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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6월 26일
| 癸亥
| 맑고 뜨거우나 자못 바람 기세가 있다.
맑고 뜨겁다. 그러나 자못 바람 기세가 있으니 혹 가을 더위가 심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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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5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손자인 최정룡(崔丁龍)이 여름방학이 되어 더위를 무릅쓰고 어제 왔는데 그 뜻이 가상했으니 기쁘고 시원함을 비할 바가 없었다. 여러 가족들이 모두 편안하다는 것을 들었고, 인삼 한 근과 부채 다섯 자루도 가지고 왔으니 더욱 요긴하게 되었다. 또 그가 고등학교 자격시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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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3월 25일
| 乙丑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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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4월 3일
| 乙丑
| 흐리다. 비가 잠깐 오다 잠깐 그치다.
일전에 복용하던 약을 체증으로 인해 10여 일 중단하다가 오늘 다시 복용하다. 제사 전날이라 종일 재계하다. 하남(河南) 춘필(春弼) 씨가 편지를 써서 급히 사람을 보냈는데, 병산서원(屛山書院)의 임원 유만식(柳南植)이 올린 단자에서 외숙부를 공격했기 때문에 우리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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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11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새벽에 기도문을 지어 성주신〔成造神〕에게 기도를 했다. 노정(老正)씨가 떠났다. 신문을 보니 현애(玄厓) 김시현(金始顯) 보(甫)가 감옥에 있으면서 단식을 한 지 며칠 지났다고 했으니 놀라고 염려되었다. 헌아(憲兒)가 하북(河北)에서 장례식을 조문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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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6일
| 壬戌
| 눈이 크게 내리다.
또 눈이 크게 내리니, 땔나무 귀한 것이 마치 계수나무 가격처럼 비싸졌고, 뜰 가운데 흰 눈덩이만 쌓여있으니, 사람을 시름겹게 하고 시름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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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5일
| 癸亥
| 맑고 바람 불다. 신시(申時)에 흩날리며 내리는 비가 잠시 지나갔고, 쌍무지개가 처음 나타났다. 밤에 또 비가 조금 오다.
고노(雇奴) 한 명이 어제 도망갔으니 이때의 보리를 심는 일을 당해 낭패가 실로 많았다. 상인(喪人) 이승학(李承學)이 찾아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곧바로 돌아갔다. 서촌(西村) 병용(秉鎔) 숙(叔)이 경성(京城)에서 내려와 인아(寅兒)와 함께 상주(尙州)에 갔었다고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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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13일
| 癸亥
| 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오후에 바람 불고 비는 조금 개다.
성전(聖田)이 중가(仲家)에 머물며 시를 읊고 있기에 가서 시 3수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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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 25일
| 癸亥
| 맑고 바람 불다.
경후(景厚)가 산양(山陽)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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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6월 29일
| 癸亥
| 맑고 크게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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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23일
| 癸亥
| 흐리고 맑은 것이 서로 반반이다.
아중(阿仲)을 오치(烏峙)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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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10일
| 癸亥
| 잠깐 맑고 잠깐 흐리고 잠깐 눈 오고 잠깐 바람 불다.
동상갑(冬上甲)의 날씨가 매우 좋지 못하다. 원촌(遠村) 노정(老正)씨가 와서 묵었는데 다정히 회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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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5일
| 壬戌
| 첫닭 울 시간 초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또 얼었던 나무가 낮이 되어 녹았다. 종일 가랑비가 흩날려 내리다가 밤에 또 쏟아져 내리니 도랑이 되어 흐르다.
부아(富兒)가 수토탕(水土湯)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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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4일
| 癸亥
| 맑다.
듣기에 영섭(英燮)이 지난 21일에 종로경찰서에 잡혀 들어갔고, 시수(蓍秀)는 지난 27일에 한성(漢城)에서 참혹하게 죽었다고 하니 경악스러운 마음이 그지없었다. 괴정(槐亭)에 가서 위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남(美南)에 인사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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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12일
| 癸亥
| 잠깐 흐리고 잠깐 맑다. 밤에 비가 쏟아지다.
선인(先人)의 수계(修稧)가 입암(立岩)에서 모이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병 때문에 가서 참여하지 못했고, 중군(仲君)과 아이가 갔다가 마치고 돌아왔는데, 듣기에 모인 사람은 30여인이었고, 편전(便錢)은 1천2백24냥 9전이었다고 했다. 정재룡(鄭在龍) ․ 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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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 24일
| 癸亥
| 흐리다. 오후에 비가 조금 오고 이어서 개었다.
유전(柳田)의 성달(聖達) 보(甫)가 와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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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6월 28일
| 癸亥
| 맑고 크게 뜨겁다.
재차 맥답에 김을 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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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22일
| 癸亥
| 흐리고 바람 불다.
정실(鄭室)이 떠났고 헌아(憲兒)가 데리고 갔으니 노쇠한 회포가 나빠지는 것이 스스로 그칠 수 없는데 하물며 그의 아비가 멀리 있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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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5일
| 庚申
| 맑다.
아침에 평양 전보가 왔는데 아중과 유사와 김우가 모두 유예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과연 어제 언도된 후에 출옥하였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기뻐서 뛰게 한다. 6달 동안 괴로움을 맛보고 재물을 쓴 것은 모두 지나간 일로 부치니 매우 기쁘고 매우 기쁘다. 하객이 집안에 가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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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3월 26일
| 乙丑
| 맑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