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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17일
| 壬戌
| 맑고 바람 불고 춥다.
공동묘 수색에 관한 일은 법에 관대함이 있었다고 하니 무사하여 다행 함직하다. 안팎의 고용한 사람들이 모두 나갔으니 시름겹고 고민되고 시름겹고 고민되었다. 석유 한 통을 사서 오늘 저녁부터 비로소 대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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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30일
| 壬戌
| 맑고 춥다.
눈이 녹지 않아서 집집마다 땔나무 걱정을 하니 매우 딱한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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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7일
| 壬戌
| 아침에 안개 끼고 늦게 개다. 불볕더위가 다시 더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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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7일
| 癸亥
| 흐리고 가랑비가 흩날렸다.
비로소 석재종(席材種)을 파종했다. 오늘 풍산(豊山) 사현(士賢) 형과 더불어 서로 우안(愚安)에 대한 흥성을 기약하였는데, 산판을 팔기를 원했던 자가 비의 장난으로 오지 못했으니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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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3일
| 癸亥
| 잠깐 맑고 잠깐 흐리다.
헌아(憲兒)가 안동(安東)에서 의인(宜仁)으로 갔다. 풍서면(豊西面) 여자 40명이 면작기수(綿作技手)가 데리고 왔는데, 그 광경을 보니 우스웠다. 신문을 보니 도쿄〔東京〕의 인구가 감소된 수는 백만 명이고 요코하마〔橫濱〕의 사망자는 5만 명이었으며 기아와 익사로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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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0월 5일
| 癸亥
| 크게 바람 불고 춥다. 잠깐 맑고 잠깐 흐리다. 오후에 찬비가 잠깐 지나가다.
또 뒷집의 무를 캐었는데, 날씨가 좋지 못하니 염려됨이 실로 크다. 맹언(孟言)의 외손이 떠나는 편에 의인(宜仁)에 언장을 써서 보냈다. 천로(天老) 보(甫)가 오늘 축시(丑時)에 요절해서 그 부음이 왔으니 참악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3년 상간에 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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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12일
| 壬戌
| 맑고 춥다.
면장이 군내로 가는 편에 순백 형에게 보내는 문병 편지를 써서 부쳤고, 또 족인(族人)이 가는 편에 금계동(金鷄洞) 조언(朝彦)씨의 편지에 답장을 보냈다. 밤에 아이가 돌아와서 또 은행에서 부채를 내어서 식산이자를 갚았다고 했다. 부채 위에 부채가 더한 격이어서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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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2일
| 壬戌
| 맑고 날이 조금 풀리다.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손님들이 떠났다. 장언(章彦) 형은 이번 여름에 경성(京城) 종로(鐘路) 4정목(丁目) 141번지로 이사 갔기에 곧바로 경성을 향해 갔다. 응구(應龜)보(甫)도 떠났다. 사제(沙堤) 조언(朝彦)씨가 어제 송림(松林)에서 묵고 감현(甘縣)으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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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6일
| 癸亥
| 맑고 갑자기 서늘하다. 맑고 서늘하다.
헌아(憲兒)가 의인(宜仁)에 인사를 닦고 어제 그의 빙조장(聘祖丈)과 더불어 지나는 길에 하회(河回)의 직여(直汝) 형의 상일(祥日)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왔다. 선아(宣兒)가 학교로 떠나는 편에 하회(河回)에 여러 사람들에게 보낼 편지와 화운시(和韻詩)를 써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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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7월 29일
| 壬戌
| 맑다.
유점(柳店)에서 입석 령을 전송했는데, 그는 차를 타고 예천읍으로 갔다. 한 열흘 간 반갑게 이야기하고 지내던 뒤끝에, 서운한 마음만 아른아른했다. 나는 곧장 길을 바꾸어 오치(烏峙)와 입암(立岩)에 성묘하러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구갑(舊甲)을 겨우 지내고 나니 젖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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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15일
| 壬戌
| 반을 맑고 반을 흐리다.
종가의 승곡(僧谷) 전소에 가서 참여하고 저물녘에 돌아오니 피곤함이 심했다. 제인(制人) 권기하(權奇夏)가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했으니 유감이다. 정(定) ․ 용(容) 두 아이가 어제 왔다가 오늘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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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5일
| 壬戌
| 잠깐 흐리고 잠깐 맑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구름을 보니 황흑색(黃黑色)의 기운이 서쪽 언저리에 가득했다.
동지(冬至) 천신 차례를 지냈다. 영아(寧兒)가 방학으로 인해 찾아와서, 그를 통해 두 딸아이의 편지를 보니 모두 편안하다도 해서 기뻤다. 어제 헌아(憲兒)가 군에 들어갔을 때 신문을 보았는데, 곧 응섭 아우가 길림(吉林)에 있고 법무사장(法務司長)이 되었다고 하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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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6일
| 癸亥
| 흐리고 바람이 없다.
새벽에 왕모(王母)의 휘신을 지냈으나 병으로 제사를 치르지 못했으니 통읍(痛泣)하며 죄를 탄식했다. 종을 아파서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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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6월 22일
| 庚申
| 맑다.
우체부로부터 교촌 진사댁의 부음을 받아보니 바로 이달 12일에 보낸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갑자기 상을 당하여 사위집에서 부담하는 바가 아닌 것이 없으니 가련하다. 저녁에 중가가 돌아와서 수씨의 기후가 예전보다 매우 좋지만 기필코 돌아오지 않으려 하는 것을 알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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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8일
| 癸亥
| 맑다.
시장 편으로부터 사현(士賢) 형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다시 서로 모일 기약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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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4일
| 癸亥
| 맑고 서늘하다.
감기 때문에 쓰러져 고통스러워서 2첩의 약을 복용했다. 이른바 안동(安東) 고교의 설립은 없던 가운데 일만 만든 것인데, 우리 집이 배정받은 금액은 백 원이 되었고, 면소에서 고지서를 분급했다. 일전에 군수(郡守)가 면으로 나와서 일본(日本) 구휼금을 청했는데, 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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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0월 6일
| 癸亥
| 바람 불고 맑다. 오후에 또 비가 잠시 지나가다.
아중(阿仲)이 하북(河北)에 가서 곡을 하고 잠시 백율원(百栗園)에 가서 문후를 드린 후 밤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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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13일
| 壬戌
| 맑고 춥다.
우안(愚安)에 가서 전소에 참여했고, 오늘은 이미 다 끝났다. 추위를 맞고 무릅써가며 밤에 돌아 왔으니, 피곤함에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오늘 옥천서원(玉川書院)의 복향(復享)날이어서 어제 한 명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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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3일
| 壬戌
| 맑다.
헌아(憲兒)가 여러 선산(先山)을 살펴보고 사정(査正) 한 뒤 공시(公示)하기 위해, 군청으로 갔다. 경성(京城)과 대구(大邱) 두 조카의 편지를 보니, 인아(寅兒)는 장차 서울에서 내려오고자 하니 다행이다. 영아(寧兒)는 방학은 내일 있을 것이고, 대략 2주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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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7일
| 癸亥
| 맑고 서늘하다.
사장(査丈) 어른께서 떠나실 때 신북(申北)의 차 앞까지 나가서 전송했다. 방향을 돌려 주재소와 면소와 계남댁(溪南宅)에 인사를 닦았다.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