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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7월 14일
| 高宗15
| 戊寅
| 아침에 안개가 끼고 오전 늦게 개다.
강백풍 종이 유양숙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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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2월 15일
| 高宗15
| 戊寅
| 맑고 바람이 불다
강유(姜鍮) 사장 영감의 치전을 보니 왕고의 행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가 떠나는 편에 고숙 2대에게 답장을 보냈다. 도곡(道谷) 이백경(李伯景) 형도 뒤이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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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12월 21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인숙령에게 예천읍에 갈 것을 약속했다. 인숙령은 오치에 볼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낮에 백아현에 갔다. 인숙도 때 맞춰 와서 횃불을 들고 예천읍에 들어갔다. 그러나 달은 이미 삼장이나 올라 있었다. 식사 후에 인숙령이 땅주인을 보고 이사리 산사를 부탁하였고, 다른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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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7월 17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정아에게 서찰을 학습하게 하였다. 일찍이 학암공 슬하에서 파접 후 이렇게 하는 것을 이미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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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2월 18일
| 高宗15
| 戊寅
| 맑고 춥다.
앞 들 6마지기에 보리씨를 심었다. 덕산(德山)의 소나무 심는 일을 감독하기 위해 우산(愚山) 숙주를 개곡에 보냈다. 정순부(鄭純夫) 형에게 편지를 썼다. 산지기 집에 주미와 양미 4두를 부쳤다. 군관 김윤문에게 패지를 써서 산지기를 돕는 일을 거듭 경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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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12월 24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뒤편 사랑방에 기괴한 소리가 났다. 동천 사장령의 편지와 달경형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영감은 이번 20일에 다시 경성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달경형은 본읍의 초택 차 정초에 이곳에 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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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7월 19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개곡 산지기가 왔다 곧바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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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2월 20일
| 高宗15
| 戊寅
| 맑고 바람이 불다.
하남 악옹이 편지를 보내 상지(上枝)의 참보에 관한 상복의 유무를 알려왔다. 억울하게 형벌을 받은 경우라면 상복을 입을 수 있고, 두터움을 따르는 의리로도 복을 입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를 적어 답신하였다.개곡에서 우산 숙주가 소나무를 심고 돌아왔다. 물봉(勿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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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12월 26일
| 高宗15
| 戊寅
| 아침에 흐리더니 밤이 깊어 눈이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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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4월 19일
| 高宗16
| 己卯
| 맑다.
증조비의 휘신일이다. 현풍 태봉리에 사는 생원 박형석이 와서 머물렀다. 오후에 또 크게 아파서 불이음을 복용했으나 영험이 없었다. 아침 일찍 광평에서 부고가 홀연히 도착했다. 정실이 산후 설증으로 마침내 어제 술시에 죽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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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7월 13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섭아에게 미미한 병이 있는 듯하다. 섭아는 3살 때, 더위로 피곤하여 누워 있는 나를 볼 때마다 반드시 베개 위에서 부채질을 한 만큼 슬기롭고 명민하였다. 이 아이가 병 없이 천수를 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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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7월 21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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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12월 20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이덕희형이 장안을 향하여 출발했다. 춘계 하인이 하회 길을 떠날 때 답장을 써서 보냈다. 오전에 처가에 도착해서 출아를 보았는데, 골격이 비범했다. 칠칠일에 데려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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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4월 13일
| 高宗16
| 己卯
| 맑다.
미시에 공성 종의 집에 입주상량을 했다. 원당 서규 척형에게 편지를 써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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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9월 12일
| 高宗16
| 己卯
| 흐리고 춥다.
구정 재종조께서 일전에 말을 바꾸기 위해 노새를 타고 부에 들어가셨는데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하니 매우 근심스럽다. 오계의 낙문씨가 방문왔다. 덕록이라는 놈이 노새를 끌고 돌아왔는데, 노새가 수일 동안 복통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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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1월 17일
| 高宗17
| 庚辰
| 맑다.
고조조의 기일이 문득 지나갔다. 서진형이 하회로 돌아갔다. 위아의 아픈 증세가 오늘로 10일째이다. 우황포룡환 1개를 복용시켰다. 하촌의 인편에 사장 3대의 답편지를 받았다. 듣기에 동당시는 3월 17일로 정해졌고, 정시는 4월 24일에 정해졌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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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7월 16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완연한 가을이지만 가뭄으로 인한 소요가 걱정이다. 달빛이 낮같이 밝고 이슬꽃이 허공에 맺혀 있는 것을 보다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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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2월 17일
| 高宗15
| 戊寅
| 맑다. 번풍이 매우 높게 불고, 황사로 대기가 흐리다.
원당으로 가는 창녕의 안씨 붓장수 편에 서규 형의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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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12월 23일
| 高宗15
| 戊寅
| 새벽에 비가 내리다가 식후에 잠깐 개다.
모산의 약천형이 조문 왔다. 대개 그 대인장이 청송에서 중장으로 있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이 형이 먼저 식구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화숙형이 떠났다. 위교의 병세에 차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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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4월 16일
| 高宗16
| 己卯
| 맑고 바람이 불다.
아픈 것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학증일까 고민되었다. 당내 제원들에게 여러 번 청했기에, 동막 수직 차 평여 종형제가 먼저 갔다. 오후에 병을 무릅쓰고 갔다가, 당내와 촌내 장정 도합 50여명이 밤 오경에 먼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