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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2월 19일
| 光海14
| 壬戌
<인명>학원(學源)인명>이 말 타고 와서 말하길 "과거(科擧)가 연기되지 않았으며, 어제 초장(初場)을 봤다." 고 하였다. <지명>남면(南面)지명>의 여러 유생들도 오늘 저녁 문연서원(文淵書院)에 모였는데 달이 뜨길 기다렸다가 출발하면 내일 아침에 과장(科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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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4월 2일
| 光海14
| 壬戌
문연재(文淵齋)에서 통독(通讀)하였는데, 다시 회강(會講)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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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5월 10일
| 光海14
| 壬戌
<인명>노지도(魯之道)인명>와 함께 <지명>고촌(高村)지명>에 올라가 박 첨지(朴僉知)를 만나고 점지한 시냇가 정자 터에 있는 나무를 베었다. <인명>박성량(朴成樑)인명>이 술을 가지고 와서 함께 술을 마신 후 그 자리를 파하고 좌류정(坐柳亭)에 올라가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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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6월 3일
| 光海14
| 壬戌
<인명>유희좌(兪希座)인명>를 데리고 폐단을 알리는 등장(等狀)을 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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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3일
| 光海14
| 壬戌
작은 배를 타고 <지명>상포(上浦)지명>로 들어갔다. 너른 바위 아래로 내려가 들에서 일꾼들이 풀을 베는 것을 살펴보고, 배를 돌려 바위에 오르니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듯 했다. 의인(宜人) <인명>배관(裵寬)인명>이 술을 가지고 왔다. 술잔을 돌려 마시고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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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16일
| 光海14
| 壬戌
박 첨지(朴僉知)와 <인명>자첨(子瞻)인명> ․ <인명>명보(鳴甫)인명>와 함께 <지명>개산(開山)지명>으로 나와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지명>금산(金山)지명>에서 달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내려왔다. <지명>개산포(開山浦)지명>에 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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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월 15일
| 光海14
| 壬戌
박 첨지(朴僉知)가 의인재(依仁齋)에서 왔다. <인명>운보(雲甫)인명> 형제가 술을 가지고 왔고, <인명>질중(質仲)인명> 형제를 비롯하여 <인명>곽계수(郭季秀)인명> ․ <인명>문여유(文汝由)인명> 및 <인명>박천생(朴天生)인명> 공, <인명>김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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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3월 20일
| 光海14
| 壬戌
채마밭 서북쪽에 덤불과 가시를 제거하고 석류나무를 심었다. <지명>화산(火山)지명> 사람들이 이미 거름이나 땔감에 쓸 풀을 베었는데 앞 다투어 탐하는 것이 벼슬아치들이 벼슬을 얻기 위해 분주히 다니는 것과 같았다. 애달프구나. 사람의 인심이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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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4월 21일
| 光海14
| 壬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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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5월 18일
| 光海14
| 壬戌
본 현의 호위군 160명이 <지명>상주(尙州)지명>에 머무르면서 대기하고 있는데 빠짐없이 징발하여 보내기 위해 <지명>안원(安院)지명>에서 점고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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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6월 28일
| 光海14
| 壬戌
| 비오다.
이른 아침 행장을 꾸려 무릉교(武陵橋)로 내려갔는데, 물이 불어 사람과 말이 건너기가 어려웠다. <지명>송천(松川)지명>으로 내려가 아침밥을 먹고 선생님을 뵈었다. 첨지(僉知)는 <지명>용담(龍潭)지명>으로 내려가고, 여러 군들은 모두 <지명>모노현(毛老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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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12일
| 光海14
| 壬戌
듣기에 김 만호(金萬戶)가 죽었다고 하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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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8월 15일
| 光海14
| 壬戌
<지명>도진(桃津)지명>으로 갔다. 승지(承旨)가 나와서 <지명>학암(鶴巖)지명>에서 자고 이별하였다. 승지(承旨)의 시에 차운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訪水尋山順下風, 世情消遣醉醒中. 無端一夕驢駒曲, 萬斛離愁淺洛東." 수찬(修撰)의 시에 차운하였는데,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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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0월 15일
| 光海14
| 壬戌
수찬(修撰)을 따라 문연재(文淵齋)에 올라가서 통독(通讀)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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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2월 12일
| 光海14
| 壬戌
<인명>견여(堅如)인명> ․ 노 군(魯君) ․ 이 노(李老) 모두 술을 가지고 모여서 하루 종일 단란하게 놀았다. 날이 저물자 수찬(修撰)이 취흥이 올라 걸어 내려와 집 안을 둘러보고 잠시 송단(松壇)에 앉았다가, 곧 올라가서 <인명>견여(堅如)인명> ․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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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6월 26일
| 光海14
| 壬戌
| 비오다.
이른 아침에 10여 명이 말을 나란히 하여 <지명>유현(流峴)지명>을 넘었다. 두 곳에 앉아서 절구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六月朝陰閉不開, 一行山路好歸來. 登登領畧尋眞趣, 知是仙徒向杭台." 말을 세워두고 학정(鶴亭)에서 묵었다. 여귀재(汝歸齋)에 들어가서 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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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6일
| 光海14
| 壬戌
큰 배에서 내려 작은 배를 타고 <지명>옥암(玉岩)지명>으로 올라가 그 앞에서 점심을 먹었다. 배를 끌고 올라가니 날이 장차 저물려 하였다. <지명>사선암(舍仙巖)지명>을 지나면서 시를 지으니 다음과 같다. "舍仙巖下住蘭橈, 手撫苔紋半已消. 記得昔年留墨處, 不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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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7월 28일
| 光海14
| 壬戌
승지(承旨)를 만나 뗏목을 타고 선유(船遊)하였다. <지명>우촌(牛村)지명>의 다섯 박 씨(朴氏)가 모두 왔다. 밤이 깊어졌을 때 죽연정(竹淵亭) 아래로 내려가 각자 흩어졌다. <인명>공현(公顯)인명>과 나란히 말을 타고 <지명>우촌(牛村)지명>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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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0월 4일
| 光海14
| 壬戌
들으니 부체찰사(副體察使) <인명>남이공(南以恭)인명>이 순행하여 본 현(縣)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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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12월 1일
| 光海14
| 壬戌
문연재(文淵齋)으로 내려가 통독(通讀)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