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4년 8월 17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사촌(沙村) 어르신이 새벽에 출발하려고 하였는데 마삯을 사방으로 구해도 얻지 못했다. 나는 머무르고 있는 말을 태워 보내고자 하였으나 소청(疏廳)은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개 몇 달 동안 헛되이 말을 먹이면서 이후에 혹 말을 쓰게 될 때에는 돈의 배를 내고 출입하니
-
1864년 8월 28일
| 高宗 1
| 甲子
| 흐리다.
원일(元一)이 <지명>의성(義城)지명>으로 순귀(順歸)의 말을 얻어 출발하니 매우 부러웠다. 집에 편지를 쓰려 했으나 편지 한 통 쓰는데 열 번이나 일어나게 되니 여러 편지를 마음대로 쓸 겨를 없을 것 같으니 고민스러웠다. 반주인(泮主人)이 와서 말을 빌려 달라고
-
1864년 9월 27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내극 형(乃極兄)의 창방(唱榜) 행차를 위해 하인에게 새벽에 말에게 죽을 먹여 보내도록 신칙했으나, 빗소리가 이처럼 심하니 답답할만하다. 반촌(泮村)의 신은(新恩)에 또한 하인 30명을 거리는 자가 있는데, 한 명당 2전씩의 품값을 주었다고 하니, 그 허식이 가소롭다.
-
1864년 9월 22일
| 高宗 1
| 甲子
| 흐리다.
새벽머리에 잠에서 깨어나니 두통이 매우 심했는데,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눈을 들 수 없고 몸을 옮길 때마다 괴롭고 걱정되는 밖에 오가며 수접하는 것을 또 견딜 수 없었다. 내협실로 옮겨 거처했는데, 구들로 통하는 상간(上間)이다. 추위가 심하고 또 조섭하기가 곤란하
-
1864년 9월 1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과거는 어제 이전에 매우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을 것으로 정해졌었다. <인명>대원군인명> 어른(大院丈)이 들어와서 듣고서 등수를 이미 정한 후인데 두 시험장에서 각각 30명에게 서두(書頭)와 명호(名號)를 쓰지 말라고 분부하였고 다만 성명을 써서 내게 했다. 시관(
-
1864년 8월 1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새벽에 <인명>원일(元一)인명>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군마에 쫓겨서 다시 문을 나갔다가 객관에서 밤을 지냈습니다."라고 하였다. 가인(家人)은 경(更)시 후에 들어왔는데 다행히도 검문을 면했다. 덕조 척장(德祖戚丈)이 며느리의 상을 당했는데 그 부고를 알
-
1864년 8월 1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과장에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다투는 모습이 바로 여름날 뒷간의 파리 같았다. 대비가 지극한 정성으로 공정하게 행한다는 조서를 내렸는데 "조정에 있는 자들이 깊은 뜻을 받들지 않고 과거를 치르는 유생들 중 냄새를 맡은 자는 이미 먼저 알고서 며칠 동안 분주히 다니니 이전의
-
1864년 8월 2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들으니 일소(一所)의 방 역시 이소(二所)처럼 같았으나 영남인 중에서 <인명>권위상(權渭相)인명>, <인명>금익명(琴翼明)인명>이 나온 것 같으나 그 외에는 아버지 직함이 없는 유학자들로 영남은 5명이었다. <인명>장원상(張原相)인명>, <인명>김석보(金奭輔
-
1864년 10월 2일
| 高宗 1
| 甲子
오후에 들어왔다. 감제(柑製)가 설행된다는 설은 과연 허투루 돌아갔으니, 만일 그 이야기만 믿고 엊그제 <지명>고양(高陽)지명> 행차를 도리어 멈췄다면 또한 한 가지 낭패 보게 되었을 뿐이니 다행이고 다행이다. 대과 회시(大科會試)는 변통 없이 정해져 <지명>영남<
-
1864년 10월 8일
| 高宗 1
| 甲子
| 추위가 조금 풀리다.
