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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2월 26일
| 哲宗4
| 癸丑
| 따뜻하다.
두 곳에 치송(治送)하고 말을 돌려보냈다. 집춘문(集春門) 밖 <인명>최원흥(崔元興)인명>집으로 소청(疏廳)을 옮겨 차렸다. 반촌(泮村) 친구가 와서 담소했다. 이번에 소를 올리는 것은 70년 정중(鄭重)한 끝에 나온 것이니 서울과 본고을과 다른 본색(本色)을 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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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5일
| 哲宗4
| 癸丑
| 쾌청하다.
승선(承宣) <인명>한계원(韓啓源)인명>이 내문하여 대강 수초(酬酢)하다가 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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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6일
| 哲宗4
| 癸丑
| 맑다.
소색(疏色) 예안(禮安) 유학(幼學) <인명>이만억(李晩億)인명>이 우고(憂故)에 구애되어 이후 늦게 오겠다는 뜻을 서신으로 붙여 왔다. ○ 석사 <인명>유치윤(柳致潤)인명>, 석사 <인명>권구상(權久相)인명>, 석사 <인명>권승하(權承夏)인명>,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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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4일
| 正祖24
| 庚申
| 맑고 매우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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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12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선고(先考)의 유사(遺事)를 찬(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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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20일
| 正祖24
| 庚申
| 맑고 크게 춥다.
대부(大父)와 <지명>신양(新陽)지명> 이 원장(李院長)이 <지명>옥연(玉淵)지명>으로 행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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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28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아침에 금곡 숙(金谷叔)이 와서 말하길, "요즘에 생긴 자질구레한 소요는 사뭇 근심되고, 이전에 해의 기상 이변은 매우 염려됩니다. 이 원장(李院長)을 올리는 것과 관계된 일입니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매우 의아했고, 대부(大父)도 혀를 차며 탄식하기를 그지없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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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2월 6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지명>소호(蘇湖)지명> 서 생원(徐生員)이 대부(大父)를 뵈러 왔다.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간 후 보니 그가 앉은 곳에 어린 아이의 대변[遺矢]을 지려 두었으니 한심함을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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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2월 18일
| 哲宗4
| 癸丑
앞서 도청(都廳) 유학(幼學) <인명>김약수(金若洙)인명>, 본손 유학(幼學) <인명>이문직(李文稷)인명>이 상경하는 것을 전송하였는데, 먼저 소청(疏廳)을 진설하고 또한 성균관 안의 공의를 거두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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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7일
| 哲宗4
| 癸丑
| 흐리고 춥다.
<지명>단월진(丹月津)지명> 어귀에서 점심을 먹고 강을 건넜는데, 비를 만나 조원(棗院)에 이르러 멈추고 묵었다. 이날은 칠십 리를 갔다. 비가 밤새도록 내리고 그치지 않았는데, 매우 근심스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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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2월 20일
| 哲宗4
| 癸丑
<지명>해저(海底)지명> 상사(上舍) <인명>김매수(金邁銖)인명>가 먼저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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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3일
| 哲宗4
| 癸丑
| 아침에 흐리다 저녁에 맑다.
반중의 나날에는 추수(追隨)의 즐거움이 있었지만 체류에 큰일은 없었다. 깊숙한 곳의 여론을 탐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 걱정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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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1일
| 哲宗4
| 癸丑
| 흐리고 어둡다가 저녁이 된 뒤에야 비로소 개다.
과거보는 선비들에 들으니 소행(疏行) 오늘 들어 와야 하는데 소식이 없어 매우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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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5일
| 正祖24
| 庚申
| 맑고 또 매우 춥다.
땔나무 해 올 종[樵奴]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찬 방에서 자야하니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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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13일
| 正祖24
| 庚申
| 눈이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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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21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지명>신양(新陽)지명> <인명>이여원(李如元)인명> 원장(院長)이 문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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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29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경주 대부(慶州大父)가 와서, "화천서원(花川書院)에 관한 일은 사림(士林)에서 필시 우리 마을로 이건(移建)하고자 한다던데, 과연 그러하다면 실로 편치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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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2월 7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족조(族祖) <인명>개춘(皆春)인명> 씨가 나간 이후 <지명>명동(命洞)지명>에서 관례를 치르고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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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2월 29일
| 哲宗4
| 癸丑
| 맑다.
소회(29일). 소수(疏首) 장(丈)이 집에 있으면서 사임하는 것을 미안하게 여겨서 함창도회(咸昌道會)에 참석하기 위해서 마침내 길을 떠났다. 본가 자제 <인명>김호수(金澔壽)인명>, <인명>김진석(金鎭{氵+奭})인명> 관행(管行) 유학(幼學) <인명>류치임(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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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8일
| 哲宗4
| 癸丑
|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다.
맑기를 기다리다가 오후에 길에 올랐는데, 산꼭대기는 모두 눈으로 덮였고 추위가 심했다. 진흙길은 물이 더해서 더욱 젖어서 길을 다니기가 매우 어려웠다. 겨우 사십 리를 갔고 모두원(毛豆院)에서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