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2년 7월 3일
| 壬戌
| 맑다.
기산 재종대모께서 구토와 설사병 때문에 위극하셨다. 무이 숙(叔)의 재취가 대죽의 윤씨와 겨우 성사되었고, 부득이하게 작수성례를 치렀다.
-
1921년 11월 26일
| 辛酉
| 맑고 춥다.
정랑(郑郎)이 대구고교에서 방학하여 와서 교촌 여아의 편지를 받아보니, 편안하다는 소식이었다.
-
1922년 4월 20일
| 壬戌
| 흐리다.
만시 오언절구를 써서 아이를 오치로 보내서 체정 노인의 이장하는 예에 가서 조문하게 하고 겸하여 한 동이의 술을 부조하였다. 의인 이숙이 떠나감에 같이 오치에 가서 선산을 둘러보았는데 찬한 것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
1922년 7월 8일
| 壬戌
| 맑고 매우 뜨겁다.
편지를 써서 아이 편으로 하상에 보냈으니 이는 구씨 부자를 청하여 맞이하려 했기 때문이다. 저녁에 아이가 돌아온 편으로 구씨의 대도가 한결같이 평안함을 알았고, 그 촌의 여러 노인들이 일제히 왕림해 줄 것이라 하였으니 감사했다. 듣기에 금년의 수재가 기호지방에도 또한
-
1923년 6월 21일
| 癸亥
| 잠깐 흐리고 잠깐 맑다. 낮에 뜨거움이 매우 타들어가는 듯하다.
-
1922년 11월 13일
| 壬戌
| 흐리고 춥다. 낮에 눈이 조금 내리고 해가 나오다.
-
1923년 4월 11일
| 癸亥
| 흐리다. 오후에 비가 오고 밤새도록 내리다.
37석을 출곡(出穀)했다.
-
1922년 11월 14일
| 壬戌
| 맑고 바람 불고 춥다. 밤에 솜이 꺾일 정도로 추웠다.
오늘은 양력으로 해가 다하는 날이다. 주재소에서 소략하게 새해 문안 인사가 있었는데, 그들이 돌아갈 때 쇠고기〔黃肉〕와 황감(黃柑)을 보낸 것이 있었으니 감사했다. 벽동(碧潼) 족인 상훈(相焄)이 떠났는데, 또 내년 봄에 만날 기약을 남겨두었다. 그의 편으로 파주(坡州
-
1922년 7월 11일
| 壬戌
| 흐리고 잠깐 서늘하다.
-
1922년 11월 15일
| 壬戌
| 맑고 바람이 크게 불고 추위가 매섭다.
새벽에 고왕고(高王考)의 휘신을 지내니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오늘은 신정 1월 1일이다.
-
1922년 7월 21일
| 壬戌
| 아침에 안개 끼었다가 조금 개다. 오후에 비가 내리다.
오늘은 생일 아침이다. 스스로 허약하고 병이 많은 나를 생각해 보니 이미 뜻하지 않게도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이 머리가 쇠고 영락했으며, 부모님의 자식을 길러 주신 노고에 대한 비통함과 늙은 아내도 기다려 주지 않고 세상을 뜬 슬픔과 형제끼리도 멀리 떨어진 고통이 있
-
1922년 7월 13일
| 壬戌
| 흐리고 바람 불고 서늘하니, 몇 개월 이후 비로소 생의가 들었다.
노가미 카나에[野上鼎]가 찾아와서 고별했다. 토역이 4일 만에야 오늘 끝났지만 여전히 미진한 곳도 여전히 많았다. 교촌의 편지를 받아보니 여아가 과연 오늘 대구에서 출발해 온다고 하며 헌아가 데리러 오기를 요청하였으나 조금도 뺄 틈이 없으니 고민되었다. 김후성의 편지를
-
1922년 7월 25일
| 壬戌
| 아침에 비가 내리고 신시에 이르러 그쳤으나 흐리다. 조금 있다가 잠깐 비가 쏟아지다.
물봉(勿峰) 하인이 떠나는 편에 찬명(纘明)씨 및 석하(錫河)군에게 답서를 써서 부쳤다. 교촌(校村)의 두 손자와 정(定)․용(容) 두 조카와 의양(宜陽)의 두 학생이 어제 예천읍으로 떠났는데, 조금 있다가 잠깐 비가 쏟아졌으니 염려됨이 얕지 않았다. 오후에 인편이 돌
-
1922년 11월 25일
| 壬戌
| 흐리고 춥다. 밤에 비가 내리고 나무가 얼다.
팔미탕(八味湯)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선조의 계안(禊案)을 고치고 정돈했다. 부아(富兒)가『천자문(千字文)』을 다 읽었으니, 2월에 입학한지 10여 개월 떨어진 날이다. 밤에 비가 내리고 나무가 얼었으니〔木氷; 樹介〕 괴의했다.
-
1922년 7월 19일
| 壬戌
| 잠깐 볕이 나고 잠깐 볕이 나니 백로 이후 날이 뜨거워 한여름과 다를 바 없다.
말과 가마꾼 2명을 지보 사가에 보냈다.
-
1922년 11월 10일
| 壬戌
| 흐리다. 밤에 눈이 수촌 가량 내렸다.
김천군(金泉郡) 석현면(石峴面) 수도곡(修道谷)에 사는 진사(進士) 정의경(鄭毅卿) 형이 찾아와서, 함께 나란히 누워 다정히 이야기 했다.
-
1923년 1월 19일
| 癸亥
| 맑다.
지곡(枝谷) ․ 원당(元塘)의 여러 객들이 찾아왔다. 주재소 순사가 무덕관(武德館) 기부금 5원을 찾아갔다. 하회(河回)의 낙좌(洛左) 숙 종형제와 노원(魯元)과 구담(九潭)의 문욱(文旭) ․ 치옥(稚玉) 보(甫)와 지당(芝塘) 주극(周極) 형이 와서 묵으며 다정하게
-
1923년 4월 16일
| 癸亥
| 맑고 을풍(乙風)이 불다.
-
1922년 11월 19일
| 壬戌
| 흐리다. 낮부터 눈이 내리다.
-
1922년 4월 28일
| 壬戌
| 맑다.
『운산유고』를 교정하였다. 중본은 과연 얼마 전의 대수단인데 국경 형의 강절이 매우 심하여 말을 하여도 듣지 않으니 이 사람의 이 폐단으로부터 오는 그 병폐를 잘 알아서 우선 두고 보니 탄식할 만하다. 해저에 사는 태시 형이 어제 왔고 상계에 사는 경빈 형이 오늘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