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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21일
| 癸亥
| 흐리고 안개가 뿌옇게 끼다.
종숙모(從叔母) 상일(祥日)이 어느덧 지나갔으니, 슬프고 텅 빈 느낌이 마치 오늘 새로 돌아가신 날과 같았다. 연일 객을 맞이하느라 요란하니 피곤하고 괴로워 기력을 떨칠 수 없었다. 오후에 여러 객들이 떠났는데, 길이 마치 바다처럼 진흙탕이 되어 염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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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21일
| 壬戌
| 잠깐 흐리고 잠깐 맑다.
용아(容兒)는 예천(醴泉)으로 떠났으나 정아(定兒)는 옴이 옮아 치료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 사제(沙堤) 윤시(潤蓍) 보(甫)의 편지를 보니 매우 위로되었다. 예천 우체국을 통해 우산(愚山) 사형에게 답장을 써서 보냈다. 상림(上林)의 신가(新家)에 갔던 하인이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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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18일
| 癸亥
| 맑고 바람 불다.
응관(應貫)과 여러 객들이 떠났다. 그 편에 구씨(舅氏)께 답서를 써서 올렸고, 겸하여 일전에 온 시에 대한 화답시를 써서 보내드렸다. 구담(九潭) 시보(蓍甫) 형이 와서 묵었으니 떨어져 지내던 뒤 끝에 다정히 이야기 했고, 또 수계(修稧)에 관한 일을 의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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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 15일
| 癸亥
| 맑다.
충남(忠南) 부여(扶餘) 남면(南面) 삼룡리(三龍里)에 사는 학역재(學易齋)의 주손인 허난(許蘭)이 그의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집안이 빈궁하여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50전을 주었다. 우편으로 석포(石浦)의 죽은 벗 순익(舜翼) 형의 아들인 상주(喪主)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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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18일
| 壬戌
| 맑고 날이 조금 풀리다.
의경(毅卿) 형이 돌아갔다. 정국진(鄭國鎭)랑(郞)이 찾아와서 집안의 제절이 한결같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매우 위로되었다. 풍산학교 16명이 연극희를 마련하여 밤까지 놀았는데, 조혼(早婚)의 폐단이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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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4월 27일
| 壬戌
| 아침에 안개가 끼다가 개다.
재종숙모의 장례를 치르고 매장하였다. 오후에 신사동 재사에 갔다. 동삼 형이 유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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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20일
| 壬戌
| 아침에 눈이 오고 이어서 개다. 날이 따뜻하여 눈이 녹다. 소한(小寒)인데 온화하기가 마치 봄날 같다.
영아(寧兒)와 정랑(鄭郞)이 떠났으니, 개학일이 모레에 있기 때문이다. 눈길에 먼 곳으로 보내려 하니 가련하고 염려됨이 그지없었다. 해저(海底) 병근(炳根)도 또한 떠났다. 암정(岩亭)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전(田)순사(巡査)를 환영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재종숙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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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7월 28일
| 壬戌
| 잠깐 흐리고 잠깐 개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었다.
아중(阿仲)이 아침 전에 왔다. 오늘은 구씨의 생신이다. 모인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상차림이 지극히 성대했으며, 퉁소 가락도 번갈아 가며 불었으니, 번잡했던 마음이 통쾌하고 시원했다. 오후에 입석 령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피로가 매우 심하여 기력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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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28일
| 壬戌
| 흐리고 춥다. 밤에 눈 내리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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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2월 19일
| 辛酉
| 아침 내내 큰 눈이 내려 사방 산이 모두 하얗더니 식후에 곧 개다.
종가에 가서 용하가 글쓰는 것을 보고, 종일 이야기를 나누다. 이석하가 하상으로부터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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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11일
| 壬戌
| 잠깐 맑고 잠깐 흐리다. 온화하고 눈이 녹았다.
객을 머물러두고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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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20일
| 癸亥
| 흐리다. 오후에 비가 오기 시작했고, 밤에는 눈까지 섞여 내리다.
하회(河回) ․ 구담(九潭)의 여러 객들이 떠났다. 물봉(勿峰) 계사형(季査兄)이 어제 와서, 그 편에 순성(舜成) 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질부의 내행이 끝내 또 성사되지 않았으니 매우 서운했다. 그리고 춘양(春陽) 순백(淳伯) 형의 맏아들이 와서 그 편에 그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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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 17일
| 癸亥
| 맑고 바람 불다.
좌재(坐齋)했다. 사람과 말을 안동(安東)에 보내어 오후에 군의 아우 규섭(奎燮)이 둘째 아들을 데리고 왔다. 선아(宣兒)도 하상(河上)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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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12일
| 壬戌
| 맑고 바람이 불다. 가뭄의 기운인 듯하다.
질부가 근행을 하러갔는데 그의 남형 석하(錫河)를 데리고 갔고, 아중은 막 양주 불곡산에 가토(加土)하러 가는데 작별하고 떠나갔다. 대구에서 내행은 오는 인일(寅日)에 두 문중에서 가서 사람들이 김천에서 서로 만날 것이라고 하였다.
순성(舜成) 형과 숙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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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4월 30일
| 壬戌
| 맑다.
해저댁에 조문을 가서 성복하고 전포에 사는 외숙을 맞이하고 마주하여 밥을 먹고 잠시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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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7월 22일
| 壬戌
| 반은 흐리고 반은 맑다. 밤에 또 비가 조금 내리다.
오후에 구씨(舅氏) 및 여러 객들이 떠났다. 입석(立石)령(令) 형제와 여관(汝寬) 형은 그대로 머물렀고, 지보(知保) 상객은 신가(新家)에서 숙박했으며, 두 질부는 각각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밤에 노래를 들으며 환음(歡飮)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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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22일
| 壬戌
| 아침에 눈이 내리고, 늦게 개고 온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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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23일
| 癸亥
| 잠깐 흐리고 잠깐 개다. 밤에 비가 쏟아졌다.
청하군(淸河郡) 송라면(松羅面) 상송리(上松里)에 사는 이필구(李泌久) 형이 찾아왔는데, 곧 생질의 장인이다. 점심식사를 한 후 미남(美南)으로 갔다. 용아(容兒)가 강승원(姜昇元)과 더불어 모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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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4월 24일
| 壬戌
| 맑다.
의인에 사는 국경과 양평에 사는 경옥, 원촌에 사는 달원 여러 형들이 신사동에서부터 일부러 찾아왔는데 운산집을 교정하고 간행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미 본가에 재물은 없고 오로지 인척과 친척 여러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것이니 과연 어찌 뜻대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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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5월 1일
| 壬戌
| 흐리다.
경민 숙(叔)과 병산서원 당회를 만들어 입교당 중건 낙성식을 행했는데 모인 자들은 90여명이었다. 존덕사(尊德祀)에 참배하고 고유하였으며, 구씨와 의인사장어른, 태시(太始)와 국경(國卿) 형을 뵙고 우선 묵었다가 하회로 내려갔는데 엇갈려 매우 서운하였다. 오후에 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