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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9일
| 癸亥
| 흐리다. 가랑비가 잠깐 날리다.
새벽에 선비(先妣)의 휘신을 지내니 애통하고 그리운 마음이 더욱 새로웠다. 선아(宣兒)가 일찍 하회(河回) 학교로 떠났는데, 그 편에 응관(應貫)에게 답서를 써서 부쳤다. 유정(柳亭)의 새로 개간한 논에 제방을 터서 수도를 비로소 설치했는데, 수원(水源)이 매우 충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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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15일
| 癸亥
| 흐리고 바람 불다.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낮까지 쏟아지다. 비온 뒤에 바람이 서늘하다.
닭 우는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낮까지 쏟아지니 이번 비는 전답의 목마름을 해소하는데 흡족했다. 그리고 올벼의 경우는 풍년이 들 것이지만 늦벼의 경우는 흉년 들 것이라 판단이 되었다. 우리 집의 맥답 과반이 춘추 간에 모두 흉작인 것은 하늘의 뜻이 실로 그렇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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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20일
| 癸亥
| 아침에 맑고 늦게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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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1일
| 癸亥
| 흐리고 썰렁한 바람이 불다.
공숙(公叔)씨는 술 한 동이와 남초(南草) 몇 묶음, 사일(士日) 형은 건어와 열합(列蛤)을 모두 편지와 함께 보내왔다. 경하(景夏)가 쌀 한 말과 물고기 열 마리와 고추장〔枯草醬〕 한 말 항아리를 가지고 왔다.낙좌(洛左)의 집에서 술 한 병을 사 왔고, 시산(時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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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24일
| 壬戌
| 맑고 따뜻하다.
정․용 두 아이가 잠깐 왔다가 곧 가면서 모레 사이에 학교 일동이 모두 하회로 가서 춘복(春服)을 찾아 올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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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8일
| 壬戌
| 맑고 뜨겁다.
오늘은 말복이다. 사곡에서 노인회를 마련하여 개도 잡고 떡도 쪄서 달려가 회포를 풀고 성묘를 했다. 묘 앞으로 새로 물길이 생겼고 이달 7일 아침에 내린 비가 넘쳐흘러 그 가로 모래가 쌓여 추사가 매우 위태해보였기에 부득이하게 옛 도랑을 따라 밭 가운데로 물길을 변통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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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8일
| 癸亥
| 맑다.
오전에 시 두 수를 읊었다. 촌로들이 올라와서 함께 노닐었다. 점심식사는 계군의 집에서 했는데 개를 잡아 음식을 보내왔다. 저녁은 정자에서 음식상을 차렸다. 밤에 시 네 수를 읊었으니, 노쇠한 회포에 매우 성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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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5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일전에 신문에서 상해국민대회(上海國民大會)가 개시된 지 일곱 여덟 달만에 이제 비로소 종료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창조파(創造派)와 개조파(改造派) 두 파로 분당이 되었는데, (독립운동 방향에 대해서) 창조파는 노백린(盧伯鱗)과 여러 사람들이 관장했고, 준비는 이미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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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22일
| 壬戌
| 맑고 따뜻하다.
비로소 동쪽과 서쪽 밭에 목화씨를 뿌렸다. 침을 놓는 의원 이극(李極)을 만나보고 준아의 병을 치료하려고 하였으나 때가 고름이 다하지 않아서 다시 며칠을 기다렸다가 종기를 없앴다. 그러나 그 잔약한 몸으로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걱정되고 근심이 된다. 마침 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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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6일
| 壬戌
| 흐리다. 적은 비가 왕래하다.
오늘은 입추다. 더위가 요사이 조금 덜하니 혹 가을 더위는 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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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6일
| 癸亥
| 흐리고 가랑비가 왕래하다가 낮부터 쏟아져 그치지 않자 시냇물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으니 34일 만에 처음 보는 것이다. 밤에 비가 와서 밤새도록 빗소리가 들리다.
