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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2월 16일
| 光海14
| 壬戌
<지명>수곡(首谷)지명>에 들어와 <인명>선보(善甫)인명>를 만나고 향교에 들어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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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5월 12일
| 光海14
| 壬戌
<인명>양 감군(梁監軍)[양지원(梁之垣)]인명>이 성을 나올 뜻이 전혀 없으며 <인명>모 장(毛將)[모문룡(毛文龍)]인명> 또한 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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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6월 24일
| 光海14
| 壬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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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5일
| 光海14
| 壬戌
아침에 <지명>팔계(八溪)지명>의 친구 <인명>정개(鄭凱)인명>가 <인명>지아(之雅)[정지아(鄭之雅)]인명>와 <인명>이아(以雅)[정이아(鄭以雅)]인명>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만났다. 닻을 풀고 돛을 올려 순식간에 사막(沙幕)에 이르렀는데, 동지(同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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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27일
| 光海14
| 壬戌
들으니 박 첨지(朴僉知)의 승지유지(承旨有旨)가 어제 내려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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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9월 9일
| 光海14
| 壬戌
세 척의 배를 단장하고 내 ․ 외청(內外廳)을 만들어 노를 저어 강 한가운데로 갔다. 수찬(修撰)이 그의 어머니께 잔을 올리고 시를 구하기에 곧 지어 올렸는데, 다음과 같다. "擧世登高峰上游, 風流今日泛蘭舟. 琴歌綵舞婆娑處, 萬壽盃心月浴秋. 黃昏束草爲査, 揷松明于上亂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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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1월 13일
| 光海14
| 壬戌
<인명>유일신(兪日新)인명>이 찾아와서 또 학문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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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2월 15일
| 光海14
| 壬戌
문연재(文淵齋)로 건너가 통독(通讀)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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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1월 10일
| 仁祖1
| 癸亥
들으니 박 수찬(朴修撰)이 이조 좌랑(吏曹佐郞)에 제수되었다는 유지(有旨)가 어제 내려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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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2월 8일
| 仁祖1
| 癸亥
<인명>노여관(魯汝寬)인명>과 <인명>김자청(金子淸)인명>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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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23일
| 光海14
| 壬戌
박 첨지(朴僉知)에게 포도를 보내면서 아울러 절구를 지어 올렸는데, 다음과 같다. "西域靈根到海東, 龍鬚毛處葉童童. 支離高架能遮日, 扶倒新莖不禁風. 玉液正宜眠罷後, 金膏端合酒醒中. 凉州刺史非吾分, 故遣蠻童負小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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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9월 8일
| 光海14
| 壬戌
강물에 크게 잠겨 산만 있고 들판이 없다. 수찬(修撰)과 함께 작은 배를 탔는데 술과 안주, 비파와 피리도 가지고 갔다. <지명>문암(文岩)지명>을 지나 <지명>송천(松泉)지명>의 포구(浦口)로 들어가 <인명>자첨(子瞻)인명>을 맞이하였다. 배를 타고 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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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1월 7일
| 光海14
| 壬戌
<인명>학원(學源)인명> ․ <인명>견여(堅如)인명> ․ <인명>원보(遠甫)인명> ․ <인명>변이(變而)인명> ․ <인명>우경(禹卿)인명> ․ <인명>익보(益甫)인명> 등 여러 군들이 모두 술을 가지고 와서 청하였다. 김 동지(金同知)와 <인명>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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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2월 11일
| 光海14
| 壬戌
아침에 두부를 만들었다. <인명>명보(鳴甫)인명> ․ <인명>집중(集仲)인명>과 함께 짚신을 신고 수찬(修撰)이 묵고 있는 곳으로 걸어 내려왔다. <인명>박응례(朴應禮)인명>와 술자리를 파하고 <지명>쌍계(雙溪)지명>로 내려왔다. 현풍 현감이 시냇가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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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1월 8일
| 仁祖1
| 癸亥
<지명>상주(尙州)지명> 회소(會所)의 통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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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2월 6일
| 仁祖1
| 癸亥
<인명>여일(汝一)인명>이 불당에서 내려와서 문병하였으나 누워있어서 만나지 못하였다. <인명>견여(堅汝)인명>가 찾아왔는데 그를 통해 <인명>곽영(郭嶫)인명>이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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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3월 1일
| 仁祖1
| 癸亥
땅을 갈아 파와 무의 씨를 뿌리고 토란과 작약을 파서 2무더기로 만들어 송대(松臺)에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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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3월 21일
| 仁祖1
| 癸亥
이 참봉(李參奉) ․ <인명>도여술(都汝述)인명> ․ <인명>노 생(魯生)[노지도(魯之道)]인명>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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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15일
| 光海14
| 壬戌
<인명>노지도(魯之道)인명>와 함께 가서 문연재(文淵齋)의 통독(通讀)에 참여하였다. <인명>송기(宋沂)인명> 씨가 죽었으니 슬프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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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8월 19일
| 光海14
| 壬戌
| 가랑비가 오다.
<지명>쌍산(双山)지명>으로 나오니 현풍 현감이 술을 가지고 와서 이별하였다. <지명>홀포(忽浦)지명>로 들어가 승지(承旨)와 그 부인(夫人)은 <지명>솔례(率禮)지명>로 들어갔다. 백산정(柏山亭) 아래로 내려가는데, 가랑비가 어지러이 날렸다. 수찬(修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