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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17일
| 甲子
|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쏟아져 내려 그치지 않다. 낮에 조금 개다.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쏟아져 내려 그치지 않으니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화살처럼 곧은데 시름겹고 고민됨이 그지없었다. 낮이 되어 조금 개었기에 행장을 꾸려 출발하려고 했고, 사형(査兄) 부자와 여아 모자가 더 떠나는 것을 만류함이 비록 심했지만 기어이 일어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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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25일
| 甲子
| 맑고 날이 조금 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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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9월 12일
| 甲子
| 맑다.
벽동(碧潼) 족인이 떠나가기에 율시 1수를 지어 선물로 주고, 문중에서 4원을 주어 전송하다. 오늘 군수와 서장이 지사면(枝四面)에 나와 지주가 일제히 모여 전답곡을 결정하는 일이 있어 경후(景厚)와 혜중(恵仲) 씨가 가서 참여하다. 재봉(在鳳)이 몇 달 전에 상경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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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26일
| 甲子
| 맑고 따뜻하다. 저녁에 흐리고 바람 불고, 밤에 비가 오고 밤새도록 내려 시냇물이 넘쳐흘렀다.
올벼 모판에 재 20여 태를 옮겼다. 아중(阿仲)이 영주(榮州)로부터 돌아와서, 정자 공사는 경비의 부족으로 인해 두 마을이 합의하여 곡식을 저금은행에서 돈으로 바꿀 때까지 정지하고 기한을 물리기로 했다고 했다. 금곡(金谷)의 박경화(朴敬和)가 묵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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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7일
| 辛酉
| 흐리고 비가 연일 내리다.
굳은 장마가 사람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하였다. 앞산에 보리를 펼쳐놓은 것을 다 버리게 되었으니 탄식할만하고 탄식할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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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15일
| 辛酉
| 흐리고 덥다. 비가 조금씩 뚝뚝 떨어졌다.
지사 박경기(朴璟璣)가 어제 묵었다가 떠나갔다. 도청 축산 서기가 이날 전부터 와서 풍산주재소에 있으면서 면에 돌릴 마필을 점호하였으나 우리 집에는 또한 나귀를 보냈다. 시간을 어겨 마침내 점호를 못하고 돌아갔으니 탄식할만하다. 계가의 작은 아이는 어제부터 설사병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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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2월 9일
| 庚申
| 흐리고 바람이 차다. 오후에 비가 흩날리다.
오치산직에 떠나는 편에 쌀과 물고기 등의 물건을 신사동에 부쳐 보내니 대개 성홍형의 중상이 11일에 있기 때문이다. 우산 의경형이 와서 묵으니, 초녀의 혼사 진행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평감의 엽서와 헌아의 편지가 함께 왔는데 근래 소식이 자못 위로되고 공판은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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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0일
| 庚申
| 흐리고 바람이 불다. 오후에 비가 내리다.
촌중의 노소가 교대로 와서 위로와 축하를 해주었고, 면내의 10인도 모두 오다. 기뻐한 나머지 응대하는 괴로움을 다 잊어버리다. 도정척조가 오늘 하세하여 부임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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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9일
| 庚申
| 맑다.
이른 새벽에 길을 떠나 예천읍으로 향하다. 8시에 차를 타고 곧바로 도청에 도착할 계획인데, 만 리 바닷길에 세상 또한 위험하니 근심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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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1일
| 甲子
| 맑고 따뜻하여 얼음이 녹다.
새벽에 일어나 운물(雲物)을 보았는데 서북쪽에 흑색 기운이 있었으니 오늘 입춘(立春)의 기후가 좋은지 나쁜지 어떠한지를 알 수 없었다. 차례를 지냈다. 여러 가솔들이 모두 편안하고 두 아우도 담락하고 화합했으나 아우 응섭(應燮)이 있을 하늘 끝 먼 곳을 바라보니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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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22일
| 甲子
| 맑다.