오늘은 올벼를 아직 이앙하지 않은 자들에게 뜻대로 되게 해 주었고, 바싹 말라버린 채마밭의 채소와 밭의 곡식도 또한 목마름을 해소했으니 위로되고 기쁘고 위로되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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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2일
| 癸亥
| 흐리고 비가 왕래하다가 낮에 조금 개다. 빗발이 또 때로 쏟아지다.
강이 크게 넘쳐흐르는 것이 또한 장관이었다. 「강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다〔觀漲〕」라는 율시 한 수를 읊었다.
점심식사 후 해가 나왔다. 형호(衡湖)를 거쳐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는데, 우리 집의 가마와 말이 마침 와 있었다. 다시 강을 건너 하회(河回)로 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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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23일
| 壬戌
| 맑고 크게 뜨겁다.
우편으로부터 물봉의 편지를 받아서 용아가 17일에 과연 잘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홀로 먼 길을 떠난 것이라 염려됨이 적지 않았는데 정사가 시원해짐이 자못 깊었다. 그리고 사가는 이달 26일에 장차 집안 모두가 경성 계동으로 이사한다고 했으니 좋은 계획인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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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23일
| 癸亥
| 맑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들다. 오후에 바람이 일고 비가 내렸으나 겨우 먼지만 적실 정도였다. 밤에 또 이와 같이 비가 내리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드니 또 가물 증세가 아닐까? 맥답 전체에 파종하지 못했기에 보리농사는 이미 흉작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으니 우려하고 탄식한들 어쩌겠는가? 평양(平壤)에서 온 편지를 보니 안재(安在)의 사진도 부쳐왔는데, 숙성한 모습이 용아(容兒)와 흡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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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0월 3일
| 癸亥
| 흐리다.
16태의 무를 캐어 집에서 쓴 것은 불과 13태였고 나머지는 내다 팔 것이라고 했다. 성아(聖兒)가 하상(河上)에서 와서 그 편에 응관(應貫)의 답서와 강헌옹(江軒翁)의 증별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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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11일
| 壬戌
| 맑고 따뜻해서 쌓였던 눈이 모두 녹았다.
아침에 의인(宜仁)에서 온 엽서를 보니, 부아의 어미가 어제 과연 출발하여 안동에서 묵었는데, 가마와 말이 풍산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괴정(槐亭)으로 보내서 낮이 다 되어 일행이 잘 도착했다. 세 모녀가 자못 집에 있을 때의 모양 보다 나으니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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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18일
| 壬戌
| 맑고 춥다.
대구(大邱) 김실(金室)의 편지를 보고, 딸이 날마다 의원에서 치료받았으나 아직 효과를 보지 못했고, 최서방의 집도 쌓인 부채 때문에 원래 살던 집과 새로 지은 집 두 집이 채무집행을 당하는 일에 이르게 되었다 하니 놀라고 탄식함이 지극하나 스스로 취한 것이지 누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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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5일
| 癸亥
| 흐리고 눈이 흩날리다.
상갑(上甲)일의 징조가 매우 좋지 못하니 우려되고 탄식함이 그지없었다. 억지로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는 좌재(坐齋)했으나 오후에 한기로 몸이 떨리고 머리가 욱신거려 부득이하게 좌재에 빠지게 되었으니 죄송하고 죄송했다. 본 경찰서 경부(警部)의 윤수용(尹守瑢)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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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30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비로소 된서리가 내리다.
입동(立冬)이다. 그리고 겨울 추위는 아마도 심할 것 같지는 않다. 또 물에 잠긴 벼를 걷어 올렸으니 근심스럽고 고민되었다. 세 마리의 소로 백양(白楊)에서 산 소나무를 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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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25일
| 壬戌
| 맑고 바람이 불다.
침을 놓는 의원이 와서 종기를 없앴다. 준아(寯兒)가 과연 고름이 이미 오래되어 물이 흐르고 옷이 젖었는데 회생할 수 있겠는가? 돌아가 삼기죽(蔘芪粥)을 복용하였다. 오후에 부아(富兒)가 한기를 느끼고 크게 아팠다. 다리가 붓고 아픈 증세 같으니 근심이 되고 근심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