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9년 10월 23일
| 高宗16
| 己卯
| 아침에 비가 크게 쏟아지다.
약을 짓기 위해 사람을 보내니, 목성의 전약국에서 어제 권의원이 지어보낸 약은 어쩔 수 없이 돌려보냈다.
-
1884년 11월 21일
| 高宗21
| 甲申
| 잠깐 흐리다가 잠깐 맑다.
하북으로 간 하인 편으로, 고숙의 답서를 받았다. 집안 모든 제절이 편안하고 비호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청나라 장수 정여창이 2000군사를 통솔하여 이달 초 8일에 서울로 들어왔고, 임대징이 10000기를 통솔하여 잇달아 이르렀다고 했다. 반촌에서부터 창의한 통
-
1884년 11월 29일
| 高宗21
| 甲申
| 맑다.
정부 종이 참봉댁의 사손으로 들어갔다. 식후에 장려동에 가서 산을 순시하고, 산지기를 우한성으로 새로 차출했다.
-
1880년 5월 21일
| 高宗17
| 庚辰
| 이어 밤새도록 비가 내리다.
-
1880년 9월 6일
| 高宗17
| 庚辰
| 잠깐 흐리다가 잠깐 비 오다.
앞들의 벼를 거두었다.
-
1881년 2월 3일
| 高宗18
| 辛巳
| 잠깐 눈 오다가 잠깐 흐리다가 잠깐 맑다.
새벽에 길을 나섰다. 장호원에서 밥을 먹고 선비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충주에 사는 상사 이필래를 만났는데, 그는 동고의 후예이다. 단양에 사는 이규세와 동행하였다. 비립가에 머물렀다. 오늘은 80리를 왔다.
-
1881년 4월 29일
| 高宗18
| 辛巳
| 맑다.
광평 주팔씨집을 향해 떠났다. 점심을 먹고 저물녘에 집에 돌아왔다.
-
1881년 7월 2일
| 高宗18
| 辛巳
| 맑고 더위가 심하다.
용전 하인이 일청종의 편지를 가져왔다. 열흘 뒤에 길을 나선다고 하여 즉시 답장을 써서 보냈다.
-
1882년 1월 13일
| 高宗19
| 壬午
| 잠깐 흐리다가 잠깐 맑다.
어제 합격자 방문을 보니, 대과에는 이서영, 홍형주, 신정균 등 3인, 소과에는 8인을 뽑았다. 영남인으로 2인이 합격하였다. 벗들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다. 집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장수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
1882년 1월 21일
| 高宗19
| 壬午
| 맑다.
내일 관학유생의 응제가 춘당대에서 설행하도록 명이 내려졌다.
-
1879년 6월 10일
| 高宗16
| 己卯
| 번개와 비가 오락가락하며 일정하지 않다. 삼경의 밤에 동남쪽으로부터 번개가 치는데, 마치 금빛 뱀을 끄는 것 같다. 우렛소리가 크게 진동하여 넋을 잃지 않음이 없다.
밤에 삼경 쯤 동남쪽에서 갑작스런 번개가 치는데, 마치 금빛 뱀이 길게 뻗어있는 듯 했다. 굉음의 천둥소리가 크게 진동하고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다섯 차례나 치는 듯했다. 촛불을 밝히고 꿇어앉아서 지나간 일을 헛되이 생각했다. 이때에 또한 시끄럽게 코를
-
1880년 2월 26일
| 高宗17
| 庚辰
| 맑다.
이른 새벽에 과장으로 들어갔다. 시제는 한문공(韓文公; 韓愈)의 평회서비(平淮西碑)에서 「이에 지도를 상고하고 공부(貢賦)를 헤아림[乃考圖数貢]」이었다. 사욕을 버리고 집중하여 세 수의 시을 차례대로 올렸다. 오후에 과장에서 나왔다. 1소의 시제는 양정수(楊廷秀)의「황
-
1881년 1월 29일
| 高宗18
| 辛巳
| 맑다.
밥을 먹은 후에 죽령을 넘었다. 비록 조령만 못하지만 험준하였다. 단양읍에서 잠시 쉬었다가 강을 따라 몇 리를 갔다. 유교점에서 점심을 먹고 몇 리를 갔다. 단양의 옥순봉, 귀담봉, 도담봉 등을 보며 청풍에 당도하였다.
-
1881년 4월 26일
| 高宗18
| 辛巳
| 맑다.
김포 종씨 2원이 오계로부터 방문하였다. 대개 좌윤선조의 묘재를 새로 사기 위해 영남 제종에게 기별을 넣어 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오계 문중은 이미 70금을 냈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재사 한칸 없었으니 진실로 한심하였다.
-
1881년 7월 29일
| 高宗18
| 辛巳
| 맑다.
어몽길이 와서 머물렀다.
-
1881년 7월 7일
| 高宗18
| 辛巳
| 잠깐 맑다가 잠깐 흐리다.
수경형이 돌아갔다. 망아지를 38금에 사고 타던 말은 내다 팔았다.
-
1882년 1월 18일
| 高宗19
| 壬午
| 맑다.
-
1879년 6월 7일
| 高宗16
| 己卯
| 아침부터 저녁까지 빗줄기가 삼대와 같았다.
-
1879년 2월 29일
| 高宗16
| 己卯
| 맑다.
-
1884년 11월 19일
| 高宗21
| 甲申
| 맑다.
요성의 인편이 있어서 의중 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사부인이 내년 봄에 돌아오시는 것으로 물려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