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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7월 20일
| 정조12
| 무신
7월 20일 <지명>서울지명>에 사는 <인명>李儒珍인명>가 찾아왔다. <인명>黃夏鎭인명>가 돌아왔다. <인명>趙允浩인명>가 밖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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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3월 12일
| 정조13
| 기유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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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2월 21일
| 정조14
| 경술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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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15일
| 정조13
| 기유
1월 15일 疏首가 다시 <관직명>禮曹判書관직명>의 집을 찾아갔으나, 또 다시 외출하여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어서 <지명>妙洞지명>에 가서 <관직명>參判관직명> <인명>李獻慶인명>를 만났다. 李 어르신이 일을 마친 것에 대해 아주 축하하며 다음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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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30일
| 정조13
| 기유
1월 30일 <인명>孫潤慶인명>와 <인명>黃道源인명>가 찾아왔다. 藝文館 書吏가 額號로 세 가지 바라는 것을 적은 單子와 額號를 쓸 관원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規例를 가지고 왔다. 그 단자는 다음과 같았다."<관직명>資憲大夫行龍驤衛<관직명>副司直관직명>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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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7월 17일
| 정조12
| 무신
7월 17일 <지명>尙州지명>의 倡義錄 책자를 쓰는 일을 비로소 마쳤다. <인명>黃聖休인명>와 <인명>黃泰熙인명> 및 <인명>黃弼熙인명>가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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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3월 17일
| 정조13
| 기유
3월 17일 <인명>黃弼熙인명>가 계속해서 ························ 順金이 와서 각처의 편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致祭의 關文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 의문이 들고 염려스러워 嶺南 觀察使에게 글을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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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2월 4일
| 정조13
| 기유
2월 4일 <인명>黃翼鎭인명>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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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3월 2일
| 정조14
| 경술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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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24일
| 정조13
| 기유
1월 24일 疏首와 <인명>黃聖休인명>가 宋<관직명>別檢관직명>의 집에 갔다가 司憲府 朝房으로 鄭<관직명>監察관직명>을 찾아보고 오기로 하였다. 上疏를 올려다가 批答의 은혜를 입은 후에 비록 本院에 소식을 전한 것이 있기는 하였으나, 직접 통지하는 도리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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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2월 2일
| 정조13
| 기유
2월 2일 <인명>黃巖老인명>가 과거시험을 보러 온 덕분에 여러 곳의 무사하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서원의 사액을 청한 후에는 復戶와 位土田을 받아내기 위해 올릴 글을 써야 했는데, <인명>黃弼熙인명>로 하여금 禮曹에 올리도록 하였다.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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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1월 18일
| 정조12
| 무신
11월 18일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멈추었다. <관직명>別檢관직명> <인명>權文度인명>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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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17일
| 정조13
| 기유
1월 17일 疏首와 <인명>黃聖休인명>가 <지명>貞洞지명>에 가서 洪<관직명>監司관직명>에게 喪中에서도 상소문을 받들게 된 곡절을 듣고 위로하였다. 그런데 <관직명>洪承旨관직명>는 숙직을 하느라 돌아오지 않아 洪<관직명>監司관직명>와 함께 얼마간 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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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2월 18일
| 정조13
| 기유
2월 18일 바로 會試의 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이다. <인명>黃巖老인명>와 <인명>黃磻老인명> 兄弟, 그리고 도내의 아는 사람들이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지명>泮村지명>에 들어갔다가 날이 저물지 않아 <인명>黃磻老인명>의 합격을 알리는 노비가 와서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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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0월 12일
| 정조12
| 무신
10월 12일 또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고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냈으나, 승정원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되돌려 보냈다. 오후에도 또한 이와 같았다. 申時가 되어 관무를 마친 후에 상소문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명>黃夏鎭인명>가 그 아내가 병이 들었다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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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7월 19일
| 정조12
| 무신
7월 19일 <인명>趙奎鎭인명>와 <인명>黃泰熙인명>가 의병을 일으킨 일과 관계된 상소의 일을 보기 위해 <지명>泮村지명>로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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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27일
| 정조13
| 기유
1월 27일 <인명>黃瑗인명>와 <인명>黃道源인명>가 찾아왔다. 疏首와 <인명>黃弼熙인명>가 <지명>泮村지명>로 가서 옛 친구들을 찾아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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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2월 20일
| 정조14
| 경술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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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21일
| 정조13
| 기유
1월 21일 <인명>柳鳳祚인명>가 밥을 먹은 뒤 고향으로 출발했다. 여러 달 동안 일을 함께하다가 갑자기 먼저 돌아가니, 서로 어울렸던 정 때문에 서글프고 암담한 심정을 이길 수 없었다. <인명>黃弼熙인명>가 禮曹의 直房에 가서 執禮書吏를 만났더니, 禮曹에서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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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3월 20일
| 정조13
| 기유
3월 20일 <인명>黃弼熙인명>가 禮曹 直房에 가서 致祭官이 누구이며, ························ 탐문해 보았더니, 書吏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承政院에 일이 많아 아직 어떤 <관직명>承旨관직명>로 정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또한 어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