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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2월 3일
| 正祖24
| 庚申
| 아침에 흐리고 낮에 개다.
『맹자(孟子)』「만장(萬章)」편의 ‘함구몽(咸丘蒙)’ 장을 읽었다. 경주 대부(慶州大父)가 후곡 숙(後谷叔)에게 웃으며 말하기를, "고인(古人)의 소견(所見)은 분명 지금 사람 보다 낫다 할 수 있지만, 저 <인명>함구몽인명>이 하는 말은 어째서 이처럼 우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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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2월 11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대부(大父)가 가르쳐주시며, "『맹자(孟子)』를 다 읽은 후에는 첫 권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읽어 내려가야 한다. 다시 앞으로 『논어(論語)』,『중용(中庸)』,『대학(大學)』을 읽을 때에도 의미를 가만히 헤아려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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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4일
| 哲宗4
| 癸丑
| 아침에 비가 내리고 늦게 개다.
명륜당에서 개좌(開座)하였는데, 도의 유생들이 모인 자가 사십 여명이었다. 조사(曺司)는 <지명>상주(尙州)지명> 유학(幼學) <인명>강준(姜稄)인명>, <지명>함창(咸昌)지명> 유학(幼學) <인명>신응회(申應會)인명>, <지명>문경(聞慶)지명>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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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2일
| 哲宗4
| 癸丑
| 맑다.
<지명>빙고진(氷庫津)지명>을 건너 곧바로 서반소청(西泮疏廳)에 이르렀다. 이날은 사십 리를 갔다. 12일 동안 길에 있으면서 험한 고개와 위태로운 여울을 지나왔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궂은비가 내렸지만 일행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먼저 온 제원들도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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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2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지명>영천(永川)지명>의 금곡 대부(金谷大父)가 왔다. <지명>어헌(漁軒)지명> 조 생원(趙生員)이 문안 왔다. 계부(季父)가 <지명>도동(道洞)지명>의 장례소(葬禮所)에 갔다. 【2일】 맑고 매우 춥다. 밤에 『중용(中庸)』을 송독하는데, 호랑이의 울부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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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10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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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18일
| 正祖24
| 庚申
| 엷게 흐리다.
여러 부형(父兄)들이 화수당(花樹堂) 곡반(哭班)에 나가 참여하였다. 【대행왕(大行王)의 졸곡(卒哭) 때문이다.】<지명>초전(草田)지명> 하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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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26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저녁에 대부(大父)가 <지명>신성(申城)지명>에서 돌아와, "고죽서원(孤竹書院) 원장(院長)을 성주(城主)가 담당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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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2월 4일
| 正祖24
| 庚申
| 흙비가 일고 바람의 기세가 매우 나쁘다.
의곡 존고모부(蟻谷尊姑母夫)가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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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2월 6일
| 哲宗4
| 癸丑
<지명>의성(義城)지명>에 도착하니 도내 유생들이 모인 자가 사백 여 명이었다. 석반(夕飯) 후에 <지명>예천(醴泉)지명> 유생(儒生)이 본읍(本邑) 향교와 서원의 통문을 가지고 왔다. 그 글에 운운했다. 또 대평 장석(大平丈席)의 편지와 <지명>순흥(順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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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5일
| 哲宗4
| 癸丑
| 맑다.
오후에 길을 떠났다. 소하(疏下)는 <인명>김정서(金庭瑞)인명>, <인명>류치임(柳致任)인명>, <인명>이재숙(李在䎘)인명>, <인명>김진석(金鎭{氵+奭})인명>, <인명>김진각(金鎭愨)인명> 모두 여섯 명이다. <지명>예진(芮津)지명>을 지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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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3일
| 哲宗4
| 癸丑
| 흐리고 눈이 펄펄 내리다.
경중(京中)의 의론은 모두 고산서원(高山書院)에 향(享)을 청하는 일이 실로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의전(儀典)이나 금령(禁令)의 아래에 가벼이 논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작시(爵謚)하는 의전은 또한 이를 늦출 수 없는 것이니, 이로써 먼저 청하는 것이 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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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일
| 哲宗4
| 癸丑
| 여러 날 무덥던 끝에 비바람이 크게 일다.
반중(泮中)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자세히 상의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출발할 기일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 제때에 장발(裝發)할 길이 없는 것 같아 참으로 근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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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6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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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14일
| 正祖24
| 庚申
| 엷게 흐리다. 밤에 큰 비가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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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22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사시(巳時)에 긴 무지개가 가로로 일어 해를 둘렀는데 형상이 마치 ‘정(井)’자 같았으니 괴의하다. 금곡 조(金谷祖)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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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1월 30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듣기에 양촌 대부(陽村大父)가 며느리를 맞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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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12월 8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무이 객(武夷客)이 문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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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1일
| 哲宗4
| 癸丑
| 비가 종일 내리다.
일행이 체류했다. <인명>김호수(金澔壽)인명>가 연고가 있어 비를 무릅쓰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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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9일
| 哲宗4
| 癸丑
| 맑다.
일찍 출발하여 길을 나섰다. 추위가 더욱 매서웠다. <지명>용산동(龍山洞)지명>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백암시점(白巖市店)에 묵었다. 이날은 칠십 리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