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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20일
| 庚申
| 흐리다.
두 유형과 암정에 올라 시 한수를 수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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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1월 4일
| 庚申
| 맑다.
아중과 송고 계상·평산 종씨와 함께 오치·입암에 가서 여러 바위를 둘러보고 하룻밤 묵다. 돌아와서 들으니 하상구씨와 4~5명, 우천 건일형이 함께 도산에 갔는데, 이달 초1일에 토계이씨 각 가문과 8년 동안 서로 격조한 뒤 끝에 혐의를 파했으니 우리 사람의 다행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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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4월 13일
| 辛酉
| 맑다.
이부자리 안에서 식사를 하고 양산(陽山) 숙(叔)과 함께 가마를 타고 떠나갔다. 낮이 되기 전에 이사리에 와서 종조고를 산에 모시는 일을 감독하여 밖에 계단을 쌓았고, 해질 무렵이 될 때 산직의 집에 왔더니 좁아서 편히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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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8월 26일
| 辛酉
| 황사바람이 불다가 사방이 개니 괴상하다.
새벽에 왕고의 휘신이 지나가니 애통하고 사모함이 새로운 것과 같았다. 상주인 덕명 사돈이 성주로 떠났고 문포 권옥영 등 여러 명이 찾아왔는데 그 선조 송포를 서원에 세우는 수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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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6일
| 癸亥
| 맑고 크게 뜨겁다.
전답이 모두 타버려서 가뭄 소동이 시끌벅적 했다. 처음에는 풍년의 가망 있어 보였으나 문득 흉년 조짐이 이르니 하늘의 뜻을 알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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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15일
| 癸亥
| 맑고 따뜻하다.
새벽에 고왕고(高王考)의 휘신을 지내니 그리운 마음이 더욱 새로웠다. 내동(內洞)의 이원(而遠) ․ 경관(景觀) 등 여러 객들이 찾아왔다가 이어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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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5월 15일
| 壬戌
| 맑다.
영아와 옷을 주러 온 하인이 갑자기 이르러 그 아이가 별도로 기다리는 것 없이 답장을 써서 그 예식을 매우 간소하게 하고 폐단을 없애도록 하자고 보냈다. 또한 혼인하는 날을 다시 가렸는데 송고(松皐)에서는 다음 달 초3일이 가장 좋으니 이날로 정하였다. 이번에는 대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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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7월 16일
| 壬戌
| 맑고 풍경이 좋았다.
오늘은 임술년 가을 7월 기망일(16일)이다. 괴정의 차로 변에 다시 가마를 보냈으나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최실의 내행이 혹 출발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저녁이 되려 할 즈음에 막 병산서원에서 유람을 청하러 온 일행들이 왔다. 듣기에 여아와 세 숙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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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9일
| 壬戌
| 흐리다.
헌아가 밤에 돌아왔는데, 예천군의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순백 형의 편지와 시를 찾아서 왔다. 또 듣기에 의인의 과부가 28일 간의 원일(寃日)을 파재(罷齋)하고, 저녁에 문을 닫아걸고는 자결하려다가 주변사람들에게 구원되어 실패했으니, 참인(慘忍)함이 그지없었다.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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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26일
| 壬戌
| 흐리다.
지곡(枝谷)으로부터『비정신씨양세고(比亭申氏兩世稿)』4책을 보내 왔으니, 즉시 답장을 써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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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25일
| 癸亥
| 맑고 따뜻하여 살구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정아(定兒)의 편지를 보았는데 이미 고등학교의 시험에 합격했으니 끝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이를 만했다. 기쁘고 다행스러움이 마치 옛날 방성(榜聲)을 들은 것과 같았다. 그 아이의 종형제가 해마다 우뚝이 합격을 하니 매우 기특했다. 음식을 부탁하는 일은 비록 수정(壽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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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1일
| 癸亥
| 맑다. 저녁에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일고,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다가 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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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9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저녁에 비가 한 호미 뜰 만큼 조금 내리다.
동의 장정들이 호미씻이 잔치를 열었으나, 농작물이 다 타버렸으니 무슨 재미가 있을까? 진남포(鎭南浦)와 장연군(長淵郡)에서 해일이 일어 인명이 익사하고 가옥이 떠내려갔으며 재화의 손해도 부지기수라는 내용이 신문에 나왔고, 그 일자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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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26일
| 壬戌
| 맑다.
수정 여아의 편지를 보니, 이사를 12일 진시에 했고, 집안 제절이 편안하고 길하다고 했다. 듣기에 밀양 이모네 집도 또한 경성으로 이사했고, 그 일행이 일전에 수정에 들러 하루 머물고 떠났다고 했다. 또 천대정 사형의 편지를 보니, 여아가 막 구세의원에서 치료를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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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 10일
| 壬戌
| 흐리다.
새벽에 생가 고조모의 휘신에 참여했으니, 감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대지에 가서 전소 모임에 참여하고 사곡에서 무덤 주위를 청소했다. 눈이 내려 진흙 바닥이 마치 바다와 같아 가마를 타고 나아갔고, 저물녘에 돌아오니 피곤함이 자못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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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27일
| 壬戌
| 맑다.
나주(羅州)와 우산(愚山)에 답서를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헌아(憲兒)가 군으로 들어갔다. 의인(宜仁) 하인이 밤에 돌아온 편으로 그곳 집안의 제절이 편안함을 알았으니 위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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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26일
| 癸亥
| 맑다. 저녁에 바람이 크게 불다.
중수(仲嫂)씨가 차를 타고 의양(宜陽)에 근행(覲行)을 떠났는데 인아(寅兒)가 모시고 갔으며, 순백(淳伯) 형 부부의 회갑일이 가까운 날에 있기 때문이다. 순백 형에게 편지를 써서 하례 드렸고, 또 석평(石坪) 령(令)에게 편지를 부쳤다. 오늘 집을 청소했다.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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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2일
| 癸亥
| 맑다.
헌아(憲兒)를 군청에 보내어 이씨(李氏)의 우안(愚安) 산판가 기록을 열람하게 했다. 개곡(開谷)으로부터 밤에 돌아와 산판 1정(町) 7반(反) 2공(空)이 5천여 평 가량이라 이를 만 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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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7월 10일
| 癸亥
| 맑고 뜨겁다.
암정(岩亭)의 곡회에 가서 시 몇 수를 읊었다. 저녁식사를 한 후 돌아왔다. 용손(龍孫)과 영질(寧姪)이 하상(河上)으로 떠났는데, 일행이 막 출발했을 때 하회 하인이 잇달아 와서 그 편에 응관(應貫)의 편지를 받았고, 음식으로 잉어 한 마리를 보내주었으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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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5일
| 癸亥
|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이 종일 그러하다.
우편으로부터 먼 땅 응섭(應燮)의 편지를 보니 비록 편안하다는 소식이었으나 생활 할 대책이 없다 하니 어찌하고 어찌할까? 지난 달 28일자 편지이니 지금으로부터 7일 전의 편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