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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5월 4일
| 光海 7
| 乙卯
몸이 좋지 않았다. <인명>배상익(裵尙益)인명> 공이 <지명>오산(鰲山)지명>에서 와서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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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7월 20일
| 光海 7
| 乙卯
선사에 배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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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7월 28일
| 光海 7
| 乙卯
| 계효(鷄曉)에 비가 내려서 평명(平明)에 그치다.
겨우 밭의 곡식을 적셨다. 낮에 선생님께 인사하고 돌아왔다. <인명>낙재 형(樂兄)[서사원(徐思遠)]인명>의 장지로 갔는데 비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혼(初昏)에 당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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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8월 22일
| 光海 7
| 乙卯
기운이 불편했다. <인명>류비숙(柳斐叔)인명>과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보러왔다가 저녁을 먹고 돌아갔다. 송학무(宋學懋)는 오늘 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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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11월 20일
| 光海 7
| 乙卯
| 바람이 세게 불고 춥다.
몸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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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월 21일
| 光海8
| 丙辰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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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3월 16일
| 光海8
| 丙辰
누워 신음하였다. <인명>선경(善慶)인명>을 <지명>사수(泗水)지명>로 보냈다. 저녁에 선생의 답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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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3월 24일
| 光海8
| 丙辰
| 비가 내리다.
누워 신음하였다. <인명>양경수(楊景洙)인명>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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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1월 6일
| 光海 6
| 甲寅
설날부터 오늘까지 누워서 손님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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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1월 17일
| 光海 6
| 甲寅
갑자기 살갗이 야위고 눈이 침침해진 것을 깨달으니, 오랜 병 때문이다. 북쪽의 호란(胡亂)이 시작되어 정병을 선발했다. 선생의 손자가 오늘 관례를 치렀으나 아직 성대한 의식을 보지 못했으니 한스러움을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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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4월 3일
| 光海 6
| 甲寅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건괘」를 구두했다. 성주가 인편에 편지로 초청하여 들어가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고 거접하는 유생들을 시험했다. 희로(希魯), 여달(汝達)등 세 상사(上舍)가 나보다 먼저 와있었다. 저녁이 되자 술자리를 벌였고 당으로 돌아오니 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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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4월 4일
| 光海 6
| 甲寅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당에 있었다. 「건괘」를 구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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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4월 28일
| 光海 7
| 乙卯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인명>낙재(樂齋)[서사원(徐思遠)]인명>의 행록을 초했다. <인명>도정언(都廷彦)인명>, <인명>도해보(都諧甫)인명> 형제, <인명>나군선(羅君善)인명> 등 여러 사람의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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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5월 7일
| 光海 7
| 乙卯
| 가물다.
몸이 좋지 않았다. <인명>배진국(裵鎭國)인명>이 와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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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7월 23일
| 光海 7
| 乙卯
| 비가 오다.
선사에 배알했다. 비가 한 쟁기 조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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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8월 17일
| 光海 7
| 乙卯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기운이 불편했다. 일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수씨에게 인사했다. <인명>서룡지(徐龍之)인명>가 회를 쳐 청했다. <인명>신경한(申慶漢)인명>이 도읍의 권농(勸農)이 되었고, <인명>전태성(全太成)인명>이 독포장(督捕將)이 되었다. 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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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11월 15일
| 光海 7
| 乙卯
| 비가 흩뿌리다.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선경(善慶)인명>은 『맹자(孟子)』, <인명>승명(承明)인명>은 『소학(小學)』, <인명>곡난(谷蘭)인명>, <인명>직천(直天)인명>, <인명>지천(知天)인명>, <인명>첨(添)인명>은 모두 『사(史)』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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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11월 23일
| 光海 7
| 乙卯
선사에 배알했다. 여러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돌아오지 않았다. <인명>선경(善慶)인명>이 세공(歲貢)에 관한 일로 부(府)에 들어갔다가 새 성주(城主)의 고쳐도 된다는 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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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월 24일
| 光海8
| 丙辰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몸이 좋지 않았다. <인명>곽수신(郭守信)인명>이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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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3월 19일
| 光海8
| 丙辰
| 비가 내리다.
누워 신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