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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10월 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아침에 아픈 증세가 조금 줄어들었다. 끝내는 오한이 와서 세수하고 머리를 빗을 수 없었다. 이불을 끌어안고 조섭할 계획으로 삼았는데 많은 사람이 오고가서 매우 편하지 못할 뿐이었다.
<지명>양동(良洞)지명> 반장(泮長)이 일전에 들어와 오늘 대원군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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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29일
| 高宗 1
| 甲子
<인명>중현(仲賢)인명>이 또 밖으로 나갔다가 왔다. 오씨(吳氏), 이씨(李氏) 등 여러 집에서 모두 <인명>대원군(大院君)인명>에게 고할 틈이 아직 없었다고 하니 고민되고 고민된다. 오후에 <지명>고양(高陽)지명>으로 나갔으니 내일 전소(奠掃)에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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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20일
| 高宗 1
| 甲子
| 흐리다.
김 자형(金姊兄)이 새벽에 와서 이별하고 갔는데, 행색이 염려할만하다. 또 비가 올듯하니 더욱 염려됨을 잊을 수 없을 뿐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떠나가니 매우 근심스럽고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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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10월 4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방외(坊外)의 아무개 집안들이 글을 구하기 위해 반촌 여관에 사방으로 흩어져 들어갔는데, 이른바 조정의 신하들은 대략 글을 안배하는 법을 아는 자만 있으면 모두 글을 써 달라고 붙잡는다고 한다. 그것은 서인과 북인이 영남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지만 영남인들은 이를 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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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2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아침식사 전에 어제 소유들이 방외에 차례대로 왕래하자는 의론을 어찌 금하고 떨치지 못하여 점점 막기 어려운 길을 여느냐고 고하였다. 종숙부와 사첨 씨(士瞻氏)가 모두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말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의리는 고사하고 일하는 도리가 이와 같을 수는 없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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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10월 15일
| 高宗 7
| 庚午
객일수록(客日隨錄)
경오년 여름에 임천서원(臨川書院)의 복설(復設)을 청하는 유소(儒疏)에 관한 일로 호계(虎溪)에서 의론을 내어 호암(豪巖)에서 향회를 열기로 정하였다. 온 고을의 노성한 자들이 때맞춰 일제히 모여 <지명>화부(花府: 안동부)지명>에서 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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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28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비가 온 뒤 끝에 날이 다시 매우 추우니, 객지에서의 하루가 마치 삼동설한을 보내는 듯하여 고민되고 고민된다. 형님은 흥동(興洞)측 여관에 거처했는데, …… 윗간이 매우 따뜻하다고 하니 다행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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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7일
| 高宗 1
| 甲子
| 잠깐 비가 내리고 흐리다.
밥을 먹기 전에 시문(柴門)에 들어가다가 밖으로 나가 <인명>공백(公伯)인명>과 외종(外從)을 보고 문으로 들어가서 원촌 형(遠村兄)을 찾았지만 서로 보지 못하여 한스러웠다. 비가 내릴 조짐이 있어 곧 나왔다. 날이 저물자 비가 내리고 개었다. 여러 벗들을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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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4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김 자형은 어제 이미 일소(一所)의 의막(依幕)에 나가서 얼굴을 보고 전별하지 못하니 한스럽고 슬펐다. <인명>김문약(金文若)인명> 어른은 <인명>권유락(權幼樂)인명>을 보기 위해 나갔고, 나도 따라서 함께 갔다. 육조(六曹)의 거리에 이르러 집집마다 찾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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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11월 4일
| 高宗 7
| 庚午