신문을 보니 김시현(金始顯)의 아우인 현애(玄厓) 김정현(金禎顯)이 지난겨울 북경(北京)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체포된 지 수개월 남짓 되었다. 일전의 공판(公判)에서 징역 2년을, 구여순(具汝淳)은 5년을, 문(文) 아무개는 3년을 언도받은 사실이 어제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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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20일
| 甲子
| 아침에 맑다. 오후에 가랑비가 흩날리다.
전해 듣기에 낙좌(洛左)숙(叔)의 병세가 위극하여 며칠을 못 버틸 것이라 하였기 때문에 맹언(孟言)과 더불어 걸어서 문병을 갔다. 이어서 구씨(舅氏)를 뵈었다. 오후에 장차 돌아가려 할 즈음에 가랑비가 흩날렸고, 해도 또한 다 떨어지려 하여 외가댁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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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22일
| 甲子
| 맑다. 오후에 흐리고 바람이 크게 불었으며, 밤에 추위가 심하다.
소작조합(小作組合)에 관한 일 때문에 군수(郡守) ․ 경부(警部) ․ 역장(譯長)이 면소(面所)에 나와 대지주들을 초대했는데, 모두 두려워서 군수의 말에 한 마디 말도 못했는데, 결세(結稅)는 지주들이 단독으로 부담하고 곡수(穀數)는 소작인들이 반으로 나누어 부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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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2월 10일
| 庚申
| 아침에 비가 조금 내리고 종일 흐리다.
정형이 신사동으로 출발하고 나는 병으로 나아가서 곡하지 못하다. 거처가 지척에 있는데도 부자가 모두 참석하지 못하고 유명간의 의리를 모두 저버렸으니 탄식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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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1일
| 庚申
| 흐리고 바람이 불다.
병산당회에 노소 4명이 들어가다. 풍산 봉세형이 방색을 구처하는 일로 왔다가 점심을 먹고 곧바로 가다. 지곡 맹인척이 일부로 방문했다가 오후에 예읍으로 향해 떠나다. 저물녘에 하회 춘필씨와 응관·성가종이 나란히 방문하니 기쁘고 감사함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내외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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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24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사람을 예읍(醴邑)에 보내서 아이가 대구(大邱)에서 가지고 온 짐과 상수(床需)와 음식물들을 짊어지고 오게 했는데, 사치하고 많은 것이 매우 심했다. 우산(愚山) 하인이 또 이르러 그의 편에 덕명(德溟) 사형(査兄) 형제의 편지를 받았고, 그들 모두 각기 건시(乾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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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2일
| 甲子
| 흐리다. 아침에 비가 조금 오다가 돌아서 그치다. 밤이 깊은 후 비가 내리고 밤새도록 쏟아지다.
안팎의 마당에서 대나의(大儺儀)를 했으니 또한 한 바탕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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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23일
| 甲子
| 흐리다.
감기가 들어 쓰러졌다. 본 군수(郡守) 이윤영(李胤永)이 면작(綿作)에 대한 연설을 할 참으로 학교에 왔다가 점심식사는 우리 집에서 제공하니 심란하고 괴로움이 자못 심했다. 면작에서 2등을 하여 상으로 홍법단(紅法段) 저고리〔赤古里〕를 상으로 한 건을 증여받았으니 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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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21일
| 甲子
| 맑다.
인시(寅時)에 낙좌(洛佐)옹이 결국 죽었다. 60년의 세월, 서로 쌓아왔던 이 벗과의 사귐과 우정이 이제 다 끝나버렸다. 아침에 그곳으로 가서 한 바탕 곡을 하고나니 이 절절히 비통한 회포를 어디에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맹언(孟言)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패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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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24일
| 甲子
| 맑다.
아중(阿仲)이 영주(榮州)로 떠났으니, 대개 정자의 부서진 지붕 때문에 오계(梧溪) 쪽에서 유사 2인을 뽑고 우리 마을에서 유사 2인을 뽑아 모두 모여 돈정(敦定)하는 것에 관한 일이 오늘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