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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5월 14일
| 壬戌
| 맑고 바람이 불다.
이앙하는 일을 마쳤다. 풍산과 월포에 물이 역 앞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홍수라 이를 만하였다. 어제 밤에 이율(而栗) 사형과 김사용(金思容)이 와서 중가에서 묵었는데 고등학교를 시설하는 일로 모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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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6일
| 壬戌
| 흐리고 춥다. 저녁때가 되어 처음 눈이 내리고, 밤이 깊어서 수 촌 가량 내리다.
하회(河回) 자유(子由)숙, 원부(源夫)척, 순장 ․ 응초(應初) 형이 찾아 왔다가 점심식사를 하고 곧 돌아갔다. 저녁때가 되어 처음 눈이 내리고, 밤이 깊어서 수 촌 가량 내렸으니 초겨울의 눈을 처음 본 것이라 이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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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23일
| 壬戌
| 새벽에 싸락눈이 내리고, 맑고 춥다.
우산(愚山) 하인이 어제 돌아온 편에 사형(査兄)의 편지를 보았다. 또 정와(靖窩)와 두은(斗隱)의 답서를 받았는데, 모두 제절이 편안하니 기뻤다. 헌아(憲兒)가 저물녘에 돌아와서 볼일이 잘 해결되지 못했다 하니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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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22일
| 癸亥
| 잠깐 맑고 잠깐 흐리다. 밤에 비가 오고 밤새 쏟아졌다.
군위(軍威) 화곡(華谷)의 은(殷)아사(雅士)가 그의 선조인 은여림(殷汝霖) 공(公)의 단향(壇享) 수계(修稧)에 관한 일로 찾아왔기에 문중의 함자를 썼고, 점심 식사를 한 후 보냈다. 한식(寒食)이 이미 지났는데 앞들의 여러 논에 아직도 보리를 파종하지 못했고,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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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0일
| 癸亥
| 맑다.
국빈(國賓)과 표숙(表叔) 령(令) 형제와 더불어 일찍 출발했는데, 노소 여러 사람들과 이별했다. 잠시 중수(仲嫂)씨 모녀를 보았다. 나누어 차를 타고 내성(乃城)에 이르렀다. 국빈이 먼저 떠났고, 나와 표숙 령 형제는 모두 내려 군칠(君七)씨가 운영하는 객점에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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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0월 13일
| 甲子
| 맑고 바람 불고 춥다.
우안(愚安) 묘사(墓祀)에 아이는 참석하고 나는 추위로 참석하지 못하다. 신문을 통해 지섭(祉燮) 종(従)의 공판이 이달 10일에 또 열렸는데 무기징역에 구형되었다는 소식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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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 癸亥
| 맑고 바람 불다.
고암(古巖) 족조(族祖)가 떠나 노인소(老人所)로 향하니 1원의 전별금을 주었다. 성래(聖來)가『운산집(雲山集)』을 가지고 어제 왔었는데, 책의 모양이 좋고 아름답다 이를 만 했고 도합 수백 질을 만들었다고 했으니 비단 그 집안만의 선조를 추모하는 효(孝)일 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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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2월 15일
| 壬戌
|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곧 개다.
오계(梧溪)에서 연이은 편지가 와서 종복하는 일이 본래의 예식대로 근거하면 쓰는 것이 무방하여 양파의 이름을 낱낱이 기록하여 보낸다고 하니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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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5월 12일
| 壬戌
|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데 빗소리가 종일 그치지 않았고 시냇물이 흘러넘치다. 밤에 또 날이 새도록 쏟아졌다.
수개월동안 갈망하던 끝에 이제야 조만간 씨앗을 뿌리고 이앙하는 일을 마칠 수 있겠다. 영아가 또한 일어나 거듭 기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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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6월 24일
| 甲子
| 흐리다. 큰 비가 때때로 내려 도랑이 자주 넘치다.
신사동(新寺洞)에 물건을 보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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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21일
| 壬戌
| 맑고 춥다.
종일 아파서 신음했다. 헌아(憲兒)가 군에 들어갔다. 권태석(權泰奭)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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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20일
| 癸亥
| 흐리고 바람 불고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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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18일
| 癸亥
| 맑다. 저녁이 되기 전에 우렛소리가 나고 비가 왔으나 먼지 적실 정도만 내리고 이내 그치다.
아침식사 후 바깥마당에서 회근연(回巹宴)이 마련되었는데 남녀 모인 자들이 수천 명이었고 광경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복록이 겸전하여 구름이 일고 노을이 끼듯 성대한 기상은 근래에 처음 보는 것이다. 교원(敎元)의 아가씨를 물어서 보니 조신하고 덕 있는 모양이니 또한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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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4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아이가 보리를 간평하는 것을 이미 끝냈는데, 작년에 비해 과반이나 수확이 감소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하니 어찌하고 어찌할까? 사제(沙堤) 대수(大修) 형에게 언장을 써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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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12일
| 癸亥
| 맑다. 오후에 바람 기운이 있었다.
풍산(豊山) 이준하(李凖夏) 문숙(文叔) 보(甫)가 문중 서찰을 가지고 와서는 우안(愚安) 산판에 관한 일이 결정되었던 가격 이외에 또 10원을 더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허락 해 주었다. 오후에 내려가면서 조만간에 도장을 가지고 문서를 작성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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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4월 6일
| 甲子
| 맑다.
어헌(漁軒) 조무홍(趙茂洪) 형과 우령(藕舲)의 이종면(李鍾冕) 성오(星五) 족조가 방문하여 유숙하다. 우령 성오씨와 율시 1수를 읊다. 밤에 여럿이 모여 편안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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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20일
| 壬戌
| 맑고 춥다.
새벽꿈에 시냇물이 흘러넘쳐 콸콸하는 소리가 들렸으니, 이 어떤 징조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구름을 보니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다가 해가 나온 뒤에 모두 흩어졌다. 추위가 두려워 대지(大枝)의 입춘회(立春會)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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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19일
| 癸亥
| 흐리고 비가 낮밤으로 그치지 않다.
논에 보리를 전부 다 갈지 못했다. 한식(寒食)이 겨우 며칠 남지 않았는데 농가가 낭패를 보게 생겼으니 이는 작은 우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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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17일
| 癸亥
| 맑다.
맹언(孟言) 형제와 원재(元在) 형제가 들어왔는데, 춘재(春在)의 초례(醮禮)일이 내일이기에 장차 차를 함께 타고 가기 위해서이다. 비로소 표를 사서 함께 출발하였고, 맹언은 집으로 돌아갔다. 영주(榮州)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성래(聖來) 보(甫)에게 들러서『운산집(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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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3일
| 癸亥
| 맑고 뜨거우니, 크게 가뭄 소동이 있다.
순백 형에게 답장을 썼고 겸하여 양정(兩亭) 운(韻) 4수를 보냈다. 수도(水島)의 진경(震卿) 형이 병산(屛山)에 공무를 처리하러 가던 차에 찾아왔다가 곧바로 떠나니, 쇠하고 늙은 처지에 서운한 회포가 자못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