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4년 8월 25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새벽에 출궁하여 거둥한다는 것을 듣고 반중의 사람들이 모두 새벽에 동문 밖으로 나갔다고 했으나 한번 관망으로 천안(天顔)을 익히 알 수 있으니 다시 수고롭게 움직일 뜻이 없었고, 향족(鄕族)의 출발이 바야흐로 식후에 있으므로, 나가 놀 수 없었을 뿐이었다. 식후에 세유
-
1864년 6월 24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지명>전현(磚峴)지명>에서 고향으로 가는 인편이 있다는 것을 듣고, 소수(疏首)가 집으로 편지를 부쳤다. 소수 이하가 도청소(都廳所)에 모였고, 반촌의 벗들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며 날을 보냈다.
-
1864년 6월 2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소수(疏首)는 거처를 조금 넓은 곳으로 취하려고 도청소(都廳所)로 거처를 옮기고자 했으나 곧이어 다소간 불편함 때문에 잠시 중지하였다.
-
1864년 7월 9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
1864년 7월 20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들으니 평안도 <인명>김영묵(金英默)인명>이 헌납으로 사직 상소를 올리며 방외 유소(儒疏)에 관한 일을 논하며 <인명>홍재범(洪在範)인명>이하 5인의 찬배(竄配)시키라는 형전을 청했으나 대신 윤지를 주장할 자가 고사하고 지어 올리지 않자 대원군이 스스로 지어 올
-
1864년 7월 27일
| 高宗 1
| 甲子
아침 식사 전에 반촌(泮村) 사람들이 와서 방목이 관벽(館壁)에 내어 걸렸다고 전했다. 삼하(三下) 1인이고 차상(次上)과 차하(次下)가 합해 100명이다. 10명은 초시에 붙었고, 90명은 상격(賞格)에 들었다. 그러나 영남 사람은 <지명>김산(金山)지명>의 <인
-
1864년 9월 2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날씨가 비가 내린 뒤끝에 추위가 생겨나서 찬물로 세수(洗嗽)하는 것이 매우 좋지 않지만 따뜻한 물을 얻을 길이 없으니 걱정스럽다. 식후에 문약(文若) 어른과 소유(疏儒) 몇 명이 내려왔다. 내가 말하기를 "이러한 일에 공연히 앉아 달을 넘기면서 달리 핵심을 돌리기를 기
-
1864년 8월 1일
| 高宗 1
| 甲子
동이 트자 <인명>원일(元一)인명>이 먼저 일어나 과장에 들어갔다. 느리고 진중한 자라도 과거시험 욕심에 민첩함이 이와 같으니 웃을만했다. 평명(平明)에 한 접(接)과 더불어 천해 접(川海接)에 들어갔다. 접들 모두 휘장으로 가렸고, 해저(海底)와 소호(蘇湖)의 두
-
1864년 8월 13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하양(河陽) 관리 인편을 만나서 대아(大衙) 및 책실(冊室) 형제의 편지를 받았다. 소식이 막힌 뒤 끝에 시원하게 풀리니 직접 얼굴을 맞대고 회포를 푸는 것 같았다. 종숙질(從叔侄)에게는 모두 간축(簡軸) 하나, 주지(周紙) 하나, 남초(南草) 하나를 보내고 중현(仲賢
-
1864년 8월 21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또 중장(中場)에 들어가니 부제(賦題)는 「欲主千萬年惟王子子孫孫永保民」였다. 지은 대로 시권을 들이고 나왔다. 들으니 일소(一所)는 영남우시에서 출제한 것을 내걸었는데 서제(書題)의 귀함이 이처럼 심하니 혀를 찰만 했다. 두 곳 시험장 내의 효상(爻象)을 들으니 대저
-
1864년 9월 3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아침 전에 사첨 씨(士瞻氏)가 점을 묻기 위해 남관묘(南關廟)에 나갔다. 이에 앞서 동묘(東廟)에 수차례 물었는데, 점사(占辭,)에 이르기를 "모든 일에 분주하게 구하지 말고, 정도(正道)로써 굳게 지킨다면 내년 봄에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점의 징험 ……
-
