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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13일
| 庚申
|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잠깐 개고, 오후에 또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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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2월 13일
| 辛酉
| 맑고 춥다.
중군이 의양 길을 떠났는데, 유연정회에 들려서 참석하다. 입석령·순백형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다. 부아가 귀밑머리에 종기가 나서 오른뺨이 붉으니 근심이 적지 않다. 물봉 이석하가 경성으로부터 신사 대상에 참석하러가는 길에 방문하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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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28일
| 辛酉
| 흐리고 바람이 불다. 가랑비가 때에 맞게 날리다. 흐리고 서늘하다.
헌아가 은행의 이자를 갚기 위해 군에 들어갔는데 그 편에 교촌 진사댁에 부의금과 입석(立石) 강표 숙(叔)에게 드릴 편지를 우체국에 부치게 하였다. 겸하여 간역에 도울 돈 4원을 부쳤는데, 『매암공유집』을 이미 새로 완성해서 책을 꾸며 만들어 반질하려고 한다고 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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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9월 20일
| 辛酉
| 흐리다. 밤에 비가 내리다.
오후에 신부를 보았는데 모습이 단하하고 현숙하였다. 분명 복을 싣는 감이니 경사스럽고 다행함이 비할 것이 없었다. 그 아버지는 멀리 있어 함께 경축하지 못했으니 세상일에 원만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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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19일
| 癸亥
| 흐리고 춥다. 오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밤새 펄펄 내리다.
여러 날 기침감기 때문에 진실로 고통스럽고 고통스럽다. 아이와 숙질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행여 병이나 더쳤을까 염려되었다. 또 길림(吉林)에서 온 편지를 받았는데 이달 12일자 편지였다. 일전에 경찰서에서 침범하여 괴로웠다가 곧바로 돌아가서 보존했으나 경계와 염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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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월 6일
| 庚申
| 맑고 오후에 바람이 불다.
왕모의 휘신일이 되어 슬퍼하다. 소산에 가서 귀서형을 위문하다. 문칠·성흠·위경 여러 형을 방문하다. 저녁에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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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16일
| 庚申
| 비가 내리다가 저물녘에 비로소 개고, 밤에 달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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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2월 16일
| 辛酉
| 새벽부터 비가 시작되었지만 한번 호미질하기에도 충분하지 못하다. 낮에 곧 개다.
사곡에 가서 서편 제방위에 미루나무를 죽 심다. 아내의 묘 옆의 근방에 나무 40그루는 베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니 인아와 세 종형 형제가 읍으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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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7월 1일
| 辛酉
| 흐리고 아침에 서늘하다. 낮에 뜨겁다가 비가 뚝뚝 떨어지다. 저녁에 바람이 불다. 저녁에 소나기가 수차례 오다.
기일안과 축식을 써서 헌아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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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0월 28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청전(聽田) ․ 연당(硏堂) ․ 간초(澗樵) ․ 청거(靑居) 여러 형이 찾아왔다. 점심식사를 한 후 그들을 데리고 암정(巖亭)에 올라 하루를 묵으면서 율시 두 수를 읊으니 실로 늘그막에 상쾌하고 시원했다. 나주(羅州)에서 족숙(族叔)이 4년 만에 비로소 돌아왔으니,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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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2월 12일
| 辛酉
| 흙바람이 크게 일어나다.
헌아가 예천읍으로부터 대구로 떠나니 대개 정재의 유식(留食)을 주선하는 일과 척식(拓殖)에 돈을 낼 계획 때문이니, 과연 모두 뜻대로 되겠는가? 규제가 들어가다. 용재와 정재 두 아이가 모레 졸업식에 참석하다. 고성 김범수가 비로소 병풍 만드는 일에 착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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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27일
| 辛酉
| 흐리고 바람이 불다. 날리는 비가 잠깐 날리다.
우산(愚山)의 마부와 말을 돌려보냈다. 권군과 응관이 다 돌아왔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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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9월 19일
| 辛酉
| 흐리고 바람이 불다.
순성(舜成) 형의 둘째 아들이 말을 타고 나와 제절이 다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쁠만하다. 오후에 네 사람이 메는 가마와 가마가 도착하여 출발하여 물봉에 이르렀다. 신시(申時)쯤에 혼례를 올리니 준비한 것이 매우 성대하였다. 모두 모여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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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30일
| 辛酉
| 흐리고 바람이 서늘하다.
면사무소를 후사(後寺)에 있는 김흥용(金興容) 집 논에 정해서 160환을 주고 사서 얻었다. 오늘 그 벼이삭을 모두 뽑고 비로소 터를 닦기 시작하였는데, 여러 마을에서 부역에 나아가니 그 노고를 견딜 수 없었다. 집집마다 돈을 내었으니 그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는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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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0월 27일
| 癸亥
| 잠깐 흐리고 잠깐 맑다.
헌아(憲兒)가 예읍(醴邑)으로 떠났다. 오후 차로 말수(末嫂)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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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7월 2일
| 辛酉
| 맑고 날이 뜨겁다.
주재소 순사가 와서 양력 10월경에 태평양 워싱턴에서 장차 만국공회를 연다고 하는데 감상이 어떠한지 물어보니 괴상하다. 평양사람 박종은(朴鍾恩)이 중가(仲家)에 와서 묵으니 그는 작년에 갇혀있을 때 고통을 같이 한 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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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9월 21일
| 辛酉
| 아침에 비가 오다가 낮에 그치다.
상수(床需)가 매우 성대하였고 의복이 다섯 벌이나 되었다. 어육이 돈을 대신하여 60원이다. 출발하여 안강(安康)에서 묵었다. 차를 운전해서 대구에 이르면 마차를 사서 집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새 사람을 아침저녁으로 간간이 보니 매우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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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1일
| 甲子
| 맑다. 바람과 추위가 모질고 심하여 곧 한겨울과 같다.
하상(河上)에 사람을 보내어 구씨(舅氏)께 편지를 올리고 겸하여 멀리서 온 시를 드렸다. 저물녘에 인편이 돌아온 편으로 응관(應貫)의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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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8일
| 甲子
| 맑고 따뜻하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다. 영주(榮州)의 유연당(悠然堂)이 장차 낡아 쓰러질 우려가 있어서 오계(梧溪)에 개건(改建)할 뜻으로 편지를 보냈으나, 학가산(鶴駕山)의 땅을 아직 보지 못했고, 선조들이 남긴 가르침을 깊게 저버렸으니 탄식하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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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13일
| 甲子
| 맑고 춥다.
돌아가는 길을 나섰는데, 대저 박사(博士)가 나를 대접 해 주는 것이 융성하고 두터웠고, 침식을 제공 해 준 것도 상빈(上賓)의 대우와 다를 바 없었으며, 영수장(欞壽杖) 및 10환의 돈과 4축(軸)의 주지(周紙)를 전별 선물로 주었으니 감탄스러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