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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4월 6일
| 壬戌
| 아침에 흐리고 비가 몇 방울 떨어지다가 낮에 개고 따뜻하다.
못자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가뭄 때문에 소동이 매우 심하다. 비로소 누에씨를 쓸었다. 밤에 아중의 편지를 받았는데 들어갈 집을 지은 사람이 뜻 없이 나가서 부득이 가을을 기다려야한다고 하였다. 공연히 낭비하였으니 매우 한탄할만하였다. 또 조언에게 편지를 바로 받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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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4월 1일
| 甲子
| 맑고 바람 불다.
군청의 짚을 엮는 일로 종일 어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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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6월 8일
| 甲子
| 맑고 매우 덥다.
듣기에 어제 남산교(南山橋)에서 4개 면(面)의 지주(地主) 모임이 있었는데, 모인 사람이 500여 인이었고, 단속할 것을 이미 정했다고 하나 유독 우리 마을에만 회문(回文)이 없었으니 필시 온 마을의 소작당(小作黨)들이 이를 물리쳤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무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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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21일
| 甲子
| 맑다.
여러 사람들과 종일 이야기를 나누고 석양에 암정(嵓亭)에 올라가 묵다. 인아(寅兒)가 일본에서 비로소 돌아오다. 밤에 경후(景厚)에게 또 지난번 증세가 더해져 의원을 불러 진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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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9월 17일
| 甲子
| 흐리다. 저녁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새벽닭이 울자 이내 그치다.
예천(醴泉) 시장에서 길림(吉林), 초전(草田), 의인(宜仁)에 편지를 부치다. 강헌 노인(江軒老人)이 서쪽 이웃에 왔다는 것을 듣고 즉시 가서 인사드리다. 이공(而拱) 형이 와서 묵고 편히 이야기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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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월 12일
| 辛酉
| 흐리고 늦게 바람이 불다.
우수이다.
헌아가 돌아와서 들으니 은행의 기일은 다행히 음력 3월 초10일로 물렸고, 어제 금융에서 돈 150엔을 내어 집에 왔으니 일이 자못 매우 맹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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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22일
| 辛酉
| 맑고 덥다.
중복모임을 암정에 열었다. 풍금소리를 듣고 시 한 수를 읊었다. 낮에 강에 비가 잠깐 내렸는데 또한 장관이었다. 규제가 군에 들어갔다. 정과 영 두 아이가 휴가로 와 있어서 소학 수업을 받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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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0월 29일
| 辛酉
| 흐리다. 아침에 비가 오다가 곧 그치다.
소산(蘇山)에게 글을 보내서 감천(甘泉) 봉산서당(鳳山書堂)계일을 알리고 하남으로 사람을 보내서 구씨가 밀양의 여행에서 잘 돌아왔는지의 여부를 물어보며, 또 응관의 편지에 답장하고 대추를 사서 찾아오라고 할 계획이었다. 저녁에 하인이 돌아와 구씨의 편지를 받았는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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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4월 5일
| 壬戌
| 흐리고 샛바람이 불다.
영재의 편지를 받고 교촌 용손과 함께 수정에 있으면서 숙식한다는 것을 알았고 서로 의지하니 다행스러웠으며, 소비를 줄이는 것이 매우 컸다. 내윤의 각종 물건으로 은혜를 받은 것을 생각하니 말할 수 없었다. 신사동에 1석정을 지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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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4월 4일
| 甲子
| 흐리다.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밤새도록 천둥이 치다.
새벽에 증조고의 휘신이 지나가니, 애통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깊고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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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6월 11일
| 甲子
| 흐리고 바람 불고 덥다. 낮에 비가 몇 점 떨어지다. 밤에 또 대풍이 불다.
18명을 데리고 앞들의 논을 김매다. 백일홍이 피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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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24일
| 甲子
| 아침에 궂은비가 몇 점 떨어지다.
사곡(寺谷)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교외로 나가10여일 만에 처음 작황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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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9월 20일
| 甲子
| 흐리고 서늘하다.
강헌 옹(江軒翁)과 평천(平泉) 형을 교외에서 전송하다. 군의 막내아우가 어제 왔다가 오늘 하상(河上)에 갔는데, 저녁에 돌아와 외숙부께서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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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6월 25일
| 辛酉
| 아침에 비가 내리고 흐리다.
우산(愚山)의 마부와 말을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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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0월 24일
| 辛酉
| 맑고 날이 풀리다.
새벽에 계부의 휘신이 지나갔는데 나이가 들어 참여하지 못했으니 형제를 그리는 생각으로 더욱 편안히 있기 어려웠다. 종가로부터 순백(淳伯) 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편안하다는 소식이었다. 또 아홉 마리의 소로 섶나무를 실었으니 근심이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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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30일
| 壬戌
| 맑다.
인시(寅時)에 산신묘소를 고유하고 남방에 선파하고 나서 사시(巳时)에 석인(石人)과 망주(望柱)를 세우고 개석(磕石)을 굳게 쌓았다. 불초하게 5년간 힘을 기울여 이제야 비로소 대략 이룰 뿐이니 비석을 안치하고 또 성재(性齋)의 묘갈문을 두어서 새긴 뒤에야 거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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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5월 2일
| 壬戌
| 맑고 바람이 불다.
태시(太始) 형과 은좌(殷佐) 보(甫)가 하상으로부터 지나다가 들려서 유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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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27일
| 庚申
| 흐리고 바람이 불다. 서늘한 기운이 갑자기 이르다.
아침에 목성으로 하인과 말을 보내니 중군이 타고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중군은 차를 타고서 먼저 돌아오고 하인과 말은 짐 실은 것이 있어서 들어가다. 상림 최상호·신사동의 두 객이 방문하고 점심을 먹고 곧 떠나다. 의성 구련동의 은성군수를 지낸 임홍재가 어제 지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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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19일
| 甲子
| 흐리고 바람 불다.
설사증세가 조금 낫다. 농부가 초연(草宴; 호미씻이)을 열다. 규 제(奎弟)가 하상(河上)에서 와서 묵다. 둘째아우가 건곽란(乹霍亂)으로 몇 시간 동안 위태롭게 보내다가 야심한 뒤에야 평안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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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9월 15일
| 甲子
| 맑다.
정치몽(郑稚蒙) 형이 오늘 학암(鶴岩)에서 단향(壇享)을 시작하기 때문에 가서 입재(入齊)한다고 떠나다. 원하(元河)와 대지(大枝)에 가서 여러 선조 묘소를 둘러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