추위가 조금 풀렸으나 감기는 낫지 않았으니 매우 근심스럽다. 병을 무릅쓰고 들어와 형이 입장(入場)하는 것을 들어가 보았다. 몸의 기운이 정말로 좋지 않았으니 괴롭고 괴로웠다. 책제(策題)에서 양전(量田)에 대해 물었는데, 들어맞는 내용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았으나 나왔
-
1864년 8월 24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과유들이 차례로 돌아갈 것을 아뢨다. 응접으로 갑절이나 어지러우니 고뇌를 말할 수 없었다. 응춘(應春)무리가 식후에 들어왔다. 소위 책제(策題)는 학이시습(學而時習)으로 물었으나 조문(條問)은 『논어』 한 구도 없고 주발(周勃)이나 조괄(趙括) 같은 류가 아님이 없었다
-
1864년 9월 2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지명>거창(居昌)지명>에 거주하는 허 생(許生) 3명이 문권(文券)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명>허순칙(許順則)인명>과 족보의 송사에 관한 일이었다. 수변(首弁) 1장은 바로 도(道)에 소장을 올린 상태의 문서이고, 종숙부(從叔父)의 명함이
-
1864년 9월 21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임하(臨河) 도청(都廳)이 돌아간다고 고하였다. 그의 둘째의 혼인이 내달 초에 있어서 형세 상 만류하여 머무르게 할 수 없어 큰 길에서 송별했다. 술을 사서 전별하고 들어오니, 섭섭하고 허전함이 매우 심했다. 고향 가는 인편으로는 이 사람보다 확실한 자가 없으나 여러
-
1864년 8월 3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그치다.
<인명>원일(元一)인명>이 일찍 일어나 주인을 보내 방을 찾아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만일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이 같은 말을 하려고 했겠는가? 그가 놀린 나머지 한번 껄껄 웃었다. 주인이 와서 말하기를, 바야흐로 밥을 먹은 뒤에 방이 나온다고 하였다. 하인이 ……
-
1864년 8월 14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종숙(從叔)이 <지명>고양(高陽)지명> 선묘(先墓)에 참배를 하기 위해 오후에 행차를 떠났다. 반촌에 머무는 동배[儕類]가 내일 능행(陵幸)의 거둥을 보기 위해 와서 나를 불러 함께 갔다. 어린 임금의 얼굴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드디어 뒤따라 나가 <지명>무학치(
-
1864년 8월 22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들으니 남연군(南延君)의 연시(延諡)가 내일 있어 연회를 크게 베푼다고 했다. 문오령(文五令)도 차출되었으나 소청의 하인을 빌려 보내도록 했다. 그러나 종일 사역하여 몹시 힘들 것 같이 고민되었다. 식후에 도소(都所)로 갔는데, <인명>이의익(李宜益)인명>의 아들
-
1864년 9월 23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반촌(泮村)의 훤자[喧傳]를 들었는데, 소유(疏儒)가 대원군의 집에 가서 상소와 관련된 일을 말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반드시 이것은 류 좌랑(柳佐郞)이 권 생원(權生員)을 본 후에 지어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권 생원의 말은 허구가 아님을 알만하다. 권 생원의 백
-
1864년 8월 11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진사 홍 장(洪丈)이 여장을 꾸려 출발하려고 했지만 가마꾼이 세를 다투어 제때 출발하지 못했다. 내일 다른 가마꾼을 다시 구하여 여장을 꾸려 출발할 생각이지만 병든 노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하루가 급하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식전에 도기(到記)를 묻고 과장에 들어갔
-
1864년 8월 20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동당(東堂) 장중으로 들어갔다. 논제는 「서계(書契)를 만듦」을 논하는 것이다. 공백, 원진 등 여러 친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앉았으나 입론할 만 한 거리가 없었다. 단지 각자 설을 지어 들이고 나왔다. 의제가 나와 보니 볼 만한 것이 있었으나 억지로 받은 자가 명쾌하게
-
1864년 10월 6일
| 高宗 1
| 甲子
| 춥다.
일찍 일어나 흥동(興洞)측 여관에 들어가니 형님은 이미 아침식사를 하고 행장을 꾸려두었다. 그래서 함께 문외(門外)로 왔고, 늦은 이후 시험장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왔다. 손과 발이 얼고 추웠다가 그대로 감기가 되어 오한 기침 콧물의 증상을 매우 견디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