오후에 비로소 길을 떠나서 종숙부께 하직 인사를 하였다. 근신과 함용에 힘쓰라는 가르침을 받았으니 가슴에 새겨 감히 잊을 수 있겠는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교외로 나가 몇 리를 가다가 돌아보니 담장이 둘러진 폐허에 노소(老少)가 우두커니 바라보며 전송하고 있었다.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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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5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밥을 먹은 뒤에 자형(姊兄)을 보기 위해 또 일소(一所)로 나가 문 밖에서 기다리니 조금 지나자 나왔다. 탈 없이 답안지를 제출했고 기색은 자못 자신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가 잘 봤음을 알 수 있었다. 부제(賦題)는 「봉황이 천 길이나 높이 나는 기상이 있네[有鳳翔千仞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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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11월 2일
| 高宗 7
| 庚午
나 또한 행장을 꾸려 출발하여 천전(川前) <인명>김순약(金純若)인명>에게 들려 묵었다. 다음날 3일에 <인명>김정백(金正伯)인명>을 기다려 임천(臨川)에 함께 나아가 저물녘에 도착하였다. 바람과 추위가 매섭게 닿아 정신을 안정시킬 수 없었고, 묵을 곳이 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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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11월 13일
| 高宗 7
| 庚午
일찍 출발하여 비석거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떤 걸인이 있었는데, 점주를 뒷쫒아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진산 인(珍山人)으로 세를 받아 관가의 봉물(封物)을 지고 바치러 왔는데, 돌아가는 길에 한 푼의 돈도 없어서 밥을 못 먹고 얼어 죽는 것 외에 대책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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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10월 1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식후에 묘소로 올라가 회헌 위(檜軒位) 및 승산 위(承山位)에 제사를 지냈다. 아직 전한 위(典翰位)에 제수를 진설하기도 전에 우레가 치고 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바람에 빗겨 내려 …… 를 이루었는데, 창졸간이라서 비를 막는 도구가 없어 다만 손을 모으고 서서 몸이 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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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4일
| 高宗 1
| 甲子
| 맑고 찬바람이 크게 일다.
식후에 <지명>사월(沙月)지명>의 권 진사(權進士)가 돌아간다고 알려서 편지를 부치고자 했으나 조금도 기다려 주려 하지 않아 편지를 쓰지 못해 매우 한스러웠다. 부득이 초기(草記)를 봉해 부치니 잘 살펴봐 주실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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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1일
| 高宗 1
| 甲子
밥을 먹은 뒤에 도청의 여러 사람들이 내려와서 말하기를, "이전의 충주 전(忠州錢) 10량은 소청에서 모여 이야기하라는 몫으로 보낸 것인데, 그 사이에 먹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있는 듯하니, 한 바탕의 술과 떡을 마련하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여러 의견이 안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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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대원군의 행차가 일찍 떠났음을 듣고 양 시소(試所)에서 글을 썼다. 거듭 명령을 내어 공무 집행으로 장차 8일에 들어와서 방(榜)을 내는 것을 본다고 하였다. 우인(優人) 으뜸인 <인명>권기홍(權箕洪)인명>이 보러 와서 인정이 가상한 것이 매우 기뻤다. 듣건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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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3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식사를 하기 전에 하동 령(霞洞令)이 사람을 보내 종숙부(從叔父)께 청하면서 막 초거례(初擧禮, 과거 합격자 관련 예)를 열었다. 술과 음식이 있으니 제원(諸員)과 함께 올라오라고 하였다. 나는 곧 방(房)을 지켜서 가지 않았고 <인명>중현(仲賢)인명>은 방외(坊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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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11월 1일
| 高宗 7
| 庚午
백종숙부가 본원 수석으로 기일보다 앞서 길을 떠나기에 전별 행차를 위해 모임에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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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11월 9일
| 高宗 7
| 庚午
| 눈이 내리다가 개었으나 바람과 추위가 더욱 심하다.
경진(京津)에서 오늘은 멈추자고 요청했으나 수위 어른(首位丈)은 또 허락하지 않고 조금 가도록 해서 부득이 출발했다. 바람이 크게 불어 눈을 쓸어 길 위에 모두 쌓였다. 말의 배가 눈에 파묻혀 타고 앉아 있기가 매우 위험하여 내려서 걸었다. 또 길이 없어 간신히 진포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