1864년 8월 8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밥을 먹은 뒤에 태학 제관(太學祭官)이 들어가니 또한 볼만 했다. 오전에 습의(習儀: 나라의 의식을 미리 배워 익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벗들을 따라 들어가 구경했는데 모양이 전혀 없었다. 이른바 예절은 다만 수복의 지시만 들었고, 승강(升降)과 읍배(揖拜)하는
-
1864년 8월 15일
| 高宗 1
| 甲子
새벽에 일어나 산허리에 올라갔다. 길은 왼쪽으로 통했고 서쪽 성 밖을 바라보니 임금이 지나는 큰 길은 등불과 횃불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은 땅 위의 은하수였다. 동쪽이 막 밝아오자 전진(前陳)이 비로소 나오고 대오가 연이어지고 위의(威儀)와 범백(凡百)이 모두
-
1864년 7월 24일
| 高宗 1
| 甲子
<인명>위양(渭陽)인명>을 뵈러 갔는데, <인명>강난형(姜蘭馨)인명>이 들어오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강이 이르길, "밖의 뜬소문에 내가 시망에 올라 몇일 동안 사람을 응접한다고 하니 가히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고 할만 합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 없어 먼동
-
1864년 9월 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객지에서 맞이하는 중양절은 옛 사람들도 앓던 회포인데, 더구나 가묘에 절천(節薦)을 응당 설행해야 하지만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병든 수씨와 어린 조카들에게 맡긴 것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객지의 회포보다 더욱 깊었다. <인명>중현(仲賢)인명>이 함께 높은 곳에
-
1864년 8월 7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듣건대 과유들이 비변사에 정소(呈訴)했다고 한다. 영상(領相)의 제사(題辭)에 잘못은 과연 시관(試官)에게 있었지만 선비 된 자로 시관을 기다려야 하니 마땅히 물러서서 공의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초기하여 시관을 추고(推考)하라고 청하니 전교에 "윤허한다."라고 하
-
1864년 8월 12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이른 아침 종숙부를 모시고 홍 진사(洪進士) 어르신에게 갔다. 그는 뺨과 이마의 붓기가 어제 보다 더욱 심하였다. 홍 진사는 죽을 형상은 아니라고 장담했지만 또한 심기가 평안하고 고요하지 않아 전송하는 자 모두 그를 염려하니 근심되고 근심되었다.
아침 사이에 듣
-
1864년 8월 23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일찍 일어나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천상, 법흥, 법전 사람들이 모두 접(接)을 이어 앉았다. 나온 시제는 "間小學遇二首"이었으나 중간에 잘 지어진 글은 있었으나 누구의 글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동인끼리 뇌동(雷同)하는 혐의가 있어 결국 동암(東嵓)의 유초(遺草)를
-
1864년 9월 25일
| 高宗 1
| 甲子
| 흐리다.
승지 <인명>강난형(姜蘭馨)인명>과 승지 <인명>이철구(李喆求)인명>가 방문했다. 강(姜)은 상소에 관한 일을 말하는데 자못 정답고 너그러움을 다했다. 시류배들은 당면하면 모두 말하는 것이 이와 같을 뿐이다.
<인명>문오령(文五令)인명>이 <인명>이
-
1864년 8월 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밤에 천둥번개가 매우 성하고 비가 또 많이 쏟아지다.
응춘(應春) 무리와 <인명>김이원(金而遠)인명> 여러 형들이 <지명>종가(鐘街)지명>에 나가 동당시에 쓸 종이와 배접 할 과장지(科壯紙) 및 초지(草紙)를 사서 들어왔다. 진사 홍 장(洪丈)은 올라온 뒤로부터 하루도 건강한 때가 없으니 병의 뿌리가 깊이 염려됨이