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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2월 30일
| 仁祖7
| 己巳
<인명>전(佺)인명>이 그의 외조모를 모시고 <지명>형전(荊田)지명>으로 들어갔는데, <인명>종달(宗達)인명>이 따라 갔다. 듣기에 어제 장차 분급해야 할 환자(還上)에 관한 관문(關文)이 왔는데, 군량으로 삼아야 하기에 분급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그것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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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3월 18일
| 仁祖7
| 己巳
<인명>김자첨(金子瞻)인명>이 서당에서 나와 떠났고, 대신 <인명>도숙현(都叔見)인명>이 훈장이 되었다. 그가 이달 보름의 통독(通讀)에서 유생 대부분에게 ‘불통(不通)’을 주고 관에 통보하였기에 관에서 그 유생들을 꾸짖고자 ‘불통’을 받은 자들을 추쇄하여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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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4월 15일
| 仁祖7
| 己巳
밀 가운데 적왜(赤倭) 종 3두 2승, 백왜(白倭) 종 3두 5승, 밀달(密達) 종 1두 5승, 정단(正丹) 종 1두 1승, 만왜(晩倭) 종 5승이 침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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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4월 16일
| 仁祖7
| 己巳
태수(太守)가 13일 <지명>선산(善山)지명>에서 왜 사신에게 지공(支供)하고 어제 관으로 돌아왔다. <인명>찬(儧)인명>은 「천황씨(天皇氏)」를 두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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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5월 28일
| 仁祖7
| 己巳
| 폭우가 오다.
어제 저물녘부터 아침까지 폭우가 마치 쏟아 붇는 것 같다. 강과 시내와 산골이 모두 터져서 원래 물길을 잃어버렸으며, 벼가 있는 곳이 없다. 저녁에 비가 다시 퍼붓듯이 내려 강물이 이미 가득차고, 논은 침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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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7월 5일
| 仁祖7
| 己巳
<인명>자화(子華)인명>가 「사고(私藁)」를 받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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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10월 19일
| 仁祖6
| 戊辰
김 찰방(金察訪)이 원장(院長) <인명>곽근(郭赾)인명>의 만사를 보냈기에 절구 한 수를 써서 보냈는데 다음과 같다. "德邵身潛奈命奇, 茫茫天道更無知. 失聲小子情何極, 烟鎖林泉破屋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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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12월 8일
| 仁祖6
| 戊辰
오전에 호랑이 4마리를 잡고는 군정을 점고하고 돌려보냈는데, 빠진 인원이 많았다. 서북면의 도장(都將)과 산척(山尺) 등이 모두 무거운 몽둥이로 재빨리 사냥하여 경내에는 거의 호랑이의 자취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옛날에는 호랑이를 스스로 나와 강을 건너게 해 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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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1월 21일
| 仁祖7
| 己巳
<인명>김율(金硉)인명>이 조카 <인명>귀(龜)인명>와 함께 와서 배우고 갔다. <인명>신계원(申繼源)인명>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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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2월 21일
| 仁祖7
| 己巳
<인명>김천룡(金天龍)인명>이 아침식사를 하고 갔는데, 그가 말하길 "제가 태어나고 그 다음 달에 부친상을 당하여 이제 이미 15년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언행 용모와 언사의 기색을 보니 사뭇 어른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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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3월 7일
| 仁祖7
| 己巳
<인명>필(佖)인명>이 이달 4일부터 설사병에 걸려 어제 조금 멎었으나 오늘 도리어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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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3월 25일
| 仁祖7
| 己巳
4월에 윤달이 끼기 때문에 모맥(牟麥)의 절기가 늦어져 농가의 식량을 이을 수 없다. 이에 관해 절구 시 한 구절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老來憂患易凄凉, 何事今年恨更長. 新穀未登添一月, 白頭逢厄學黃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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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4월 6일
| 仁祖7
| 己巳
| 폭우가 휘몰아치다.
<지명>송정(松亭)지명>으로 나와 말에게 풀을 먹였다. 폭우가 휘몰아쳐서 <인명>노언방(魯彦邦)인명> ․ <인명>노경방(魯擎邦)인명> ․ <인명>김극순(金克純)인명>과 함께 <지명>송정지명>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였다가 맑아지기를 기다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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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4월 25일
| 仁祖7
| 己巳
권 랑(權郞)이 어제 저녁 다투고, 아침이 되기 전에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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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6월 24일
| 仁祖7
| 己巳
<인명>문원(聞遠)인명>이 모친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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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7월 25일
| 仁祖7
| 己巳
<인명>김률(金硉)인명>이 와서 <인명>곽린(郭嶙)인명>의 대상(大祥) 제문을 받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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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10월 23일
| 仁祖6
| 戊辰
<인명>하식(河湜)인명>이 와서 <인명>송골(松骨)인명>의 집에 거처를 잡았는데, 그 부친이 건시(乾柹) 한 첩을 보냈다. <인명>유일신(兪日新)인명>이 유기(柳器) 한 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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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12월 21일
| 仁祖6
| 戊辰
<인명>송여념(宋汝念)인명>이 들렀다. 방백(方伯) <인명>김시양(金時讓)인명>이 임기가 차서 <인명>홍방(洪雱)인명>이 새 방백으로 도의 경내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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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2월 3일
| 仁祖7
| 己巳
<인명>도욱(都郁)인명>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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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2월 25일
| 仁祖7
| 己巳
<인명>덕윤(德潤)[정덕윤(鄭德潤)]인명> 형제가 <지명>현풍(玄風)지명>에서 왔다. <인명>명보(鳴甫)인명> ․ <인명>덕현(德見)인명> ․ <인명>제백(濟伯)인명> ․ <인명>집중(集仲)인명> 형제 및 김 찰방(金察訪)이 모두 왔다. 먼저 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