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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11월 10일
| 仁祖7
| 己巳
<지명>목과곡(木果谷)지명>에서 호랑이를 포위했다고 하였다. 별감(別監) <지명>정박(鄭璞)지명>이 <지명>개산(開山)지명>에 와서 곡식과 소금을 사들여 한 부(夫)당 33두씩 쌀을 나누어 주고 이자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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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1월 4일
| 仁祖8
| 庚午
세 차례 향회가 있을 동안 <인명>권박(權舶)인명>만이 홀로 새로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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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2월 12일
| 仁祖8
| 庚午
<인명>한몽일(韓夢逸)인명>이 고령 현감에 제수되었다고 하였다. <인명>성희구(成僖耈)인명>가 무진년(戊辰年) 3월에 부임하였는데, 본성이 부지런하나 탐욕스러움이 근고에 비할 데가 없었다. 사람을 멸시하며 자기 멋대로 하였고, 학교 보기를 마치 여관 보듯이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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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3월 10일
| 仁祖8
| 庚午
<인명>학원(學源)인명>과 함께 <인명>시백(時白)인명>을 데리고 <지명>합산(合山)지명> <인명>이순(李舜)인명>의 집에 갔다. <지명>서울(京)지명>에서 온 유생 <인명>손여창(孫汝昌)인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와서 기다렸다. <인명>창(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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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3월 26일
| 仁祖8
| 庚午
아침 전에 올라가 <인명>성백(誠伯)인명>과 여러 군들을 만나고 <인명>이유석(李惟碩)인명>이 사마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였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인명>문원(聞遠)인명>을 조문하고 <인명>전환(全瓛)인명>을 만난 후 객사로 내려갔다. 별감(別監)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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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4월 18일
| 仁祖8
| 庚午
<지명>반천(半川)지명>으로 와서 <인명>나이달(羅以達)인명>과 <인명>순거(舜擧)인명> 형제를 만나고 <지명>반천(半川)지명>의 물고기를 얻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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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6월 4일
| 仁祖8
| 庚午
향교의 노(奴)가 고목을 가지고 왔는데 통독은 망일(望日)에 합강(合講)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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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8월 19일
| 仁祖7
| 己巳
김 찰방(金察訪)과 이 찰방(李察訪)이 돌아와서 모두 들어가서 이야기하였다. 듣기에 15일에 <지명>상주(商州)지명> 방이 나오고, 17일에 본현(本縣)에 오는데, <인명>도여항(都汝恒)인명> ․ <인명>이동발(李東發)인명> ․ <인명>박이세(朴以挩)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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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9월 12일
| 仁祖7
| 己巳
듣기에 어제 저녁에 방(榜)이 나왔는데, 본현(本縣)에는 합격자가 없었고 오직 수령과 그 사위 <인명>박자신(朴自信)인명>이 합격하였으며 <인명>박공구(朴羾衢)인명>가 1등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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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10월 6일
| 仁祖7
| 己巳
<인명>박득인(朴得仁)인명>이 연부례(延婦禮)를 행했다. 살림을 팔아서 잔치를 성하게 차려 주었으니 가소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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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12월 3일
| 仁祖7
| 己巳
<지명>도동(道東)지명>으로 배를 몰아가고 있는데, 화주(化主)가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면서 왔다. 조 1두(斗)를 그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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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1월 27일
| 仁祖8
| 庚午
세미(稅米) 삼수량(三手粮)과 당량(唐粮)이 아울러 2두 1승 3홉인데, 이를 개산창(開山倉)에 수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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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2월 20일
| 仁祖8
| 庚午
<인명>시백(時白)인명>이 <인명>금동(金同)인명>이를 빌려 <지명>합산(合山)지명>에 보내 혼사를 다음달 10일에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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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3월 17일
| 仁祖8
| 庚午
<인명>이동백(李東白)인명>이 주점에 왔다가 들어와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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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4월 6일
| 仁祖8
| 庚午
<인명>노경례(魯景禮)인명>와 <인명>권형일(權衡一)인명>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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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4월 30일
| 仁祖8
| 庚午
<인명>숙회(叔晦)인명>가 왔다가 저녁을 먹은 후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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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8월 8일
| 仁祖7
| 己巳
과장(科場)에 들어갔다. 네 차례 과제(科題)가 고쳐졌다. 다섯 번째 제목으로 부(賦)는 ‘執書泣周公’이고 시(詩)는 ‘漂泊問君平’ 였다. <인명>성계갑(成繼甲)인명>의 아들 <인명>후제(後悌)[성후제(成後悌)]인명>를 얻어 글자를 대신 쓰게 했는데 나이가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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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9월 5일
| 仁祖7
| 己巳
종이를 마름질하고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인명>류중영(柳重榮)인명> 군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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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9월 23일
| 仁祖7
| 己巳
<인명>유경해(兪景海)인명>가 찾아왔다. 별시(別試) 모임을 10월 20일로 물렸으며, 수령이 28일에는 관아의 창고를 열어 환곡을 하고, 3일에는 세금을 모두 거두어 끝마치고, 4일에 서울에 올라간다고 하였다. 농사가 걱정이다. 며칠 안에 환곡을 단속하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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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10월 13일
| 仁祖7
| 己巳
<인명>김준일(金俊一)인명>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