京鄕)의 한 두 사람만 이에 호응하여 일을 이루지 못할 것 같으니 가소롭고 가탄스럽다. <지명>두릉(斗淩)지명>에 사람을 보내어 한 번에 일을 처리할 계획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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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1월 17일
| 哲宗8
| 丁巳
선고(先考)의 기일이다. 그러나 신주도 모두 내렸고 <지명>현현(玄縣)지명>으로 가는 길이 멀고 날씨도 추워 가서 참석할 수 없었다. 다만 중아(仲兒) 12월 복시(覆試)하러 가는 편에 그로 하여금 관아에 머물며 제사에 참석토록 했다. 고로(孤露)한 여생이 회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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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6일
| 哲宗4
| 癸丑
| 흐리고 바람이 불다.
<지명>초곡성(草谷城)지명>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 소수(疏首)의 견여(肩輿)와 제원들이 고개를 넘어 따라와 안보 역참(安保驛站)에서 묵었다. 이날은 육십 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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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4일
| 哲宗4
| 癸丑
| 맑다.
각처의 인마(人馬)들을 돌려보냈다. 길에서 비용이 쓸데없이 갑절이 드니, 일을 시작하는 초기에 매우 근심스러운 꺼리였다. ○생원(生員) <인명>김시형(金是珩)인명>, 석사(碩士) <인명>김로선(金魯善)인명>, 진사(進士) <인명>김창수(金昌銖)인명>가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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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2일
| 哲宗4
| 癸丑
| 맑다.
남촌(南村)의 친구들을 대충 물어보니 여론에 이의가 없었고 말들이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공의(公義)가 없어지지 않기만 바란다. 그러나 세도(世道)를 주관하는 자들도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직장 <인명>권택(權宅)인명>이 반중(泮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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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0일
| 哲宗4
| 癸丑
| 비와 눈이 또 내리다.
소행(疏行)의 일정을 계산하니 오늘 당도할 것 같았으나 연달아 날씨의 장난이 있어 행사가 매우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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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21일
| 哲宗4
| 癸丑
| 맑다.
장의(掌議) <인명>김정수(金正銖)인명>가 도착하였는데, 먼 길을 달려와 수고롭게 애쓰니 사람으로 하여금 안쓰럽게 했다. 영장(營將) <인명>이유호(李儒虎)인명>, 진사 <인명>김병려(金炳礪)인명>, 석사 <인명>이능혁(李能奕)인명>, 석사 <인명>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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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29일
| 哲宗4
| 癸丑
| 맑다.
명첩(名帖)을 썼다. 소본(疏本)을 반거진사(泮居進士) <인명>김국교(金國敎)인명>에게 보내 그에게 정리해 쓰게 했다. ○ 석사 <인명>조휘상(趙徽相)인명>, 진사 <인명>조석룡(趙錫龍)인명>, 진사 <인명>신석구(申奭求)인명>, 주서(注書) <인명>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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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7일
| 哲宗4
| 癸丑
| 맑다.
향팽이 <지명>대평(大坪)지명>, <지명>소호(蘇湖)지명>의 서통(書筒)을 가지고 왔다. 진청(陳請)함에 처음 의론을 바꾼 것을 정중히 나무라니 매우 송구스러웠다. 원(員)들이 각기 집안 편지를 얻어 편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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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4월 15일
| 哲宗4
| 癸丑
|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려서 행동하기가 매우 걱정되었다. 반촌의 친구들이 모였는데 정성들이 흡족하여 객지의 시름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