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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11월 17일
| 光海10
| 戊午
혜성이 처음에는 새벽에 정동향에서 나타나 점점 북쪽으로 옮겨갔고, 또 한밤중에 나타나서 북두칠성을 맴돌다가 비로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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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3월 16일
| 光海11
| 己未
박 상사(朴上舍)가 새벽에 역병으로 죽었으니, 아!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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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6월 16일
| 光海11
| 己未
듣건대, <인명>정창문(鄭昌文)인명> 군이 죽었다고 하니, 아!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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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8월 1일
| 光海11
| 己未
<인명>각민(覺敏)인명>이라는 중이 해인사(海印寺)에서 와서 머물기를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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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8월 22일
| 光海11
| 己未
남북(南北)의 환난(患難)이 가벼운지 중한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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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10월 18일
| 光海11
| 己未
중 <인명>각민(覺敏)인명>이 배우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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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12월 5일
| 光海11
| 己未
듣건대, 전 찰방(全察訪)이 새벽에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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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2월 5일
| 光海12
| 庚申
| 종일 눈이 쌓이다.
종일 눈이 쌓였는데, 만약 녹지 않으면 한 길은 될 것이다. 밤에 나무가 부러져서 소리가 사방 산을 울렸다. 봄에 이처럼 심하게 눈이 내린 것은 예전부터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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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3월 17일
| 光海12
| 庚申
<인명>명보(鳴甫)인명>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정서(呈書)하였다. 【이후의 기록은 결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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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7월 15일
| 光海8
| 丙辰
행장을 꾸려 동헌(東軒)에 들어가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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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8월 8일
| 光海8
| 丙辰
방(榜)이 났는데, 수령과 <인명>태지(泰之)인명>가 참방(參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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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0월 10일
| 光海8
| 丙辰
듣건대, 수령이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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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6월 17일
| 光海10
| 戊午
방백(方伯) <인명>윤훤(尹暄)인명>이 체직되고, <인명>박경신(朴慶新)인명>이 그것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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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8월 20일
| 光海10
| 戊午
<인명>김영(金瑛)인명>이 죽었으니,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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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12월 4일
| 光海10
| 戊午
엄 봉사(嚴奉事)가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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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3월 27일
| 光海11
| 己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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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6월 26일
| 光海11
| 己未
<인명>김충립(金忠立)인명> ․ <인명>김효립(金孝立)인명> 형제가 배우러 왔다. 어떤 중이 <지명>가수(嘉樹)지명>에서 와서 머물기를 원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인명>성훈(性熏)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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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8월 11일
| 光海11
| 己未
<인명>홍응락(洪應樂)인명>의 익명서(匿名書)에 관한 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인명>곽류(郭瀏)인명>와 <인명>엄윤량(嚴允良)인명> 등을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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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8월 26일
| 光海11
| 己未
<인명>운보(雲甫)인명>를 만났다. <지명>발산(鉢山)지명>으로 내려가서 김천 수령을 만나 함께 <지명>매개(梅開)지명>로 올라가 묵었다. <인명>서윤(瑞胤)[최서윤(崔瑞胤)]인명>이 동당시(東堂試)에서 14등으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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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10월 20일
| 光海11
| 己未
박 상사(朴上舍)의 상사(喪事)에 가서 치전(致奠)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