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1월 5일 | 純祖26 | 丙戌 | 새벽부터 큰 비와 눈이 내리다.
이날 저녁에 청안(淸安)의 일가가 와서 만났는데 문경 농암(籠岩)에 사는 사람이고 더불어 은성(銀城) 문암(文岩)의 일가 할아버지로서 하룻밤을 묵었다. 청안의 일가는 바로 무주(無住)선생의 아우 발(鏺)의 후손들이다.
1823년 2월 14일 | 純祖23 | 癸未 | 맑다.
택연(宅淵)이 아침에 와서 그저께 산 계집종의 값 24관(貫)중 18냥(兩)을 먼저 가져갔다. 유전의 하인이 식전에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질부(姪婦)가 그런대로 편안하게 지내고 아이들 또한 무고하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아침을 먹은 후 편지를 가져온 하인이 돌아갔다.
1833년 12월 7일 | 純祖33 | 癸巳 | 한 길이나 되는 눈이 내리다.
한 길이나 되는 눈이 내렸으니 만고에 없었던 일이다. 흉년이 크게 든 해에다 또 폭설까지 내려 세상이 마비되니, 도로와 골짜기에 굶주려 죽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굳은 시체가 끊이지 않았다. 인심은 점점 사나워졌고 변통할 길은 막연하여 당시의 사대부의 딸들도 집을 떠나
1825년 3월 8일 | 純祖25 | 乙酉 | 흐리고 저녁에 비가 내리다.
도연의 삼종형, 송인겸 형이 놀러 왔었다.
1823년 3월 28일 | 純祖23 | 癸未 | 맑다.
아침에 송의겸(宋義兼)의 상여가 장례를 위하여 율현(栗峴)으로 송별하였다. 아침을 먹고 성칙씨 집으로 갔더니 석여씨가 여자종을 사서 매매문서까지 작성하였는데 그 여자종 순이(順而)의 남편이 완강하게 거부하여 계약을 취소하였다. 갑자기 존도(存道)의 일승(日升)가의 종이
1826년 2월 16일 | 純祖26 | 丙戌 | 맑다.
함창현(咸昌縣)에 갔다가 돌아오니 영천의 성종호(成鐘浩)형이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존도의 유일승 형과 그의 막내 동생이 함께 내방하였다. 어제 15일 큰조카의 관례(冠禮)거행하였는데 돌아가신 형님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고 목이 메어 슬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려
1826년 9월 23일 | 純祖26 | 丙戌 | 맑다.
막내 조카가 전곡(前谷)에서 왔다.
1823년 2월 26일 | 純祖23 | 癸未 | 맑다.
인수(獜壽)가 도연의 제방(堤防)둑을 막는 공사에 온 종일 감독하였다.
1823년 2월 7일 | 純祖23 | 癸未 | 흐리고 비가 내리다. 비가 오후에 크게 내리다.
막내아우의 코피가 밤부터 멈추었다. 오후에 비가 많이 내려 보리갈이(麥耕)가 조금 뒤로 미루어졌다.
1825년 3월 30일 | 純祖25 | 乙酉
성응(聖應)씨 집에 가보았더니 집이 마치 텅 빈 것 같아 그 사람에게 대한 정이 간절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1829년 1월 17일 | 純祖29 | 己丑 | 눈이 내리다.
확암(礭岩)이 입학하였다.
1826년 9월 26일 | 純祖26 | 丙戌 | 맑다.
다리 부종이 조금 차도가 있어서 밖으로 오리쯤 나와 저녁 무렵에 영을 건너 돌아왔다.
1826년 1월 3일 | 純祖26 | 丙戌 | 맑다.
1825년 3월 6일 | 純祖25 | 乙酉 | 흐리다.
도연의 이재기(李載器) 형이 와서 그 종질녀(從侄女)의 혼인을 안항(顔巷) 고몽표(高夢彪)의 집과 결정하였는데 사돈집으로 심부름꾼에게 부칠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채마밭에 채소씨앗 뿌리려고 반이랑(半畝)을 일구기 위해 몸소 호미와 괭이를 잡았다. 아! 학업이 독실
1833년 11월 19일 | 純祖33 | 癸巳 | 큰 비가 내리고 큰 눈이 내리다.
1823년 1월 29일 | 純祖23 | 癸未 | 서리가 내렸으나 온화한 것이 늦봄과 같다.
인겸 형이 늦은 봄에 달성(達城)에 갈 계획이 있다기에 큰 아이가 공부할 맹자강보(孟子講譜)를 만들 닥종이 열 속(束)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며 돈 일관(一貫)을 주었다. 오늘 사종(四從)동생 노경(魯慶)의 관례(冠禮)가 있었다.
1826년 9월 30일 | 純祖26 | 丙戌 | 맑다.
은성(銀城)의 종수(從嫂)씨가 집으로 돌아갔다. 백포에 구석사가 내방하였다.
1825년 3월 2일 | 純祖25 | 乙酉 | 맑다.
8촌 형, 성칙, 석여씨가 함께 백포에 있기 때문에 삭강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백포의 구한탁씨 딸이 미동(美洞)의 박민수(朴敏秀)씨의 막내 동생과 혼인하기로 정하였는데 이날이 혼례일이라 참석하였다. 종일토록 여러 손님과 재미있게 얘기도 하며 즐겁게 놀다가 저녁 무렵에
1823년 2월 16일 | 純祖23 | 癸未 | 맑다.
오후에 망천(輞川)으로 가서 순서(舜瑞)씨를 병문안하니 상태가 매우 위급하였다. 대개 이 병의 원인은 곧 영변(潁邊)의 수토(水土)에서 발병하여 배에 물과 가스가 차서 땡땡하게 부어오르는 병으로 그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은 열에 하나 둘 뿐이라 민망하고 원통하였다. 곧
1834년 9월 15일 | 純祖34 | 甲午 | 맑다.
오늘이 아버님의 대상(大祥)이라 복을 마치게 됨에 참을 수 없는 통곡과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이 한량없었다. 내일 부제(祔祭)을 지내기로 하였다. 양례(襄禮)때에 구애됨이 있었기 때문에 부제를 물려 지금 행하게 된 것이다. 또 이날 아침 5대 할아버지의 사판(仕版)을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