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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월 7일
| 辛酉
| 맑고 바람이 불다.
아침에 일어나 사당에 배알하고 곧바로 율원으로 향하여 구씨를 배알했는데 기력이 아직 강건하였다. 응관 부자 또한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기쁠만하였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을 먹은 후에 집으로 돌아갔는데, 형호진에 이르러서 배가 물가에 잡혀있어서 건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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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월 4일
| 辛酉
| 흐리다. 가랑비가 내렸다가 그치다. 밤에 처마에 빗방울이 떨이지다.
동곽사형이 방문하니 기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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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10일
| 辛酉
| 맑고 매우 덥다.
비로소 산 보리를 거두어들였는데, 손해가 심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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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5일
| 庚申
| 흐리다.
듣건대 풍산에서 일제히 단자를 거두어들여 행하려고 병산서원에 와서 머문 것이 이미 여러 날이며, 향사는 무사하게 잘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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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27일
| 癸亥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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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18일
| 甲子
| 맑다.
육미탕(六味湯)을 매일 2첩씩 복용하는 것을 시작했다. 경창(景昌) 및 촌내 노소 여러 벗들과 더불어 암정(岩亭)에 올라 꽃을 완상하고 율시 한 수를 읊었다. 주식(酒食)비는 아중(阿仲) 및 혜중(惠仲)씨가 스스로 부담했으니, 즐기는 일이 매우 원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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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26일
| 甲子
| 맑다. 바람과 추위가 매우 심해지다.
하회(河回)로 떠났다. 몇 리 정도 갔을 때 바람과 추위가 매우 심해졌다. 간신히 외가에 도착하니 구씨(舅氏)께서는 막 감기가 더쳐있었고, 응관(應貫)도 또한 정자로 떠나 있었다. 때문에 가마를 타고 다리를 건너 백율원(百栗園)에 도착했다. 마침 노반(老伴) 4인과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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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1월 5일
| 甲子
| 맑다.
선아(宣兒)가 가는 길에 외숙부께 올리는 편지를 부치다. 종가의 의인(宜仁) 하인이 가는 길에 세경(世卿) 형께 조문 편지를 부치다. 신사동(新寺洞) 승학(承學)이 와서 보고 오후에 가다. 옆집의 지붕이 말려 새 풀로 다시 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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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월 2일
| 辛酉
| 맑고 따뜻하다.
예군 운수가 찾아오다. 병산학무가 찾아오다. 처음 품은 뜻은 병단(病單)을 올려서 체직할 계획이었는데, 동임인 시보형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정알 일자를 초7일로 지정하여 보내다. 우안댁의 가옥, 산판, 전평 3두락의 밭은 4950냥으로 값이 매겨졌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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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8일
| 辛酉
| 아침에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다. 저녁에 개다. 오후에 또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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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13일
| 辛酉
| 잠깐 개다. 오후에 또 비가 내리다. 새벽까지 쏟아지다.
치곡(寺谷) 묘소에 성묘하러 갔고, 비를 무릅쓰고 집에 돌아오니 피곤하여 쓰러져 신음하였다. 지곡(枝谷) 효달(孝達) 척이 어제 돌아가셨다는 것을 들었으니 늙으신 부모님 아래에 있는데, 그가 매우 참혹하고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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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30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우편으로 먼 곳 아우의 소식을 받았는데, ■■ 6일자 편지였고, 그립고 답답했던 마음에 조금 위로가 되었다. 밤에 손자 아이들과 더불어 밤을 새며 새해를 맞이했다. ‘입춘(立春)’을 썼다. 군계(郡季) 부자와 성아(性兒)가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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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21일
| 甲子
| 맑다. 추운 날씨가 조금 풀리다.
종숙모(宗叔母)의 삼상(三祥)을 어느덧 지냈으니 비통하고 애도하고 슬프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더욱 말도 나오지 않았다. 빈객들을 맞이하고 보내니 곱절 번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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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19일
| 甲子
| 맑다. 추워서 물이 얼다.
추워서 물이 얼었는데 이번 봄의 이른 추위가 매우 괴의했으니 괴상했다. 여독의 피로가 층층이 생겨서 문을 닫고 병으로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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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21일
| 甲子
| 흐리고 비가 오다. 단비가 종일 내리다.
풍산소작조합(豊山小作組)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이곳에 치성(熾盛)하여 우리 면(面)에도 또한 모두가 그곳에 가입했다 할 만하며, 직곡(稷谷) ․ 대지(大枝)에도 만연하여 전부 물들어버렸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쓸 수도 없게 했다. 이른바 고등학교 설립 비용은 나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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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월 5일
| 辛酉
| 아침에 안개가 끼고 상쾌하게 개다.
언 것이 녹아서 진흙탕이다. 율사형이 떠나다. 종일 좌제하다. 목성에 우제가 찾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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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11일
| 辛酉
| 맑고 덥다.
아침에 북경에서 온 편지를 받았는데 편안하다는 소식을 알았다. 용재에게 노비를 풀어 면하게 하는 일을 부탁하였다. 김매는 일을 마치고 조만간에 벼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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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3일
| 庚申
| 맑다.
구정의 벼 4석을 타작했는데 낮에 소나기가 내리니 농가의 근심을 말할 수 없다. 조언씨가 또 와서 머무르다. 초계 이책면 신하리의 전아(全雅) 두 젊은이가 청계서원수계로 방문하여 점심을 먹고 곧 돌아가다. 오늘 병산서원 향례 입재일인데, 학동 족조가 전임으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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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25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덕명(德溟) 형제에게 편지를 써서 떠나는 하인 편에 보냈다. 대여섯 명의 노반(老伴)들을 모아서 실컷 취하고 배부르게 먹으니 상수(床需)와 주과(酒果)가 매우 많았던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승학(承學) 숙질이 찾아왔으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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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20일
| 甲子
| 맑고 모진 추위가 겨울 보다 심하다.
각처의 빈객이 계속 와서 대접하는 것이 매우 번거로웠다. 응화(應華) 종이 온 편으로 구씨(舅氏) 부자의 편지를 받았는데 신년의 소식이 매우 좋았다. 우편으로 문득 교촌(校村) 경부(景敷) 형의 부음을 받았으니 놀라고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이달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