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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5월 12일
| 甲子
| 맑다., 오후에 소낙비가 잠깐 지나가다.
조카며느리 병을 치료하기 위해 헌아(憲兒)가 예천(醴泉) 권의경(權義卿)에게서 약을 지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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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8일
| 癸亥
| 맑다.
아침에 사제(沙堤) 이윤시(李潤蓍)의 부음을 보았는데 지난 달 22일 보낸 것이었고, 그 사람이 지극히 슬프고 애석했다. 오후에 하북(河北)으로 갔는데, 표숙(表叔)의 대상(大祥)을 조문하기 위해서이다. 신문을 보았는데 경성(京城) 감옥에 잡혀 들어갔던 사람 5인이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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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4일
| 壬戌
| 맑고 뜨겁다.
후가와 지북․두리․백양의 방천 일은 어제 마쳤고, 신가와 석사의 방천 일은 오늘 시작했는데, 공사해야 할 곳이 매우 험난하고 또 넓으니 반드시 많은 날을 들여야 할 것이다. 신생아가 어제부터 모유를 먹지 못하고 복창이 생겼으니 우려하고 고민한들 어찌하겠는가? 오늘은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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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5일
| 壬戌
| 맑고 크게 뜨겁다.
인시 초에 신생아가 결국 죽었다. 아침에 생겼다가 이내 사그라지는 버섯처럼 새벽의 꺼져가는 촛불처럼 덧없는 짧은 목숨을 생각하니 매우 참통하고 애석했다. 자방동에 사람을 보내었고, 진단이 나온 것이 왔는데 또한 한결같이 시름겹고 근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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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1일
| 癸亥
| 흐리고 비가 오고, 늦게 개다.
영주(榮州)에 도착하여 또 성래(聖來) 보(甫)를 방문했다. 낮이 되기 전에 예읍(醴邑)에 도착하니 가마꾼이 마침 있었다. 장차 귀가하려 할 즈음에 마침 운수(雲叟)를 만났는데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명원(明遠) 척(戚)도 경성으로부터 와서 또한 술과 고기 등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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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10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동풍(東風)이 불어와 얼음을 녹였다.
성래(聖來)가 지나다가 들렸다. 이필구(李泌久)가 미남(美南)에서 와서 종일 함께 노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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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8일
| 癸亥
| 반을 맑고 반은 흐리다. 저녁에 동풍이 불고 춥고, 실낱같은 빗줄기가 때로 쏟아지다.
두 아우와 더불어 좌재(坐齋)하니 하늘 끝에서의 동생 응섭에 대한 한결같은 염려 때문에 더욱 회포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시장 편으로 응관(應貫)의 편지를 보았고, 겸하여 부조로 제사에 쓰일 물건들을 주었으니 슬프고 감사함이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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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6월 1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밤에 한 호미 뜰 만큼의 비가 내리다.
유정(柳亭)의 곡회에 가서 산남(山南)의 여러 노인들과 함께 종일 이야기했다. 어촌(漁村)의 공팔(公八) 보(甫)와 원촌(遠村)의 친척 손님이 와서 묵었다. 밤에 한 호미 뜰 만큼의 비가 내렸는데, 밭의 곡식은 겨우 구원할 수 있으나 맥답은 아직 이앙하지 못했으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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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9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아침상은 우리 집에서 준비 해 왔다. 또 증별시 한 수를 읊었다. 여러 벗들과 함께 내려갔고, 교외에서 전송하니 노쇠한 회포가 아득했다. 우편배달부가 와서 장춘(長春)에 이르러 돈과 편지를 부치고 머물면서 보낸 회신이 왔으니 나도 모르게 상쾌하고 시원했다. 그리고 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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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6월 2일
| 癸亥
| 맑고 바람 불고 서늘하다.
하회(河回) 성가(聖可)와 두 객이 모두 떠났다. 아중(阿仲)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으니 가련하고 가련했다. 듣기에 어제 밤에 내린 비로 예읍(醴邑)에서는 쏟아 붓듯이 폭우가 쏟아져서 수심이 수척 가량 되었다고 하니 20리 상간에 어찌 이처럼 현격히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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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23일
| 壬戌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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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3일
| 癸亥
| 맑다. 저녁에 우렛소리가 나고 비가 어제와 같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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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26일
| 癸亥
| 맑다. 아침에 서늘하고 오후에는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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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17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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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8월 27일
| 甲子
| 맑다.
둘째아우가 학교 일로 군청에 갔다가 돌아와 오늘 오후 1시경에 해, 달, 별이 함께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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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1월 2일
| 辛酉
| 맑고 춥다. 바람이 크게 불고 추위가 심하다.
억지로 일어나 유연당(悠然堂) 문중회의에 가려고 가마를 타고 예천에 이르러 자동차를 탔다. 오전에 영주에 내려가서 조언(朝彦) 씨와 노소 여러 사람을 시가에서 만나 같이 정자에 갔는데, 얼마 뒤에 오계(梧溪)에서 온 노소 6, 7명과 감현(甘縣)의 여러 사람이 다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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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26일
| 壬戌
| 잠깐 흐리다가 잠깐 개다.
우산(愚山)으로 하인을 보내 사형에게 편지를 썼다. 마포(馬浦)에 사는 정순기(鄭淳基)가 지석(誌石)을 널리 알리는 일로 와서 묵었다. 그 만든 모양이 매우 정밀하고 또 완전히 옛날의 것을 그대로 본떴으니 지석이 공교하고 촘촘하며 매우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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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20일
| 壬戌
| 흐리다. 잠깐 비가 오고 잠깐 그치다. 밤에 또 비가 크게 쏟아지다.
새벽에 중모의 휘신을 지냈으나 노쇠하고 병이 나서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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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20일
| 癸亥
| 맑다.
하회(河回)에 갔던 하인이 돌아와서 응관(應貫)의 답장을 보고, 내솔(內率)들이 모두 병에 걸렸고 교하(敎夏)가 일본에 입원해 있다고 하는 것을 들으니 매우 대신 고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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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9일
| 甲子
| 맑고 춥다.
오후에 차를 타고 밀양(密陽)으로 출발했다. 아직 저물기 전에 내일동(內一洞)에 도착했다. 이모(姨母)의 근력이 여전히 강건하니 기뻤으나 맹규(孟圭)의 병은 여전히 오랫동안 끌고 있어서 신색(神色)이 수척하고 손상되었으니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또한 배에 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