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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15일
| 壬戌
| 맑다.
작은 타작마당에서 8석 10근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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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0일
| 壬戌
| 흐리고 뜨겁다.
예천으로 떠났던 부마가 오늘은 물길이 통하게 되었으나 돌아오지 않으니 필시 아계가 타고 가면 또한 조금 마음이 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녁에 우편으로 편지를 받아보니 차로가 통하지 않아 과연 집의 말을 타고 떠났다고 했는데, 그러나 극심한 더위에 험한 길을 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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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2월 22일
| 乙丑
| 맑고 바람 불다.
앞들에 비로소 보리를 파종하다. 7, 8개월 동안 너무 가물어 고용 일꾼이 곱절이나 들어오다. 선아(宣兒)가 하회(河回)가는 편에 율원(栗园)에서 길림(吉林) 아우에게 온 편지를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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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5일
| 癸亥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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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4일
| 癸亥
| 맑다. 저녁에 폭풍이 몰아치고 우렛소리가 나고 비가 어제와 같이 오다. 밤중에 천둥번개가 크게 치고 오랫동안 비가 쏟아져 내렸다.
청염(淸鹽)으로 장을 담갔다. 아중(阿仲)이 예읍(醴邑)으로 갔는데, 이는 장차 하룻밤 묵고 영주(榮州) 선정(先亭)에 가서 곡식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는 일 때문이었다. 신사(新寺) 이(李) 상인(喪人)이 와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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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27일
| 癸亥
| 맑고 바람 불고 서늘하다. 오후에 구름이 모여들더니 비 몇 방울이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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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18일
| 癸亥
| 맑고 크게 뜨겁다. 오후에 천둥번개가 치고 소낙비가 내리다.
새벽에 별묘(別廟)의 기신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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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8월 28일
| 甲子
| 맑다.
벽동(碧潼) 종인(宗人) 경하(景河)가 와서 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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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1월 4일
| 辛酉
| 맑고 춥다.
여러 사람들과 작별하고 차를 타고 사제로 향했다. 마침 입석(立石) 표숙령을 만났는데 모레 해저에서 만날 뜻을 서로 약속했다. 차를 타고 곧 출발하니 따라가는 자는 조언 씨 감천 문오(文五) 씨 오계 사원 씨 우리 마을 등현조이다. 도촌(陶村) 앞에 이르러 차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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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16일
| 壬戌
| 맑고 따뜻하다.
온갖 꽃이 활짝 폈다. 촌내 여러 사람들과 입암에 추경(楸京) 수계하는 일로 갔는데 모인 사람이 30명이었다. 유사(有司)는 곧 친구 편에 돈 982량 9전을 비용으로 내었다. 오후에 돌아와 모두 길고 짧게 병을 겪은 끝에 피곤하여 밤새도록 신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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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1일
| 壬戌
| 아침에 흐렸다가 이어서 개고 잠깐 비오고 바람이 불다.
장아 형제가『사략(史畧)』을 읽기 시작했다. 안재 모자가 경성에 와 있으면서 부친 편지가 오늘 도착했다. 앞들의 맥답에 벼를 다시 김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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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29일
| 癸亥
| 흐리다.
우편으로 계(季)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 달 25일자 편지였고, 편안하다는 소식이었으니 기뻤다. 그러나 집안의 군색하고 급박함이 근래에 심하다고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뼈를 깎듯 고통스러우니 어찌하고 어찌할까? 일전의 소포는 이미 받았다고 하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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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6일
| 癸亥
| 반은 흐리고 반은 맑다. 뼈를 깎는 바람이 여전히 춥다.
기침감기로 병석에 쓰러져 누웠는데, 억지로 종군(宗君)의 둘째 아이의 관례(冠禮)에는 참여했으나 사곡(寺谷) 노인회에는 가지 못했다. 선(宣) ․ 완(完) 두 아이가 토요일이라서 모두 왔으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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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5일
| 癸亥
| 잠깐 흐리고 잠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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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28일
| 癸亥
| 아침에 안개가 끼고 낮에 뜨겁다.
헌아(憲兒)의 세 자녀가 모두 학질에 걸렸으니 시름겹고 고민되고 시름겹고 고민되었다. 풍산시장 편으로 사현(士賢)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그런데 어떤 말에 산판 매매에 관한 일을 신안(新安) 국빈(國賓) 형이 막 뜻을 두고 있다고 하니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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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19일
| 癸亥
| 잠깐 흐리고 잠깐 개다.
용손(龍孫)등 네 명의 종숙질들이 함께 떠났고, 선아(宣兒)는 어제 하회(河回)학교로 떠났는데, 마치 새가 각기 살 곳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린 것과 같아서 자식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그지없었다. 미호(眉湖)에 갔는데, 그 곳의 노우(老友)가 와 달라고 청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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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8월 29일
| 甲子
| 맑다.
양산 숙(陽山叔)과 소산(素山)에 가서 맹오(孟五) 씨, 성능(聖能) 씨를 문병하고 저녁에 돌아오다. 헌아(憲兒)가 26일에 오치(烏峙)에 가서 소나무를 1천단을 베고 내일 저녁에 입암(立岩)에 온다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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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7일
| 癸亥
| 맑다.
헌아(憲兒)가 예천(醴泉) 시장으로 갔다. 선아(宣兒)가 하회(河回)로 가는 편에 자유(子裕)씨에게 편지를 부쳤다. 완아(完兒)는 그로 하여금 촌숙(村塾)에 머물러 두어 공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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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6일
| 癸亥
| 맑다. 낮에 비가 쏟아지고 이어서 개다.
비로소 누에떨기〔掃蠶〕를 했다. 헌아(憲兒)가 어제 용봉(龍鳳) 두 절로 유람을 갔는데, 대개 학교에서 30여인이 소풍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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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29일
| 癸亥
| 흐리고 뜨겁다.
우편으로부터 경장(景章)의 편지를 받았는데, 비록 병은 없으나 자신의 삶이 점차 위험하고 어려운 처지에 이를 것이라 하니 우려하고 고민한들 어찌하겠는가? 2월 이후에 처음 받는 소식이고 이달 22일에 보낸 편지였다. 순구(舜九) 형이 와서 묵었다. 우안(愚安)의 산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