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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24일
| 壬戌
| 흐리다.
지보(知保) 하인이 온 편에 그 곳 집안의 제절이 모두 편안한 것을 알았다. 질부가 나에게 버선 한 켤레를 주었으니 사랑스러웠다. 성필(聖弼)씨에게 편지를 써서 부쳤다. 상주(尙州) 화북면(化北面) 장암(壯巖)의 이원보(李源普)가 찾아왔는데, 오후에 신사동(新寺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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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23일
| 癸亥
| 아침에 비가 오고 이어서 개고, 바람이 크게 불고 춥다.
하회(河回) 재만(在晩) 형이 어제 와서 서로 함께 하루 동안 시를 읊고는 10수의 율시를 지었다. 오랫동안 답답하여 시름겹게 칩거하던 뒤 끝에 회포 풀고 이야기하기에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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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9일
| 癸亥
| 맑다.
43명의 장정들을 데리고 앞들 논에 벼를 파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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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7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우편으로부터 장춘(長春)에 있는 아우의 편지를 받아 보니 1일에 보낸 편지였다. 물건을 보낸 후 달포 남짓 초조하고 답답함이 자못 심했었는데 기쁘고 시원함을 비할 바가 없었다. 그리고 남북으로 두루 돌아다니다가 지난 달 그믐 상간에 그곳에 도착해서는 편지를 보내고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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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2일
| 癸亥
| 맑다.
밤에 동회(洞會)에서 초적(草賊)을 방비 할 대책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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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18일
| 癸亥
| 맑다. 오후에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일다.
응관(應貫)과 더불어 하곡산(河谷山) 위에 갔다가 점심식사를 한 후 작별했다. 오후에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일었는데, 추위를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함에 기력을 떨칠 수 없었다. 전포(前浦)의 구씨(舅氏)께서 와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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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10일
| 甲子
| 흐리다. 눈꽃이 때로 날리다. 밤에 눈이 한 치 가량의 깊이로 내리다.
사곡(寺谷) 노인회에 갔다가 이어서 또 성묘를 했다. 청산(聽山)과 더불어 운자를 내어 율시 한 수를 읊고는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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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26일
| 甲子
| 맑고 따뜻하다.
김(金)아사(雅士)가 예천(醴泉)으로 떠났다. 완아(完兒)가 군으로 떠났다. 선아(宣兒)는 하회(河回)로 떠났는데, 그 편에 구씨(舅氏)께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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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4일
| 癸亥
| 맑다.
신문을 보니 중국(中國)의 대통령으로 차오쿤〔曹錕〕이 새로 선출되었는데, 대부분의 인심이 만족하지 못하여 장차 병란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日本) 도쿄〔東京〕에 또 폭풍우가 몰아쳤고 혹은 강진이 일어서 건축물과 가옥들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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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20일
| 癸亥
| 잠깐 흐리고 잠깐 맑다.
고노(雇奴) 이구(李駒)를 또 들였다. 송명익(宋明翼)이 와서 묵었는데, 금강산(金剛山) 유람시를 보여주었다. 성아(聖兒)가 하상(河上)에서 방학을 맞이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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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1월 12일
| 甲子
| 맑고 따뜻하기가 봄과 같다.
경후(景厚)가 서울에서 돌아왔는데 딸의 혼처를 조성연(趙性衍) 형의 손자로 정했다고 하다. 맹언(孟言)이 돌아와 순성(舜成) 형의 답장을 보고 조카며느리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을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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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4월 7일
| 甲子
| 맑다.
여러 손님이 돌아가다. 길림(吉林) 아우의 편지를 받다. 봉화(奉化) 김수종(金秀宗)의 편지를 받았는데 백씨가 붙잡혀 장춘(長春)에 몇 달 갇혔다가 신의주(新義州)로 옮겼다고 한다. 선호(仙湖) 이종이 하상(河上)에서 와서 유숙하다. 경후(景厚)가 대구(大邱)에서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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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19일
| 癸亥
| 잠깐 맑고 잠깐 흐리다.
새벽에 증왕모(曾王母)의 휘신을 지내니 애통하고 그리운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아중(阿仲)이 어제 또 오지 않았는데, 거의 병난 데도 없어졌을 텐데 그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공연히 내려간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크게 사람을 고민되게 하는 것이니 우려됨이 얕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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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2일
| 癸亥
| 맑다.
새벽에 추원사(追遠祠) 향사를 치렀는데 나는 사장(社長)으로서 초헌관(初獻官)이 되어 의식에 어긋남이 없이 하고는 공약(公若) 형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왔다. 질부가 어제 잘 도착했으니 매우 반갑고 기뻤다. 그리고 헌아(憲兒)가 올 때 예읍(醴邑)에 내려가서 장춘(長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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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28일
| 癸亥
| 맑다.
김(金)아사(雅士)를 하상(河上)에 보냈고, 또한 응관(應貫)의 편지를 받았다. 군계(郡季)가 출발했으나 차가 결국 만원이어서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윤수용(尹守瑢)이 또 엽서를 보내왔으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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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7일
| 癸亥
| 맑다.
하회(河回)로 갔던 하인이 돌아와서 응관(應貫)의 답장을 받았는데 요청한 일이 결국 뜻처럼 되지 않았으니 낭패가 적지 않은데다가 멀리 있는 아우를 생각 해 보니 마음이 타는 듯했다. 우편으로부터 이석하(李錫河)의 편지를 받았는데, 질부의 내행을 이달 10일에 순성(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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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23일
| 癸亥
| 맑고 추위가 점차 혹독해지다. 맑고 춥다.
세 아우가 제각기 흩어져 있으니 염려됨이 그지없다. 계군(郡季)이 휴가를 받아 돌아왔는데, 한 동이의 술과 한 항아리의 안주와 두 개의 잔(盞)과 네 건의 달력을 주었으니 가상했다. 또한 무원(茂元) 사형(査兄)의 편지를 받았고, 또한 두 건의 달력을 함께 보내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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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23일
| 甲子
| 잠깐 맑고 잠깐 흐리다.
우편배달부가 와서 길림(吉林)에서 보낸 서신을 보니 이달 19일자 편지였다. 병이 나서 신음하고 있고 생활도 어렵고 궁핍하다고 하니 멀리서 염려한들 어찌하겠는가? 또 경성(京城)에서 머물고 있는 아이의 편지를 보니, 18일에 경성에 들어가서 안재(安在)의 어미를 전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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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4월 10일
| 甲子
| 맑다.
이국경(李國卿) 형과 암정(岩亭)에 올라 율시 2수를 읊다. 사람을 하남(河南)에 보내 가마를 빌려오다. 선아(宣兒)가 하회(河回)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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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월 12일
| 甲子
| 맑고 바람 불고 춥다. 봄추위가 겨울 보다 심하여 냇물이 단단하게 얼다.
재봉(在鳳)이 경성(京城)으로 올라갔으니 전별금으로 1원을 주었다. 종가에 빌린 돈 110원을 갚았다. 봄추위가 겨울 보다 심하여 냇물이 단단하게 얼었으니 의인(宜仁)에서 우산(愚山)으로 가는 초행(醮行)을 생각하면 염려됨이 얕지 않았다. 저녁에 이순재(李舜哉)가 군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